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영혼마저 돌아섰다···계엄이 부른 전향 물결이 있었다? [사색(史色) 호외판]
[사색-호외] 조국의 안녕과 번영. 그의 영원한 꿈이었습니다. 외국의 진귀한 물건과 정신에 물들지 않는 조국만의 순수한 민족정신을 옹호합니다.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지도자를 찬양하는 데 앞장선 것도 그였습니다. 그에게 민족이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순백의 이상’. 국가를 위해선 목숨도 걸겠다는 결기도 확고합니다.
민주주의, 계몽, 이성이라는 가치에 반감을 드러냅니다. 외국의 것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민족, 국가 질서, 품격이 그에게 더욱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보수주의자와, 국수주의자의 상징. 토마스 만이라고 불린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마의 산’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이자, 독일 보수주의의 대표로 통한 인물이었습니다.
토마스 만이 ‘전향’ 한 건 그가 ‘철새’여서가 아니었습니다. ‘보수’가 한 사람에 의해 완전히 곡해되어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보수 지도자가 국가를 완전한 위기에 빠뜨린 지금. 토마스 만의 인생을 독해하기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이를 몸과 마음에 체화한 대표적 인물, 토마스 만이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적인 것에 맞서 독일적인 정신을 옹호한 글쟁이였습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이질적 존재들. 대를 이어갈수록 금발은 점점 빛이 바래고, 눈의 푸른빛 역시 옅어집니다. 상징의 상실은 가문의 몰락으로 연결됩니다. 타자와 만남을 병으로 그려낸 셈. 토마스 만은 “아주 특별히 독일적인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독일의 영적 전통과 애국심, 뿌리 깊은 문화를 열렬히 찬양했지요. 동생 하인리히 만이 ‘졸라’라는 작품을 통해 전쟁을 비판하자 공개 설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엄청난 물가상승에 경제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고, 시민들의 삶은 팍팍해집니다. 희생양을 찾아 나서기 시작할 때, 일부 정치인들이 한 집단을 겨냥합니다. 잇속에 밝은 사람들, 언젠간 손봐주겠다 벼르고 있던 사람들.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위대한 독일을 위하여, 더욱 위대한 독일 민족을 위하여.” 토마스 만이 그리던 애국은 독일 땅에서 점점 괴이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자신을 민족주의자라고 자칭한 일련의 무리가 바이마르 공화국 외무부 장관까지 암살합니다.
작가 토마스 만은 점점 그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늘 얘기하던 독일적인 것의 모습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1924년 ‘마의산’에서 그의 보수적 색채는 한층 옅어집니다. 다양한 이념의 가치를 받아들이며 삶의 복잡성을 사유합니다.
1929년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경찰은 그러나 나치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을 문제 삼아 감시를 강화합니다. 극우 세력은 그를 빨갱이 반국가세력으로 몰아세웠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지 4년 후, 독일에 새로운 총리가 임명됩니다. 아돌프 히틀러였습니다.
“파렴치한 반국가 세력을 처단하고, 헌정 질서를 지키겠다”는 이유로 시민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조치였습니다. 히틀러의 나치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토마스 만 역시 독일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의 부인 역시 유대인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암담한 시절. 독일 전역에 토마스 만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습니다. 외국으로 망명한 토마스 만이 영국 BBC와 손잡고 선전 방송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조국을 떠났다고 그의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곡된 독일을 바로 세워야 할 의무가 그에겐 있었습니다. 보수주의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는 나치가 만든 지옥을 그대로 전합니다. “1만명 넘는 유대인들이 15분만에 독가스 탓에 죽어갔습니다. 비명과 기도소리가 가득 찬 방 앞으로 나치의 비웃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당신은 죽음, 파괴, 혼돈에 지쳤습니다.”
토마스 만은 전후 독일로 귀향하지 않았습니다. 조국이 두 개로 쪼개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권이 무너지는 곳에서 언제나 목소리를 내는 인간이었습니다. 미국에서 흑백 선전인 매카시즘 광풍이 불자 “히스테리적 전체주의”라고 일갈한 것도 토마스 만이었습니다.
그는 늘 제 자리에 서 있었으나, 오른쪽으로 치닫고 마침내 괴물이 되어버린 이들은 그를 ‘좌익’, ‘빨갱이’라고 몰아세웠습니다. 독일의 영적인 심성을 굳게 지지했다는 점에서 20대의 토마스 만과 50대의 토마스 만은 한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나치를 피해 미국에 머물던 토마스 만은 망명생활 괴로움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토마스 만은 대답합니다. “내가 있는 곳, 그곳이 독일입니다(Wo ich bin, ist Deutschland).”
대한민국 보수가 한 지도자의 자의적 통치로 몰락 위기를 맞은 오늘날, 그의 말을 빌립니다. 계엄을 막아낸 시민이 있는 곳, 그곳이 대한민국입니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이 있는 곳, 그곳이 대한민국입니다.
민주주의와 법치, 전통과 질서를 지고의 가치로 삼는 보수는 한 사람에 의해 결코 오염될 수 없습니다. 12월 3일 밤 10시 30분 몰락해 버린 건 용산에 있는 한 사람, 그를 두둔하는 정치적 시녀들뿐입니다.
ㅇ‘마의 산’,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마스 만은 원래 보수주의, 국가주의자였다.
ㅇ제1차 세계대전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을 정도였다.
ㅇ바이마르 공화국 몰락과 함께 나치가 주도권을 잡자 그는 적극적으로 반나치 활동을 벌였다.
ㅇ독일의 보수 정신이 나치에 의해 오염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참고문헌>
ㅇ홍길표, 근현대 서구와 타자-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사람들’ 소고, 유럽사회문화, 2017년
ㅇ윤순식, 문학과 정치-정치와 문학, 독어교육, 2018년
ㅇ윤순식, 토마스 만의 에세이에 관한 소고-정치관의 변화 과정을 중심으로 , 독일문학,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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