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압류자 “생계비는 돌려달라” 연 2만건
‘매달 법원 신청’ 번거롭고 비용 부담…제도 보완 필요
빚 연체로 통장이 압류된 채무자들이 생계비를 확보하기 위해 법원에 압류 일부를 취소해달라고 신청한 사건 수가 매년 2만건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법상 185만원은 생계비로 보장받을 수 있지만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아 애꿎은 행정 비용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23일 경향신문이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받은 대법원 자료를 보면, 법원에 접수된 압류금지채권범위 변경 사건은 지난해에만 2만14건에 달했다. 사건 접수는 2019년 1만7407건에서 2020년 2만4597건, 2021년 2만6329건으로 꾸준히 오르다 2022년 2만861건으로 떨어졌다.
김영룡 법무사는 “압류금지 변경신청 숫자가 줄어든 것은 필요성이 줄었다기보다 압류 채무자가 개인회생을 신청하면서 준 것일 가능성이 있다”며 “회생으로 가는 것은 단순 압류보다 채무 규모 등에서 상황이 더 심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 통계월보에 따르면 올 1~2월 개인회생 접수 건수는 2만216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9% 증가했다.
현행법상 185만원의 생계비는 압류 금지 대상이다. 민사집행법 246조는 압류를 금지하는 채권 목록에 ‘1개월간 생계유지에 필요한 예금’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압류가 시작되면 185만원을 따로 받아내는 게 쉽지 않다. 채권은행은 채무자가 여러 은행에 통장을 가지고 있는 만큼, 185만원만 따로 추려낼 방법이 없어 일괄적으로 통장을 동결한다. 이에 채무자들은 법원에 압류금지채권범위 변경을 신청하고 허가를 받아 185만원을 돌려받아야만 한다.
법원에 이런 제도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엔 빚을 갚을 때까지 사실상 통장에서 한 푼도 건지지 못한다. 법원 제도를 이용하더라도 매달 신청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행정 비용으로 채무자들의 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고금리부담완화 패키지’ 공약에서 전 국민 생계비 계좌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전 국민 생계비 계좌’는 모든 은행을 통틀어 예금자당 1개의 생계비 계좌를 개설, 추후 금융기관 압류가 이뤄지더라도 이 계좌에 입금된 최저생계비만큼은 제외해주자는 게 골자다. 선제적으로 185만원을 따로 추려낼 통장을 만들어 법원 절차를 거치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생계비 계좌를 담은 은행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여당도 크게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다음달 29일 임기가 종료되는 21대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최근 시중금리가 높은 상태에서 취약차주가 급증하는 상황을 정치권이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금융기관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는 450만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가계대출자 1983만명 중에서 다중채무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22.7%에 달했다. 다중채무자의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58.4%로 소득의 약 60%를 원리금 상환에 쓰는 것으로 추산됐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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