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K콘텐츠]제작비 1000억·출연료 10억…거품 꺼지자 투자 '뚝'
드라마 30편, 영화 100편 창고 신세
팬데믹 이후 제작비 상승
스타 수십억 출연료에 제작사 휘청
편집자주
K콘텐츠 시장이 초유의 빙하기를 맞았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콘텐츠 공급 과잉으로 경쟁은 치열해지고, 제작비가 치솟았다. 수익성이 악화하자 완성된 영화·드라마가 창고에 쌓여갔다. 제작사·투자배급사에는 돈줄이 말랐다. 바야흐로 제작비 1000억, 배우 출연료 10억 시대. 제작 규모가 커지면서 투자는 위축됐다. 인건비 상승이 제작비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이다. 배우 출연료가 작품 수익보다 많은 경우도 있다. 배우 몸값과 제작시장 보릿고개의 함수관계를 들여다봤다.
콘텐츠 시장에 곡소리가 난다. 굵직한 상업영화를 25년 넘게 만든 중견 제작사 대표는 “투자가 막혀 제작 일이 끊긴 적은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심상치 않은 위기감이 느껴지는 말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K콘텐츠는 전성기를 맞았다. 시장이 커지면서 너도나도 제작에 뛰어들었으나, 거품이 빠지면서 제작이 급감하고 돈줄이 말랐다. 왜 그런 걸까.
투자 급감→제작 편수 3분의 1토막영화가 완성되고도 개봉을 못 한 채 창고에 쌓여가고, 드라마는 편성을 잡지 못해 표류하고 있다. 28일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자료를 보면 K콘텐츠가 대호황이던 2022년 OTT 플랫폼과 국내 방송사를 통해 공개된 한국 드라마는 역대 최다인 141편이었다. 하지만 2023년엔 123편으로 축소됐고, 올해는 100편 남짓 공개될 전망이다. 해외 OTT 작품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국내 방송사와 토종 OTT 작품 편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완성되고도 개봉하지 못한 영화가 100여 편에 이를 것이라 추산한다. 작품에 투자한 돈을 극장에서 회수하지 못하면서 신규 투자가 위축됐다. 영진위가 발표한 2024년 한국 영화 제작 상황판을 보면 개봉 예정인 영화는 27편,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 중인 영화는 49편, 촬영 중인 영화는 26편이다. 총 102편 중 상업영화는 ‘하얼빈’ ‘검은 수녀들’을 포함한 50여편 정도다. 1~2년 후에 극장에 걸리는 한국영화 신작이 크게 줄어들면서 상황이 더 악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드라마 평균 제작비는 500억원 정도다. 많게는 600~700억원에 이른다. 10년 전의 2~3배, 최대 4~5배나 올랐다. 영화 제작비는 더 늘어났다. 총제작비가 100억원이 들어가면 ‘대작’이라 평가받던 때는 지났다. 텐트폴 개봉작은 200억~300억원에 이를 만큼 규모가 커졌다. 해외 시장에서 K콘텐츠 위상이 상승한 영향도 있다. OTT 플랫폼 점유율이 높아지며 200억~300억원대 제작비 설정이 가능해졌다. 하반기 공개를 앞둔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시즌2의 제작비는 1000억원에 육박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지상파 방송사, 국내 주요 영화 투자배급사는 투자를 줄이고 있다. 국내 대기업 영화 투자배급사(CJ ENM·쇼박스·롯데엔터테인먼트·NEW·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가 최근 촬영을 시작하거나 크랭크인을 준비하는 영화는 많아야 10편 정도로 파악된다. 한국영화 사업 철수설에 휩싸일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던 CJ ENM은 박찬욱 감독 신작 '어쩔수가없다' 1편만 신규 투자를 결정했다.
토종 OTT사들도 드라마·영화 제작 편수를 대폭 축소했고, 네이버와 카카오도 투자를 줄여가는 분위기다. 제작사들도 눈덩이처럼 오른 제작비가 부담스럽긴 마찬가지. 완성된 작품들이 아직 창고에 쌓여있는 상황이라 신규 투자가 쉽지 않다. 게다가 시장 수익성이 나빠지고, 경영 사정도 예전같지 않아지자 제작사들이 곳간을 틀어 잠그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tvN 드라마 '엄마 친구 아들' '눈물의 여왕' '졸업',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 등을 선보인 스튜디오드래곤은 올해 2분기 매출액 1371억원, 영업이익 105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지난해 2분기(1635억)보다 감소했고, 영업이익도 35.7% 줄었다. 드라마 '가족X멜로' '놀아주는 여자',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등을 선보인 SLL은 2분기 매출액 127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 감소했고,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 243억원, 영업손실은 53억원을 기록했다.
제작비가 상승한 가장 큰 요인으로 일명 ‘A급’ 배우들의 출연료가 꼽힌다. 촬영장 주52시간제 도입으로 인한 스태프 인건비 상승도 영향이 있겠으나 배우들의 출연료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해외 OTT 플랫폼이 K콘텐츠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톱배우 A에게 회당 출연료로 10억원 이상 줬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배우 B는 과거 국내 방송사 드라마에서 편당 1억원을 받았지만, OTT에서 5억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한번 올라간 출연료는 쉽게 내려가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제작사는 해외 판권 판매 비중을 늘리면서 자연스럽게 해외에서 인지도 높은 배우를 원하다 보니 스타들에게 의존하게 되는 구조다. 방송, 플랫폼 사업자들은 결국 스타들의 ‘비싼 몸값’을 맞추느라 편성을 줄일 수밖에 없다.
천만영화를 만든 중견 제작사 대표는 “글로벌 OTT 플랫폼이 K콘텐츠에 거대 자본을 투입하며 제작비가 폭등했고 주연배우, 스타 작가만 크게 챙겨가는 이상한 시장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이어 “배우들이 글로벌 OTT 출연료를 기준으로 제시하며 여기에 맞춰달라고 한다. 작품간 제작비 차이가 크지만 맞춰주지 않을 수 없어 난감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제작사 대표는 “업계에 투자금이 순환되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라며 "한두편 흥행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기대해선 안 된다. 중장기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 달에 150만원 줄게"…딸뻘 편의점 알바에 치근덕댄 중년남 - 아시아경제
- 버거킹이 광고했던 34일…와퍼는 실제 어떻게 변했나 - 아시아경제
- "돈 많아도 한남동 안살아"…연예인만 100명 산다는 김구라 신혼집 어디? - 아시아경제
- "일부러 저러는 건가"…짧은 치마 입고 택시 타더니 벌러덩 - 아시아경제
- 장난감 사진에 알몸 비쳐…최현욱, SNS 올렸다가 '화들짝' - 아시아경제
- "10년간 손 안 씻어", "세균 존재 안해"…美 국방 내정자 과거 발언 - 아시아경제
- "무료나눔 옷장 가져간다던 커플, 다 부수고 주차장에 버리고 가" - 아시아경제
- "핸들 작고 승차감 별로"…지드래곤 탄 트럭에 안정환 부인 솔직리뷰 - 아시아경제
- 진정시키려고 뺨을 때려?…8살 태권소녀 때린 아버지 '뭇매' - 아시아경제
- '초가공식품' 패푸·탄산음료…애한테 이만큼 위험하다니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