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흘리는 음식은 끝”… 실험실에서 키우는 ‘배양육’으로 대체

최지원 기자 2024. 5. 4.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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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 먹거리 위기 속 ‘뜨거운 감자’ 배양육
소-닭 등 동물 줄기세포로 만드는 대체육… 미래 육류 수요 감당할 대안으로 주목
온실가스 96% 감소 등 환경적 이점 많아… 닭 배양육은 상용화, 소고기는 다짐육 개발
2030년엔 3조8000억 원 시장으로 확대
식량 90% 수입하는 싱가포르 적극 투자… 축산업 발달한 이탈리아는 강한 반대
《실험실서 키운 ‘배양육’의 맛은

‘도축장에서 소를 잡는 게 아니라 실험실에서 스테이크용 소고기를 만들어 낸다.’ 낯설게 들리지만, 이는 곧 다가올 미래다. 동물 줄기세포를 이용해 실험실에서 대량으로 고기를 만들어내는 ‘배양육’ 세계를 들여다봤다.

“피 흘리는 음식은 이제 영원히 구시대의 것이 됐습니다.”

최근 디즈니플러스가 자체 제작한 드라마 ‘지배종’ 속 생명공학기업 BF의 최고경영자(CEO) 윤자유는 회사의 신제품 발표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화 속 BF는 실험실에서 배양한 고기, 다시 말해 도축이 필요 없는 ‘배양육’의 시대를 열어 세계적으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기업이다.

BF, ‘Blood Free’의 앞 글자를 딴 회사명과도 일맥상통한 윤자유의 대사는 결국 축산이라는 1차 산업이 붕괴하고 실험실에서 만든 배양육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BF와 윤자유는 미래의 먹거리 위기를 해결했다는 영광을 품에 안았지만, 축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에게 위협을 받게 된다.

드라마가 머지않은 2025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지배종에 등장하는 기술과 생명공학기업, 축산업의 대립 양상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그것과 매우 닮아 있다. 2024년 현 시점의 배양육 산업은 어떻게 발전하고 있을까.》




● 2030년 3조 원 시장 형성… 유명인도 투자 나서

배양육이란 동물에게서 채취한 줄기세포를 이용해 실험실에서 대량 배양해 만드는 대체육 중 하나다.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도시화로 육류 소비량은 갈수록 늘고 있다. 배양육은 이 수요를 감당할 대안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실제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50년 인구는 약 100억 명까지 증가하고, 세계 육류 소비량은 2021년 3억3000만 t에서 4억5000만 t까지 36%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즉 현재의 축산업 방식으로는 늘어나는 육류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배양육은 이점이 많은 고기다. 국제학술지 ‘환경과학 및 기술’에 따르면 배양육이 상용화될 시 기존 축산업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은 96%가 감소되고, 토지 사용량은 1%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에너지와 물 사용량 역시 각각 45%, 96% 감소한다. 드라마 속 윤자유도 BF의 배양육 제품을 소개하며 이 점을 매우 강조한다.

이런 시장성을 고려해 시장조사기관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는 배양육 시장 규모가 2030년 27억8810만 달러(약 3조8671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고기를 먹지 않는 비건(vegan) 인구가 늘어나고,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나 유대교에서도 최근 배양육을 할랄(이슬람교가 먹고 쓸 수 있는 제품) 음식으로 인정하면서 관련 시장은 더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할리우드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잭 웰치 전 GE 회장 등 유명 자산가들은 이미 여러 배양육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 개발 수월한 닭 배양육부터 상용화 시작

미국에서 식품으로 승인을 받은 잇저스트의 닭 배양육 요리. 잇저스트 제공
빌 게이츠가 투자한 잇저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배양육을 허가받은 기업이다. 2020년에는 싱가포르 식품청(SFA), 지난해에는 미 농무부(USDA)의 허가를 연달아 받았다.

최근에는 배양육 개발 기업으로 많이 소개되고 있지만, 사실 잇저스트는 식물성 단백질로 만든 대체 계란 ‘저스트 에그’를 개발한 기업으로 더 유명하다. 현재 미국 대체 계란 시장의 99%를 점유하고 있는 잇저스트는 우리나라에서도 SPC삼립을 통해 대체 계란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잇저스트는 이런 노하우를 활용해 식물성 단백질에 닭의 섬유아세포(줄기세포의 일종)를 혼합한 닭 배양육 ‘굿 미트’를 개발했다. 싱가포르에서는 ‘허버스 비스트로’라는 식당에서 굿 미트를 활용한 샐러드 음식을 판매하기도 했다. 다만 미국 허가 이후 사업을 더 확장하기 위해 현재는 판매를 일시 중단한 상태다.

