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미야자키, 9일 도쿄 서쪽... 日 “거대 지진 조짐” 공포

도쿄/성호철 특파원 2024. 8. 9.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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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일본 규슈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7.1의 강진으로 가고시마현의 한 주택이 붕괴된 모습. 일본 기상청이 “일주일 내 난카이 해곡 지역에서 대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발표하면서 이번 지진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난카이 대지진’의 전조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교도 연합뉴스

일본 남부 규슈 앞바다에서 8일 발생한 지진을 계기로 일본 전역에 ‘거대 지진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지진 자체의 피해는 미미했지만 일본 열도 중남부에서 약 100~150년 간격으로 일어나 재앙적 피해를 안겨온 ‘난카이(南海·남해) 대지진’의 전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9일 일본의 주요 언론들은 종일 거대 지진 발생 시 행동 요령을 반복적으로 보도했다. 공영방송 NHK 화면엔 “거대 지진 주의, 해당 지역 주민들은 지진 발생 시 곧바로 피난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는 자막이 쉬지 않고 나왔다. 뉴스마다 첫머리에 “즉각 피난이 어려운 장애인이나 노인은 자율적으로 일주일간 다른 지역으로 피난 가는 방안도 고려하라”고 당부했다. 8일에 이어 9일엔 일본 가나가와현 서부에서 오후 7시 57분쯤 규모 5.3의 지진이 발생했다. NHK는 “쓰나미 우려는 없고 전일 지진과는 연관이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지만 전일 거대 지진 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대도시 인근에서 퇴근 시간에 지진이 발생하며 일부 신칸센(고속철도) 운행이 중단되는 등 혼란이 발생했다.

이날 신문과 인터넷 뉴스 사이트 등의 톱 뉴스도 ‘거대 지진 발발 가능성’이었다. 요미우리신문은 “사재기는 피하고 냉정하게 대응하자. 앞으로 한 주간 가족의 위치를 항시 확인하고, 현관에는 비상용 헬멧과 비상식량 등을 담은 가방을 준비하자”고 권고했다. 마이니치신문도 “거대 지진이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긴박하게 움직였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진행하려던 중앙아시아와 몽골 방문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 통상 해외 방문 중인 국가 정상이 본국에 긴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나머지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처럼 피해도 없는데 출발 직전에 일정을 취소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그만큼 실제 대지진 발생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앞서 8일 오후 4시 43분 규슈 미야자키현 앞바다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일어났다. 일부 지역에서 건물이 흔들리면서 벽과 창문이 파손됐고 10여 명이 다쳤다. 작지 않은 규모였지만 피해는 미미했다. 그런데 지진 발생 세 시간 뒤인 오후 7시 15분 일본 기상청이 ‘거대 지진 주의(난카이 해곡 지진 임시 정보)’를 발표하면서 “난카이 거대 지진 발생 가능성이 평상시보다 여러 배나 커졌다”고 하자 일본 언론들이 일제히 긴급 뉴스로 타전했다.

그래픽=백형선

일본인들에게 ‘난카이’란 단어는 재앙적 거대 지진을 상징하는 말이다. 중부 시즈오카현 앞바다에서 남부 규슈 앞바다까지 약 800㎞에 걸쳐 펼쳐진 난카이 해저협곡(해곡)에서 약 100~150년을 주기로 매우 큰 지진이 발생해 왔기 때문이다. 난카이 거대 지진이라 할 만한 이 지역의 큰 지진은 1946년 발생했다. 와카야마현 앞바다에서 일어난 규모 8 지진으로 1330명이 죽거나 실종되고 가옥 3만5000채가 무너지는 등 엄청난 피해를 동반했다. 이번 지진이 발생한 미야자키 앞바다가 난카이 해곡과 가깝다는 점은 일본인들의 공포를 키우고 있다.

일본 남부 가고시마현에서 8일 발생한 지진으로 시부시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토사물이 흘러내린 9일이 모습. /교도 연합뉴스

기상청은 “앞으로 7일 내 난카이 해곡에서 규모 8 또는 9의 거대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에 주민들은 언제든 피난할 준비를 하라”고 경고했다. 주의가 내려진 지역은 혼슈 이바라키현에서 최남단 오키나와현까지 길게 이어진 29개 도·부·현(都府縣·광역단체)과 707개 시·정·촌(市町村·기초단체)에 달한다.

가장 최근의 거대 지진은 난카이 인근이 아닌 동일본에서 2011년 3월 11일 발생했다. 하지만 이 지진을 계기로 일본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파괴적 대지진을 미리 시나리오별로 예측해 대비하는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그 일환으로 2017년 난카이 거대 지진 예상 지역 부근에서 규모 6.8 이상 지진이 관측될 경우 실제 난카이 대지진이 임박했는지 여부를 판단해서 발표하는 경고 체제를 도입했다. 이번이 그 첫 번째 발령이다.

이번 발령을 결정한 전문가 기구 ‘난카이 해곡 지진 평가검토회’를 이끌고 있는 히라타 나오시 도쿄대 명예 교수는 대지진 발생 가능성이 평상시보다 여러 배 커졌다는 발표 내용과 관련해 “지진학(地震學)에서 ‘여러 배’라는 표현은 극도로 위험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번에 일본 기상청이 내린 ’거대 지진 주의’는 피난을 권고하는 ‘거대 지진 경계’보다는 한 단계 낮다.

‘거대 지진 주의’가 특정 기간 중 대규모 대지진이 반드시 발생한다는 뜻은 아니다. 1904~2014년 전 세계에서 규모 7 이상의 지진은 1437회 발생했고, 이후 일주일 이내에 진앙으로부터 50㎞ 이내 거리에서 규모 7~8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사례는 총 6회다. 통계상 발생 가능성은 ‘수백 분의 1′이지만 일본은 그 ‘수백 분의 1‘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픽=백형선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의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는 점은 공포를 더 키우는 요인이다. 규모 9~9.1의 동일본 대지진으로 1만8000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는데, 당시에도 대지진 이틀 전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했었다. 일본은 이미 ‘최악 시나리오’까지 세워두고 대비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시뮬레이션 결과, 규모 9.1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 사망·실종자가 23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동일본 대지진 인명 피해의 10배가 넘는 규모다. 일본 정부는 향후 30년 이내에 규모 8~9의 난카이 대지진이 발생할 확률은 70~80%로 보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지진이 발생하면 즉시 대피할 준비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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