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70] 일본의 ‘원님 재판’
한국에서도 흔히 접하는 행정지도는 일본의 제도를 답습한 것이다. 행정기관이 행정 목적을 이루고자 지도·권고·조언 등을 행함으로써 행정 효율을 높이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는 취지이지만, 생각만큼 보편적인 제도는 아니다. 1980년대 일본 경제 전성기에 일본 연구자 사이에서 유행한 ‘일본 이질론’의 단골 메뉴일 정도로 서구적 법치주의 관점에서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행정지도의 가장 큰 특징은 강제성 없는 행정 작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실상 강제와 다름없는 압력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행사 범위와 한계에 대한 통제가 느슨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모호해 행정 편의주의로 흐를 우려가 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개중에는 관이 민을 가르쳐서 이끈다는 의미의 지도(指導)라는 용어를 쓰는 것부터 전근대적 발상이라는 비판도 있다.
오랜 지적과 비판에도 행정지도에 대한 일본 사회의 인식은 지금도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오·남용 방지를 위한 개선·보완을 모색하는 것과는 별개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 때 행정 주체가 더 적극적으로 행정지도를 시행하기를 요구하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자율이 초래하는 혼란보다 차라리 관 주도의 질서와 안정이 낫다는 일본 사회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최근 일본 총무성이 개인 정보 유출 방지 대책 미흡을 이유로 라인야후에 내린 행정지도에 네이버와 맺은 지분 관계 재검토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의 의도가 무엇인지 속내는 차치하더라도, 기업의 영업 사항을 넘어 소유권과 직결된 지분 문제에 법적 근거도 불명확한 지도 형식으로 정부가 개입하려 한다면 일본 정부의 재량 사항으로 묵과할 일은 아니다. 일본에서나 통하는 ‘원님 재판’으로 한국 기업의 이익이 침해받는 일이 없도록 한국 정부의 특별한 관심과 대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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