잇저스트와 함께 USDA의 허가를 받은 업사이드푸드 역시 닭 배양육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연간 최대 23t의 배양육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확보하고, 향후 더 큰 규모로 늘려 가겠다는 계획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선두에 있는 두 기업이 소나 돼지가 아닌 닭 배양육을 선택한 것은 우연히 아니다. 배양육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을 없애고, 소비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닭 요리가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소고기나 돼지고기와 같은 적색육(赤色肉)은 마블링이나 자연스러운 붉은색과 같이 고려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구현하기가 더 어렵다. 반면 백색육(白色肉)인 닭은 비교적 맛이나 모양을 고기처럼 구현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또 배양육을 대량 생산하는 데에는 오랜 기간 끊임없이 분열할 수 있는 세포주가 필요하다. 이런 세포주는 동물의 체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세포를 걸러내 얻어낼 수도 있고, 유전자 조작을 통해 얻을 수도 있다. 닭은 유정란에서 여러 개의 세포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소나 돼지에 비해 세포주 확보가 쉽다는 장점도 있다.

● 현실에선 ‘다짐육’ ‘얇은 스테이크’ 가능성 높아

드라마 ‘지배종’ 스틸컷. 디즈니코리아 제공
그렇다면 지배종에서 BF가 선보인 ‘한우 스테이크’ 배양육은 언제쯤 맛볼 수 있을까.

지금도 소고기와 돼지고기 배양육은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근시일 내에 먹을 수 있는 배양육은 두툼한 스테이크 형태가 아니라, 잘게 다진 형태의 ‘다짐육’ 혹은 얇은 스테이크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먹는 스테이크(덩어리육)는 근육뿐 아니라 지방, 힘줄, 피, 세포를 둘러싼 다양한 물질들이 합쳐져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적절하게 배양이 돼야 스테이크 배양육이 탄생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BF가 다른 여러 배양육 기업을 제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스테이크와 똑같은 모양과 맛을 흉내 낸 배양육을 개발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다짐육은 줄기세포에서 근육, 지방, 결합조직을 따로 분화시켜 세포 덩어리로 만든 뒤 적당히 뭉쳐주면 고기와 비슷한 맛과 모양을 낼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재 기술 수준에서는 다짐육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국내의 업계 관계자는 “우리가 먹는 스테이크처럼 두꺼운 배양육을 만들려면 세포들이 층을 이뤄 차곡차곡 배양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포가 자라는 데 필요한 지지체, 작은 공간에 세포의 밀도를 높이기 위한 엔지니어링 기술 등이 요구되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 싱가포르·미국 ‘환영’ vs 이탈리아 ‘법적 금지’

‘지속 가능한 지구’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르며 많은 정부가 배양육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배양육을 둘러싼 여러 논란 때문에 쉽사리 허가를 내주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배양육의 ‘종자’ 역할을 하는 줄기세포의 안전성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있지만 무엇보다 1차 산업인 축산업과의 관계 때문이다.

싱가포르가 가장 먼저 배양육 승인에 나선 데에는 지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전체 700㎢ 규모의 작은 섬나라인 싱가포르는 전체 면적의 약 1%만을 농지로 사용하고 있다. 농업과 축산업이 발달할 수 없는 조건이다.

식량의 90%를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 오는 만큼 싱가포르에 ‘식량 안보’는 매우 중요한 국가적 문제로, 배양육은 이를 해결해줄 중요한 대안이다. 특히 2030년까지 필요한 식량의 30%를 자급자족한다는 싱가포르 정부의 ‘30 by 30’ 목표는 배양육에 날개를 달았다.

반면 축산업이 발달한 이탈리아의 경우 배양육을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탈리아 의회는 지난해 11월 동물에서 유래한 세포 배양 조직으로 만들어진 배양육의 생산, 수출, 수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세포배양육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부 의원들은 “반과학적”이라고 비난하며, 투표 당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큰 표 차이로 법안은 통과됐다. 이탈리아에서 배양육을 생산하거나 수출·수입하면 6만 유로(약 888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그간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았던 한국에서는 최근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나섰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월 세포 배양 기술을 통해 얻은 원료를 식품 원료로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식품 등의 한시적 기준 및 규격 인정 기준’ 개정고시를 발표했다. 배양육이 식품으로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티센바이오팜, 다나그린, 씨위드, 셀미트, 스페이스에프 등 여러 스타트업이 다양한 배양육을 개발 중이다. CJ, 롯데, 대상 등 대기업에서도 배양육 기업에 투자하거나 업무협약을 통해 기술 및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식약처에서 개정고시 외에 배양육에 대한 허가 트랙 등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내 기업이 많이 뛰어든 만큼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규제 완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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