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이대로 쓰러지면…' 공포 사로잡힌 발트 3국

김태훈 2023. 12. 3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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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 3국, 제정 러시아 및 소련 지배 오래 받아
나토 회원국이지만 러와 국경 맞대 안보 취약
BBC "푸틴이 이기면 다음 먹잇감은 발트 3국"

‘우크라이나가 이대로 쓰러지면 러시아의 다음 먹잇감은 발트 3국일까.’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고전을 면치 못하며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북유럽 국가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통칭하는 발트 3국이 가장 대표적이다. 앞서 제정 러시아와 공산주의 소련(현 러시아)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은 이들에게 러시아의 가공할 군사력은 일종의 트라우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이 러시아군 훈련소를 찾아 새로 동원된 예비군들의 훈련 모습을 참관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30일(현지시간) 영국 BBC는 올 한 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진행 과정을 분석하며 ‘서방이 실패했다’는 진단을 조심스럽게 내렸다. 우크라이나가 끈질기게 요구한 주력전차 제공이 이뤄지긴 했으나 시점이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미국산 에이브럼스, 독일산 레오파르트2, 영국산 챌린저2 등 서방을 대표하는 탱크들이 우크라이나군에 인도되었을 때는 이미 러시아군이 관련 정보를 입수하고 방어벽을 철저히 세운 뒤였다. 그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공언한 이른바 ‘대반격’은 시작부터 지지부진했고 러시아에 이렇다 할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2022년 2월부터 벌써 2년 가까이 이어진 전쟁은 아직 끝날 기미가 없다. 서방 국가들 사이에 전쟁 피로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미국의 우크라이나 군사원조마저 끊길 판이다. 야당인 공화당이 지배하는 미 의회 하원은 ‘우크라이나가 과연 승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감을 드러내며 조 바이든 대통령이 요청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 승인을 거부했다. 백악관이 “미국의 원조가 없으면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질 수도 있다”며 설득에 나섰으나 공화당은 막무가내다.

3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시가지가 폐허로 변해 있다. 전날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주택과 기반시설이 파괴되고 2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패배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가장 다급해진 나라들은 바로 북유럽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다. BBC는 “발트 3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성공할 수 있다면 5년 내 자기들에게 화살이 올 것으로 확신한다”고 보도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오랫동안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가 스웨덴이 제정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하며 18세기 초부터 러시아 손아귀에 들어갔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인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 공산주의 소련이 성립하자 비로소 독립의 기회가 찾아왔다. 혁명 이듬해인 1918년 1차대전이 끝나며 발트 3국은 일제히 독립국이 되었다.

하지만 1939년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에 휩싸이며 다시 위기가 도래했다. 소련은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 강대국들이 나치 독일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는 틈을 타 발트 3국에 “주권을 내려놓고 소련군의 주둔을 허용하라”고 협박했다. 1941년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며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2차대전 기간 내내 독일군과 소련군의 각축장으로 전락했다. 전후에는 승전국인 소련에 병합되는 운명을 맞는다.

1991년 소련 해체를 계기로 거의 반세기 만에 국권을 회복한 발트 3국은 다시는 러시아의 침략을 받지 않을 목적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했다. 현재 에스토니아 등에는 영국군을 필두로 나토 동맹국들 군대가 주둔하며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고 있다.

‘북유럽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가진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가 미국 CNN 방송에 출연해 왜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하는지, 러시아가 승리하는 경우 초래될 치명적 위협이 무엇인지 등을 설명하고 있다. 방송 화면 캡처
하지만 발트 3국은 안보면에서 몇 가지 약점이 있는데, 먼저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거나 너무 가깝다는 점이다. 국토 면적이 매우 좁고 인구도 적다. 따라서 러시아가 대규모 지상군을 동원해 전면전을 감행하는 경우 본토 방어가 사실상 어렵다. 나토 동맹국들이 대응에 나서며 국토를 되찾는다고 해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이미 인구와 기반시설 측면에서 심각한 파괴를 겪은 뒤일 가능성이 크다.

그 때문에 발트 3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나토에 더 많은 병력과 장비를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 배치할 것을 촉구했다. 나토는 올해 7월 정상회의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개최하는 등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나토가 발트 3국을 반드시 방어할 것이란 결의를 내비치기도 했다.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는 전쟁 발발 후 국제사회에서 러시아 비판, 그리고 우크라이나 지원에 앞장서 ‘북유럽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러시아가 일단 우크라이나에서 성공하면 반드시 다른 이웃나라도 침공할 것”이라는 게 칼라스 총리의 지론이다. 그는 발트 3국 안보를 지키기 위해 본인이 직접 차기 나토 사무총장을 맡는 방안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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