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인력난·수출포기 호소에도···'보상·휴식' 여론에 원안서 후퇴

세종=양종곤·신중섭 기자 2023. 11. 1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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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개편 설문 결과 및 개편 방향]
주52시간 만족도 높아 큰틀은 유지
'근로시간 어려움' 기업도 14% 불과
현장선 특정 주에 업무량 몰리는데
정부, 노사정 대화에 사실상 공 넘겨
15일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에 중고 주방 기구와 가구들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대구에 있는 자동차 2차 부품사들은 사업 아이템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 부품은 생산계획이 연간 단위로 세워지는데 주52시간 근로제로는 수시로 변하는 설비 상태, 인력 변동 등 수많은 현장 변수를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안산에 있는 일부 전자 부품 및 자동차 부품 제조 업체들은 급기야 베트남으로 생산 공장을 이전했다. 강원에 있는 의약·바이오 업체들도 수출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정 주에 일시적으로 업무량이 몰리는 상황을 현행 근로시간제로 해결하지 못해서다.

고용노동부가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위해 취합했던 중소기업들의 목소리들이다. 고질적인 인력난에 경기 침체까지 덮친 중소 제조업 현장에서는 주52시간제의 경직성을 풀어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동시에 현재도 제대로 된 임금 보상과 휴식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개선이 우선이라는 근로자들의 우려도 컸다. 이 방안의 해결책은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하고 합의가 어려운 노사정 테이블에 오른다.

고용부가 13일 근로시간 개편 방향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공개한 6030명(근로자·사업주·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근로시간 개편 찬반 여론이 비등한 현 상황을 그대로 보여줬다. 설문 결과는 모든 기업은 주52시간제를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전제가 틀렸지만, 중소 제조 현장의 어려움이 크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번 결과를 통해 고용부는 주52시간제 틀은 유지하되 일부 업종과 직종에 한해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확인했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에 대해 국민은 46.4%, 근로자는 41.4%, 사업주는 38.2%가 동의했다. 우리나라 주52시간제는 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시간 12시간을 더한다. 고용부의 개편 방향은 이 연장근로를 더 늘릴 수 있는 방안이다.

그러나 현행 근로시간 제도의 만족도 척도인 근로시간 감소 여부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근로자 16.1%를 비롯해 사업주(15%), 국민(23%) 모두 낮았다. 이는 대다수가 현행 주 52시간제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의미다. 근로시간 개편의 목적인 ‘갑작스러운 업무량 증가를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동의 비율은 사업주가 33%에 그쳤다. 사업주 중 6개월 내 현재 근로시간으로 어려움을 겪은 사업주도 14.5%에 불과했다. 주목할 점은 제조업(27.6%)이나 100~299인 사업장(40.3%)처럼 특정 업종과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에서는 이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고용부의 이번 방향대로 전체 업종이 아니라 특정 업종과 직종에 따라 근로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방증한 것이다.

특히 설문은 근로시간 개편이 공정한 보상과 휴식과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을 재확인하게 했다. 근로시간 제도 개편 시 우선 사항에 대해 ‘일한 만큼 임금 보상’을 꼽은 비율은 근로자·사용주·국민 모두 절반을 넘거나 근사 수준으로 1위였다. 3개 답변군 모두 2위로 ‘더 일했을 때 쉬는 방안’을 꼽았다. 이 맥락은 연장근로에 따른 임금 지급 설문에서도 읽힌다. 이 질문에서 노사 모두 일한 만큼 초과 근로 수당으로 지급한다는 응답은 근로자는 52.5%를 기록했다. 동시에 노사 모두 근로시간 제도가 개설될 때 장시간 근로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고용부가 이날 발표한 근로시간 개편 방향은 설문 조사 결과를 사실상 그대로 반영했다. 그러다 보니 3월 근로시간 개편안과 비교하면 주요 안이 대부분 실종됐다. 3월 개편안은 전 업종에서 특정주에 최대 주 69시간 또는 64시간 근로가 가능하고 나머지 주는 몰아 쓴 연장근로만큼 쉬는 게 골자다. 동시에 연장근로 단위 총량관리제를 도입했다. 연장근로를 연 단위로 관리하면 기존보다 최대 30% 감축되도록 설계했다. 고용부는 개편 방향에 대해서도 노사정 대화를 방법론으로 제시했다.

우려되는 것은 노사정 대화가 쉽지 않은 제반 여건이다. 제1노총이 전격적으로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복귀했지만 정부의 주요 노동 정책에 대한 반감은 여전하다. 한국노총과 노조 지형을 양분하는 민주노총의 정부를 향한 비판 입장은 여전하고 경사노위 복귀는 요원하다. 경제단체들도 이날 개편 방향에 대해 마뜩잖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통해 “주 단위 연장근로 칸막이로 인해 겪는 어려움은 업종·직종에 관계없다”고 밝혔다.

세종=양종곤·신중섭 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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