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싸서 충격 받았다"…입소문 난 '성지' 약국 가보니 [현장+]
동네 약국보다 평균 20~30% 저렴
"불황형 소비 행태 작용"
"교통비 빼고도 훨씬 이득이라 충격이다. 동네보다 30% 이상 저렴하다."
최근 온라인에서 일명 '성지' 약국을 다녀왔다는 후기가 화제다. 해당 약국들의 네이버 지도 방문자 리뷰는 적게는 1100건에서 많게는 3만9000건까지 이른다. 성지 약국이란 동네 약국에 비해 일반의약품 값이 두드러지게 저렴한 곳을 의미한다.
누리꾼들은 서울 외에도 성남, 수원 등 각 지역의 저렴한 약국의 위치를 공유하는가 하면, 지역 상품권으로 결제하면 더 저렴하다는 등 일종의 '팁'을 일러주는 누리꾼도 있었다. 불황형 소비가 이어지면서 일반의약품조차 '최저가'로 구매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온라인에서 가장 저렴한 약국으로 입소문 난 곳은 서울 종로구 종로5가 일대의 'ㅂ' 약국과 'ㅇ' 약국, 중구 회현동의 'ㅇ' 약국 등이다. 29일 오전 종로5가역 인근 약국 거리에 방문해보니 점포마다 영업을 준비하는 약사와 직원들만 20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11시께 약국에 다시 방문해보니 창구마다 상담하는 고객들로 분주했다. 창구 뒤에서 약을 꺼내는 직원, 고객과 상담하는 직원의 호흡이 척척 맞아 마치 공장을 보는 듯했다. 어떤 고객은 아예 사야 할 약을 목록으로 적어와 순서대로 열거하며 구매했다. 소비자 대부분이 양손에 봉투를 들고 나갔다.
이 약국에서 파스, 소화제 등 가정상비약을 구매한 60대 이모 씨는 "여기서 한 번 사면 다른 곳에서 못 사게 된다"며 "갑자기 아플 때나 처방 약은 동네 약국을 찾고, 그 외에는 종로로 일부러 온다"고 밝혔다.
경기 남부에서 왔다는 30대 김모 씨도 "가족들 영양제와 인공눈물을 사러 왔다"며 "지난해 인터넷으로 영양제 가격을 검색하다 우연히 알게 돼 이후 꾸준히 찾고 있다. 동네 약국 대비 영양제 한 통에 2만원 이상씩 차이 나니까 여길 올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날 기자가 동일 제품을 종로 'ㅇ'약국, 용산구 동자동의 한 소형 약국에서 각각 구매해 비교해보니 약들이 시중가 대비 최대 40% 이상 저렴했다. 예컨대 생리통 진통제로 알려진 '이지엔6 이브'의 경우 종로 'ㅇ'약국이 1800원, 소형 약국이 3500원이었다. 종로가 48.5% 더 저렴하다. 액상 소화제인 '까스 활명수'도 한 병 기준으로 종로가 1000원, 소형 약국이 1200원이었다. 이 역시 종로가 16.6% 저렴한 수준이다.
이외 동일 제품으로 구매하지 못해 직접 비교가 어려웠던 제품들도 평소 동네 약국에서 구매했을 때보다 훨씬 저렴한 것이 체감됐다. 3000원에 샀던 방수 밴드가 2000원, 2000~3000원대인 파스가 1200원, 700원대의 비타민 음료도 450원 선이었다. 소화제는 시중 약국 가격대로 용량이 2배 들어있는 제품을 구할 수 있었다.
'ㅇ' 약국 직원 이모 씨는 "'박리다매 전략으로 개별 제품에 대한 마진을 최소치로 줄이는 것"이라며 "우리만 그런 건 아니고 종로에 밀집해 있는 약국들이 오랫동안 가격 경쟁하며 장사해왔기 때문에 모두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장 인기가 많은 품목은 영양제다. 시중 가격에 비해 70%까지 저렴하기 때문"이라며 "오후엔 바쁘다"고 부연했다.
일부 약국의 약값이 저렴할 수 있는 이유와 관련, 종로 일대 약국에 의약품을 공급하는 도매업체의 관계자는 "종로 일대 약국과는 거래한 지 워낙 오래된데다 약국마다 주문하는 양도 많아 신뢰 관계를 토대로 일부 의약품에 한 해 단가를 조금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격이 워낙 저렴하다 보니 경쟁 약국의 볼멘소리도 듣는 상황이다. 지난 15일 지역약사회는 남대문의 한 약국이 지나치게 저렴한 가격으로 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에 대해 가격 질서 유지를 당부하는 윤리위원회를 소집했다. 최근 지역약사회는 "해당 약국의 불법 요소가 발견되면 고발 조치 등을 진행하겠다"며 견제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한 약사회 관계자는 "성지 약국이라고 해서 모든 약이 다 저렴한 건 아니다. 어떤 제품을 싸게 팔았으면 다른 특정 제품은 비싸게 팔아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런 박리다매식 판매전략을 '난매'라고 하는데, 약사사회에선 시장 질서를 흐린다며 다소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다고 마냥 비판하기에는 소비자 정서도 고려해야 하므로 대응에 난감한 면이 있다"고 부연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불경기일수록 소비자들이 더 저렴한 제품을 탐색하는 성향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며 "특히 질병의 응급도에 구애받지 않는 인공눈물, 영양제, 비상 상비약 등을 중심으로 '불황형 소비'가 더 두드러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비단 일반의약품만 그런 건 아니다. 최종 판매업자가 판매가격을 정하는 오픈 프라이스제 상품들은 모두 가격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라며 "같은 제품이라도 규모의 경제성 등의 요인으로 유통 과정에 따라 가격이 다를 수 있다. 불황일수록 가격적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불리한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럼에도 약은 갑자기 아플 때 멀리까지 가서 구매하지 않기 때문에 지역 상권에서도 수요가 있긴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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