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이제는 '김원호의 엄마' 길영아 "내 그늘 벗어난 아들 대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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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영아(54) 삼성생명 배드민턴 감독의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 타이틀은 아들 김원호가 배드민턴을 시작하자 일종의 족쇄처럼 됐다.
길 감독은 "나는 메달리스트여서 배드민턴계에서 평범할 수 없어. 네가 길영아의 아들로 사는 게 아니라 (내가) 김원호의 엄마로 살도록 해야 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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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연합뉴스) 홍규빈 기자 = 길영아(54) 삼성생명 배드민턴 감독의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 타이틀은 아들 김원호가 배드민턴을 시작하자 일종의 족쇄처럼 됐다.
엄마의 길을 선택한 김원호는 '네가 길영아 아들이냐'는 호기심과 견제 섞인 말을 자주 들어야 했다. 잘할 때건 못할 때건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길 감독은 항상 자신의 그림자에 있는 아들이 안쓰러우면서도 굳세게 자립할 수 있길 바랐다.
그래서 "엄마가 평범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초등학생 김원호에게 길 감독은 사뭇 단호하게 말했다.
길 감독은 "나는 메달리스트여서 배드민턴계에서 평범할 수 없어. 네가 길영아의 아들로 사는 게 아니라 (내가) 김원호의 엄마로 살도록 해야 해"라고 말했다.
10여년이 흘렀고, 김원호가 그 말을 기억하고 있을 줄 길 감독은 꿈에도 몰랐다.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은메달리스트 김원호(25·삼성생명)는 지난 1일 준결승전에서 이긴 뒤 "이제 제가 길영아의 아들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김원호의 엄마로 살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때 들었던 말을 10년 넘게 품고 있다가 올림픽 메달을 확정하고 나서 입 밖에 꺼낸 것이다.
길 감독은 2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인터뷰를 보고 울컥하고 고마웠다. 그 말을 기억하는 게 대견했다"면서 "이제는 김원호의 엄마로 살아도 된다는 의미로 들려서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이제 제 그늘에서 벗어났다는 뜻일 것이다. 이제는 김원호라는 이름으로 활약하겠다는 거죠"라며 아들을 대견해했다.
전날 준결승전을 직관하면서는 엄마와 감독이라는 두 역할이 충돌하기도 했다.
김원호-정나은 조는 서승재(삼성생명)-채유정(인천국제공항) 조를 2-1(21-16 20-22 23-21)로 꺾고 결승 티켓을 잡았다.
길 감독으로서는 아들 김원호와 제자 서승재 사이에서 난처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런데 3게임 도중 구토 투혼을 벌이는 아들을 보면서는 더 이상 모성애를 누를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관중석에서 아들을 지켜본 길 감독은 "승재한테는 미안하지만 (원호에게) 힘내라고 소리쳤다"고 말했다.
김원호가 메디컬 타임을 요청하기 전부터 이상 증세를 알았다는 길 감독은 "얼굴이 노랗고 하얘지길래 '제발 쉬어', '오바이트해' 하고 소리쳤다"고 말했다.
김원호-정나은이 결승전에서 세계 1위 중국 조에 완패하면서 '모자 금메달리스트'가 나오진 못했다.
길 감독은 "하늘이 한 번에 다 주진 않는다. 메달 후보도 아니었는데 은메달도 감사한 것"이라며 "자만하지 말고 다음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더 노력하라는 하늘의 뜻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호가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앞으로 원호가 원하는 행복한 배드민턴을 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bing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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