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작소]"웹툰 작가는 신내림을 받아야…나의 神은 스릴러"
[편집자주] 농구 웹툰을 그린 작가는 과연 농구를 잘할까? 스릴러 장르 웹툰을 그린 작가는 평소에도 무서울까? 온갖 드립이 난무하는 웹툰을 그린 작가는 실제로도 재밌는 사람일까? 수많은 독자를 울고 울리는 웹툰. 그 너머에 있는 작가들을 만나 어떤 사람인지 물었습니다. 대한민국 웹툰 작가들을 소개합니다.
"제 만화는 기본적으로 비극입니다. 비극에 처한 주인공이 딛고 일어서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고통은 사람을 성장시키는데 어떤 식으로 변화시킬지는 모릅니다. 이 변화에서 어느 정도 빛을 그리려고 합니다."
네이버웹툰에 '도태교실'을 연재 중인 황준호 작가는 학교를 '불특정 다수를 모으기 가장 쉬운 곳'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한정된 공간에 불특정 다수를 모아두면 무슨 일이 반드시 발생한다"며 "학교는 회사와 달리 야수성이 살아있고 군대같은 특수성이 없어 배경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2009년에 데뷔한 황 작가는 스릴러 장르의 웹툰을 계속 그린다. 황 작가는 "스릴러로 데뷔했다. 관성 때문인지 스스로 장르적 테두리를 만들게 됐다"며 "스토리를 잘 쓸줄 알고 시작했는데 막상 써보니 못쓰는 편이었다. 스토리를 못쓰니 자극적인 소재를 가져와야 했고 자극적인 소재들을 가장 잘 풀어내기에는 스릴러 장르가 가장 좋았다"고 설명했다.
도태교실은 그가 10년 넘게 그려온 스릴러 웹툰을 집대성한 리뉴얼 작품 격이다. 황 작가는 "도태교실은 10년 동안 경험과 공부를 바탕으로 원래 했었던 스릴러를 좀 더 리뉴얼해 보자는 느낌으로 그린 것"이라며 "'찐따' 남자가 매혹적인 여성에게 홀렸다가 차이는 패턴을 웹툰 데뷔작인 '악연'에서 차용했다"고 했다.
황 작가는 "도태교실을 연재하면서 제도라는 인간들이 모여서 만들어 낸 일종의 결과물이 왜 만들어졌을까 생각한다"며 "학교 내에서는 위계가 확실해 처음부터 약한 사람은 이미 숙이고 들어간다. 맞붙어서 져서 숙이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져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요즘 세대는 이미 다 정해져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런 억울함을 살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황 작가는 만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웹툰 작가가 됐다고 했다. 스스로를 1.5세대 정도라고 설명한 그는 어렸을적 본 훌륭한 만화들에 벽을 느껴 만화가라는 꿈에 쉽게 도전하지 못했다고 한다. 마음 한켠에 언제나 막연하게 만화를 두고 있던 그는 취업을 앞두고 포트폴리오라도 만들어볼 생각에 웹툰에 도전했다가 정식 데뷔했다.
웹툰을 통해 하고싶은 말이 있었는지를 묻자 그는 "그때 그때 처한 어둠에 대한 반응"이라며 "어둠은 부정적인 마음이나 슬픔,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들이고 거기에 대한 반응으로 스토리를 쓴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도태교실에서는 도태되지 않으려면 뭔가를 지켜야 했던, 기계적으로 방어적이게 된 한국의 20대 남성들을 생각하며 그렸다"고 말했다.
황 작가는 자신의 웹툰이 낭만적이라고 했다. 그는 "대중으로부터 녹을 받는 예술가로서 뭔가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며 "8090세대가 나름 낭만을 먹고 자란 세대다. 제 만화는 돈을 쫓는 만화가 아닌 나의 길을 가겠다는 낭만 자체"라고 했다. 이어 "그러다보니 웹툰 작가 지망생들을 만나도 "어떤 정해진 길이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길을 가도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황 작가는 스릴러는 이제 그만 그리고 싶다면서도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작가는 타고난 신기가 있어야 한다. 무당이 신내림을 받기 위해 산에 들어가 기도하는 것처럼 웹툰 작가들도 산책을 하고 공부를 더 하고 영화를 보거나 한다"며 "그렇게 해서 떠오른 생각들을 잘 다듬는 게 작업이고 결국엔 기도발이 센 사람이 더 히트를 친다. 스릴러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황 작가는 "이제 좀 장르를 바꿔서 그리거나 아예 이 업을 한발자국 떠나 스토리 작가만 한다던지 그런 식으로 해보고 싶은데 무당도 그렇지만 신내림을 피한다고 해서 도망칠 수 있는 게 아니듯 작가들도 그렇다"며 "연재 중에는 다시는 연재하지 않겠다고 하고 글 작가만 한다던가 그림 작가만 한다던가 회사에 들어간다 하지만 다음에 또 미쳐서 웹툰을 그리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는 중견 작가로서 현 휴재 시스템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황 작가는 "두 분이 도와주고 있는데 한 명이 도와줄 때마다 작가 의도가 10%씩 깎여나간다고 보면 된다"며 "일주일 동안 스토리만 써도 힘들다. 이번에 25화 연재에 한번씩 휴재할 수 있도록 제도화됐지만 10화 연재에 한번씩 휴재할 수 있도록 돼야 한다. 그냥 쉬라고 하면 작가들은 차마 못쉬기 때문에 휴재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현 기자 goroni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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