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에서 찾은 천사의 맛…전쟁 말고 커피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
성수동 디 진테제 하이카페
블루보틀이 "천사가 노래하는 맛"이라
극찬했던 '모카 마타리'의 원산지 예멘
트렌디한 성수동에 문 연 '디 진테제'
다양한 직군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내전·난민이 아닌 예멘 커피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사람들은 예멘이 커피 역사에 방점을 찍은 중요한 산지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대체로 그곳의 커피가 “거래하기 어렵고 가격도 비싸다”고만 생각했다. 커피 외에 예멘에 대해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전쟁과 난민을 둘러싼 뉴스가 대부분이다.
커피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커피의 여왕인 ‘예멘 모카 마타리’를 마셔봤거나, 블루보틀의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이 예멘 커피를 마시고 ‘천사가 노래하는 맛’이라고 칭송한 것을 기억한다. 미국에 사는 예멘인 목타르가 블루보틀에 예멘 커피를 소개했다는 내용의 책 <전쟁 말고 커피>(원제: The Monk Of Coffee)가 널리 읽힌 영향이다. 스페셜티커피 업계에선 예멘 커피를 다루는 대표 업체로 퀴마(Qima)를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예멘 커피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며 상당 부분 오해를 동반한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서울 성수동에 예멘 커피의 진짜 이야기와 양질의 커피를 내어주는 공간이 하나 있다. 예멘 출신의 알라 알무라이시와 한국인 김예한이 펼쳐 나가는 ‘디 진테제 하이카페’다. 독일의 한 대학 기숙사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각각 의학과 철학을 전공하다가 서로 통하는 구석이 꽤 많다고 생각했다.
알라가 예한의 손을 잡고 한국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 있었기에 가능했다. 알라의 한국행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의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파일럿이 되기로 결심한 것인데, 독일보다는 한국이 파일럿 과정을 밟는 데 보다 유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미래가 불투명해졌고, 알라와 예한은 그 시간을 커피와 함께 보냈다. 국경은 폐쇄됐지만 한국 커피인들의 교류는 더욱 활발해졌다. 알라와 예한은 그들과 관계를 맺고 커피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곧 예멘 커피에 대한 오해와 짧은 이해가 섞인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심했다. “양질의 예멘 커피로 예멘 커피에 관한 오해를 풀고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자”고.
예멘의 커피 열매는 수백 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2000m가 넘는 험준하고 건조한 지대에서 수작업으로 재배된다. 지역 특산품이나 다름없는 커피는 그래서 오래된 유통 경로를 따라 꾸준히 판매돼 왔다. 지금까지 전통적인 방식으로 예멘 커피를 소비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연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소비한다. 여전히 예멘 커피의 가격은 산악지대부터 항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중개인을 거치며 결정된다. 그러니 예멘 커피 가격은 여느 다른 산지의 커피와 다르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예멘 커피를 소비하는 나라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이다. 그중 ‘커피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모카 마타리가 상당수를 차지하는데, 예멘의 수많은 커피 산지 중 하라즈 지역의 마타리 커피만 찾는 것이다. “세계 몇대 희귀 커피”를 찾는 특이한 문화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예멘 커피는 원산지와 상관없이 마타리의 탈을 쓰고 고가에 유통되기도 한다. 예멘 커피에 대해 아직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알라와 예한은 예멘 커피가 가진 이런 이야기를 한국을 기반으로 조금씩 풀어내고 싶었다. 예멘에 커피 가공 시설을 세우고 한국에 커피를 유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동시에 커피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예멘과 관련한 모든 질문을 받고 많은 이야기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성수동에 ‘디 진테제 하이카페’가 생기니 더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예멘 커피 전파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디 진테제’는 칸트의 철학 개념에서 따온 단어로 ‘경험의 통일성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뜻한다. 알라와 예한은 이렇게 예멘 커피에 대한 우리 모두의 경험을 종합하는 과정을 통해 디 진테제를 완성해가고 있다.
디 진테제 하이카페는 성수동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자리해 있다. 마치 예멘의 고원을 떠올리듯 서울의 먼 풍경을 내다볼 수 있는 이곳은 ‘헤이그라운드’라는 공유오피스의 카페를 겸하고 있어 다양한 직종과 직군의 사람들이 경계 없이 모여든다. 알라와 예한은 그들에게 쉬지 않고 예멘의 커피를 설명한다. 그들과 나눈 이야기는 예멘의 산과 골짜기처럼 높고 깊게 쌓여간다.
조원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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