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성기 대놓고 그린 외설 작품에...“사실주의 새장 열었다”는 극찬, 왜? [사색(史色)]
[사색-77] “포르노인가, 예술인가.”
그림이 세상에 공개했을 때, 대중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성의 성기를 확대해 적나라하게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체모도 한올 한올 놓치지 않고 화폭에 담았지요. 마치 사진을 보는 듯한 세밀함. 예술이 아니라 저질 포르노의 캡처 사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입니다.
놀랍게도 이 그림이 걸린 건, 근대 미술의 보고(寶庫)인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작품의 이름은 ‘세계의 기원’(L‘Origine du monde )이었습니다. 여성의 성기가 만물이 태동할 수 있는 근원이었다는 그럴듯한 설명이 붙었지요.
이 작품이 처음 공개된 건 1995년. 작품이 완성된 지 130년이나 지나서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음에도 첫 공개 당시 “포르노를 미술관에 걸었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야해도 너무 야했으니까요.
대중과 평단의 양극단을 오가는 ‘세계의 기원’을 그린 문제적 화가는 구스타브 쿠르베. 그가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그림을 그린 이유는 성 도착자여서는 아니었습니다. 쿠르베의 삶을 보면, 이 작품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주의’의 대가 쿠르베의 발자국을 따라가 봅니다.
구스타브 쿠르베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한 마을에서 1819년 태어났습니다. 군주제를 타도한 프랑스 혁명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을 때였습니다. 부유한 지주 집안이었지만, ’보수적‘이진 않았습니다. 쿠르베의 외조부가 혁명에 직접 참여했을 정도로 ’반군주제‘ 정서가 강한 집안이었지요.
화려한 귀족의 삶보다, 본인의 자리에서 땀 흘리는 시민들의 삶에 쿠르베가 더 동감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부르고뉴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 속에서 지내면서, 쿠르베는 누구와도 친구로 지냈습니다. 사냥꾼·어부·벌목꾼까지. 부자임에도 이를 거들먹거리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가 쿠르베였지요.
파리는 예술의 수도였습니다. 루브르박물관에는 거장들의 작품으로 가득했지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 티치아노 베첼리오, 자크 루이 다비드의 명작들이었습니다. 청년 쿠르베는 자신이 존경했던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드 수르바린의 작품을 반복해서 묘사하면서 화가로서 꿈을 키워갔습니다.
쿠르베의 마음속에서는 동시에 의문이 함께 싹텄습니다. 대가의 작품이 우리네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이나 그리스 신화 속 이야기를 유려하게 구현할 뿐, 사람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던 것이지요.
1844년은 화가 쿠르베로서 전환점을 맞이한 시기였습니다. 네덜란드·벨기에를 여행하면서였습니다. 렘브란트와 프란스 할스 등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작품들을 직접 목격한 것이었지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예술이 하늘을 보고 그림을 그릴 때,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땅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나 성경을 웅장하게 표현한 이탈리아 예술과 비교해 네덜란드 사람들은 민중의 땀과 웃음을 구현했지요.
쿠르베는 이때부터 고전주의 화가들을 답습하는 것을 그만두고, 자신의 길을 나아갑니다. 사실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 자신이 보지 못하는 건 그리지 않겠다는 소신이었습니다.
쿠르베가 생드니로 이동할 때, 이 장면을 목격한 뒤 이를 화폭으로 옮겨담은 것이지요. 그에게 힘겨운 민중의 삶은 언제나 예술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들의 비참함을 보자마자 머릿 속에 그림 한장이 그려졌다.”
당대 최고의 화가 외젠 들라쿠라아의 인정을 받을 정도였지요. 사회주의 이론가 푸르동은 ‘돌을 깨는 사람들’을 두고 “최초의 사회주의적 작품”이라고 칭합니다. 쿠르베에게는 최고의 칭찬이었습니다.
명성을 얻은 쿠르베는 점점 더 도발적인 메시지로 사회를 향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당대 화가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거짓으로 점철된 것이 아닌지, 신화 속 여신으로 이상화된 누드가 과연 진실된 것인지를 되묻는 것이었습니다. 1850년 이후부터 그가 도발적인 누드화를 그린 배경입니다.
쿠르베에게 한 손님이 찾아옵니다. 파리에 거주하는 터키 외교관 칼릴 베이였습니다. 외설적 느낌의 그림의 애호가였던 그는 쿠르베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작품을 하나 부탁합니다. 그리고 1866년 완성된 그림, 바로 ’세계의 기원‘이었습니다.
여성의 성기만 떡하니 그려 놓은 ’논쟁적인 작품‘. 누드를 그리더라도 성기는 가려야했던 기존 화법을 완전히 파괴한 그림입니다.
열흘 붉은 꽃은 없고, 권력은 10년을 버티기 힘듭니다. 파리코뮌은 금세 무너지고, 제3공화국이 들어섭니다. 쿠르베에게 ‘정산서’가 도착합니다. 방돔 기둥을 재건하는 비용을 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쿠르베가 스위스로 망명을 떠나야 했던 계기였습니다. 스타 화가라도 천문학적인 돈을 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ㅇ구스타브 쿠르베는 여성의 성기를 적나라하게 그린 ‘세계의 기원’으로 악명(?)높은 화가였다.
ㅇ당대 화가들이 역사·신화에 천착할 때, 그는 “진실이 가장 아름답다”며 사실주의 화풍을 추구했다.
ㅇ노동자·일반 시민들의 그림을 그가 화폭에 담은 이유였다.
ㅇ그의 누드화도 극사실주의가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참고문헌>
ㅇ김세리, 세계의 기원의 기원, 프랑스학회, 2014년
ㅇ김재원, 리얼리즘 미술, 한국근현대미술사학,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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