총 맞아 숨졌는데 사인이 ‘교통사고’?…케냐 경찰 ‘폭력 은폐’ 의혹
현장 투입된 경찰들도 “사인 위조 있었다” 고백
지난해 ‘증세 반대’ 시위 이후 사망·실종자 속출
케냐 경찰이 지난해 전국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를 폭력 진압하고 숨진 이들의 사인을 ‘교통사고’, ‘인민재판’ 등으로 위조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지난해 6월부터 수도 나이로비 등 케냐 전역에서 시위를 벌이다 사망한 4명의 사례를 보도하며 “케냐 경찰이 폭력적인 시위 진압으로 사망한 이들의 사인을 사고사 등으로 위장해 진상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7월 19세였던 찰스 오위노는 나이로비에서 거리 시위를 하다 숨졌다. 부검 결과 머리에 총을 맞은 게 사망 원인이었다. 그러나 오위노의 시신을 수습한 영안실에는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으로 기록돼 있었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케냐에서 영안실에 기록되는 1차 사인은 시신을 인계하는 경찰이 직접 기록한다. 이후 정식 부검을 거쳐 사인이 확정되는데, 오위노의 경우 두 문서에 적힌 사인이 서로 달랐다. 시위 현장에서 시신을 직접 수습한 경찰이 사인을 위조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오위노와 같은 날 사망한 샤킬 오비엔게(당시 21세)도 목에 총탄을 맞았지만 영안실 기록에는 사인이 ‘교통사고’로 돼 있었다. 부검 결과 오비엔게는 “근거리에서 발포한 총탄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시위 현장에 투입됐던 경찰들도 사인을 거짓으로 꾸며낸 적이 있다고 로이터에 밝혔다. 익명으로 취재에 응한 경찰관 3명은 현장에서 경찰 발포 등 폭력을 당해 사망한 이들의 사인을 ‘사고사’나 ‘인민재판’, ‘익사’ 등 허위로 보고했다고 말했다.
실제 경찰이 석연치 않은 사인을 기록한 사례는 여럿이었다. 거리에서 숨진 케페르 오디우르 우마(당시 24세)의 유족은 그가 경찰 차량으로 끌려가 구타당하는 것을 봤지만, 영안실 문서에 적힌 사인은 ‘인민재판’이었다고 한다. 대학생 덴젤 오몬디는 시위 중에 실종된 지 9일 만에 채석장 연못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영안실 기록에 남은 사인은 ‘익사’였지만 부검 보고서에는 “뇌출혈과 폐 과팽창, 전신의 멍”이 확인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오몬디의 아버지는 “익사하기 전에 다른 일(경찰 폭력)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고 했다.
지난해 케냐에서는 고물가와 취업난으로 생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빵과 식용유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한 품목을 대상으로 부가가치세 인상을 포함한 대규모 증세를 추진하자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초반에는 평화 시위가 이어졌지만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최소 50명이 숨지는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케냐 경찰 감시기관인 독립경찰감독청(IPOA)은 경찰의 폭력과 시위대 실종 사건 등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케냐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여섯 달간 최소 82명이 실종됐으며, 이 중 29명은 여전히 행방불명 상태다. 현지 인권단체들은 실종자들이 경찰당국에 납치됐다고 주장하며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도 지난해 11월 “시위 도중 실종된 이들의 시신이 강이나 숲, 버려진 채석장에서 발견되고 있다”면서 “경찰이 시위 참가자들에게 ‘배후가 누구냐’고 물으며 음식과 무도 주지 않고 고문한 흔적도 발견됐다”는 조사 결과를 밝히기도 했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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