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키오스크 주문할 줄 몰라요”… 노인을 위한 배려는 없다

허시언 기자 2023. 11. 12.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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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0만 명의 '실버 세대' 디지털 일상에서 소외돼
불편함 넘어 불이익과 일상적 삶의 위기로 다가와
정작 정부는 내년도 디지털 교육 예산 삭감해버려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요즘은 어딜 가든 사람 대신 기계가 우리를 반겨줘요. 라노는 기계에 익숙한 MZ세대이기 때문에 어떤 키오스크든 그럭저럭 잘 쓸 수 있는데요. 어르신들은 사용법을 잘 모르니 난감해하시는 것 같아요. 라노는 버스터미널이나 식당에서 ‘키오스크 사용을 못 하겠으니 좀 도와달라’는 어르신들의 부탁을 몇 번이나 받아봤거든요. 라노도 가끔 버벅거리면서 사용할 때가 있는데,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은 키오스크를 사용하기 참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패스트푸드점에서 무인 주문기를 이용해 식사를 고르고 있다. 국제신문DB


예전에는 사람을 고용해 처리했던 일을 키오스크가 대신할 수 있게 되자 키오스크 운영 대수는 급격하게 늘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국내 키오스크 운영 대수는 2019년 18만9951대에서 2022년 45만4741대로 3년 만에 2배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이 중 카페, 음식점 등 요식업 매장에서는 2019년 5479대에서 2022년 8만7341대가 돼 약 16배로 급증했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격하게 전환되며 이제는 어디서든 키오스크를 볼 수 있게 됐습니다.

키오스크는 카페, 음식점 뿐만 아니라 버스터미널, 영화관, 병원, 은행, 물품보관소, 동사무소 등 다양한 곳에 도입됐습니다. 키오스크를 사용하지 못하면 버스도 탈 수 없고, 문화생활도 즐길 수 없으며, 병원과 은행 수납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누군가에겐 ‘사람과의 의사소통 없이 빠르고 편하게 일 처리를 할 수 있는 기계’지만, 누군가에겐 ‘화면을 어떻게 터치하는지, 계산은 어떻게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입력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기계’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아날로그보다 디지털이 더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약 950만 명의 65세 이상 ‘실버 세대’는 디지털 일상에서 소외되고 있습니다. 서울디지털재단 조사 결과에 따르면 55세 미만 응답자의 94.1%가 키오스크를 이용해 봤다고 응답한 반면,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이용률이 낮아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55~64세는 68.9%, 65~74세는 29.4%, 75세 이상은 13.8%만 키오스크를 이용했죠. 고령층은 ‘사용 방법을 모르거나 어려워서(33.8%)’, ‘뒷사람 눈치가 보여서(17.8%)’ 등의 이유로 키오스크를 이용하지 않았다고 답변했습니다.

부산의 한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전종태(82) 씨는 “버스 탈 때는 직접 와서 직원을 통해 표를 사면 되고, 영화관 같은 곳은 안 가면 그만이지만 음식점에서 키오스크를 맞닥뜨리면 참 난감하다”고 말했습니다. 전 씨는 식사를 하러 들어간 음식점이 키오스크 주문을 받는 곳이면 그냥 등을 돌려 나온다고 했습니다. 키오스크 사용법을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 씨는 나이가 들어서 키오스크 사용법을 배우기도 쉽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전 씨는 “식당은 밥을 먹는 곳이니 아예 가지 않을 수 없는데다 주문을 받는 직원이 따로 없을 때가 많다”며 “식사를 하려고 들어갔다가 주문을 하지 못하고 그냥 나오는 게 고역이다”라고 전했습니다.

많은 노인들은 키오스크를 사용할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사용법도 모르고, 배워보려고 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고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키오스크를 피해 다니는 것만이 상책이죠.

최덕녀(84) 씨는 “내가 혼자 가는 곳은 동네 마트, 시장, 작은 병원 등 키오스크가 없는 곳뿐이라 혼자 기계 주문을 할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키오스크를 쓰는 매장은 자식과 손주 등 키오스크를 사용할 수 있는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만 방문합니다. 기계를 전혀 사용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최 씨는 기계를 사용할 줄 몰라 생기는 불편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토로합니다. 스마트폰도 잘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택시도 부르지 못합니다. 콜택시 전화를 해도 이전에 비해 쉽게 잡히지 않고, 지나다니는 택시들도 죄다 예약 중인 택시뿐이라 택시 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 최 씨는 “생활이 불편해진 것도 있지만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에 관련된 자식들의 대화에 끼지 못해 슬프다”며 “명절에 온 가족이 다 같이 모여앉아 TV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가 컸는데, 요즘은 모여도 다들 각자의 스마트폰만 보고 있어 세대 간 소통의 장벽이 커진 느낌이 든다”고 아쉬움을 전했습니다.

어르신 위한 키오스크 교육.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의 ‘디지털 격차로 인한 노인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정보취약계층인 노인들의 디지털 격차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고 파악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활용이 생존 조건이 된 현실에서 노인들이 직면하는 문제는 불편함을 넘어 불이익과 일상적 삶의 위기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중심의 온라인 활동이 보편화하면서 일상생활에서 노인의 자기결정권이 박탈당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각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에서는 고령층의 디지털 소외를 줄이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정부는 내년도 디지털 교육 예산을 삭감해버렸죠.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디지털 배움터 운영사업 예산은 올해 698억4000만 원에서 2024년 279억3600만 원으로 60%가 삭감됐습니다. 이 예산은 키오스크 활용법, 스마트폰 열차 예매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디지털 기본 역량부터 심화 교육 사업에 쓰입니다. 예산 삭감은 디지털 교육이 필요한 고령층의 정보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인하대 이은희(소비자학과) 교수는 “음식점, 동사무소, 버스터미널 등 곳곳에 키오스크가 도입돼 사용방법을 모르면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생길 정도가 됐다. 젊은 노인은 그럭저럭 잘 사용할 수 있겠지만 80, 90대 노인들의 일상생활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노인들은 온라인 시대에서 소외되기 쉽고,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교육을 하는 것이 첫 번째가 돼야 합니다. 이 교수는 “키오스크가 점점 더 사용하기 쉽도록 개발되고 있어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구멍이 없도록 촘촘하게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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