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에너지 ‘백색수소’ 시대 열리나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한때 세상을 바꿔놓을 것 같던 수소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졌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수소의 생산을 둘러싼 어려움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재생에너지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높은 비용으로 인해 아직 현실적이지 않다. 현재 대량의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은 석탄이나 천연가스 등을 이용하는 것인데, 이들 모두는 대량의 온실가스를 방출하는 문제점이 있다. 천연가스를 사용하되 수소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별도로 포집해 저장하는 '블루수소'가 현실적 대안으로 고려되고 있지만, 비용과 기술적 문제로 인해 실용화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경제성 이유로 수소 실용화에 어려움
만약 지구상에 천연가스와 같이 수소가 땅속 어딘가에 매장돼 있다면 수소 생산을 둘러싼 고민은 상당 부분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우리는 지각 속에 수소가 기체 상태로 저장돼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수소는 원자 가운데 가장 가벼운 것으로 쉽게 날아가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런 수소가 지하에 매장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기체 상태로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수소를 '백색수소'라 부른다. 그 자체로 이용 가능하다는 뜻을 색깔로 표현한 것이다. 1987년 아프리카 서부에 위치한 내륙국가 말리의 부라케부구 지역에서 우물을 파던 인부가 담배를 피우다가 새어나온 가스에 불이 붙어 화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단순한 사고로 간주돼 잊힌 이 사건은 2007년 해당 지역에 대한 석유 및 천연가스 탐사를 시작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됐다. 폐쇄돼 있던 해당 우물을 개봉해 기체 성분을 조사하자 순도 98%의 수소가 땅속에서 분출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몇 개의 시추공을 통해 해당 지역에 수소가 매장돼 있음을 확인한 사업자는 해당 수소를 발전기와 연결해 전력을 생산하기로 결정했고, 약 7년에 걸쳐 마을에 전력을 공급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음을 알게 됐다. 아프리카 외진 곳에서 발생한 이 일은 2018년 국제수소에너지 학술지에 게재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2023년에는 프랑스 동부의 로렌 지방에 대규모로 매장된 수소가 프랑스 연구자들에 의해 발견됐다. 지하에 매장된 메탄가스를 측정하기 위한 연구 과정에서 대량의 수소가 매장돼 있으며, 더 깊이 내려갈수록 순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깊이 1200m 지점에서 순도 20% 수준의 수소가 발견됐는데, 시물레이션 결과 지하 3000m 지점에는 순도 90% 이상의 수소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로렌 지역에만 최대 4600만 톤의 수소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는 현재 세계적으로 천연가스를 이용해 생산되는 수소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이다.
프랑스에 대규모 수소가 매장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연구자들은 해당 지질구조와 유사한 미국, 호주, 스페인, 독일, 코소보, 핀란드, 스웨덴, 폴란드,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의 수소 매장 가능성을 타진했다. 과거 탐사기록을 조사하던 과학자들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주기율표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멘델레예프가 1888년 우크라이나 석탄광산 인근에서 수소가 지상으로 분출하고 있음을 기록한 사실이 있었으며, 호주에서는 석유를 찾던 탐사자들이 1921년 시추공을 통해 순도 70~80%의 수소가 분출했다는 기록을 남긴 것을 찾아낸 것이다.
2022년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발표한 모델에 따르면, 지구 지각 내에는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수소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수소가 경제적으로 채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원체 많은 양이 있기 때문에 석유와 마찬가지로 전체 매장량의 10% 정도만 경제성이 있어도 1조 톤 규모에 이르러 수소의 대량 사용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다. 더 큰 장점은 매장된 수소는 석유나 가스처럼 뽑아내면 끝이 아니라 다시 지각 내에서 생성돼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다는 점이다. 지각 하부에 위치한 맨틀에 분포하는 철분을 다량 함유한 감람석이 높은 압력과 고온 상태에서 물과 반응할 경우 산화되면서 사문석으로 변화하는데, 이 과정에서 수소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고대 암석에 포함된 미량의 방사선이 물 분자를 분해하는 과정에서 수소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는데 아직 구체적인 수소 발생 방식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점이 많다.
발 빠른 투자자들은 벌써 수소 탐사 참여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의 빌 게이츠는 콜로라도에서 수소를 탐사하고 있는 코로마라는 기업에 다른 동업자와 함께 9000만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밖에 네브래스카주, 오대호 주변, 동해안 지역 등에서 대규모 수소 매장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탐사 작업이 시작되고 있다. 일부 프로젝트의 경우 가시적 성과가 조만간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미국 이외에도 스페인, 호주 등에서도 매장된 수소 탐사가 시작되고 있다.
수소 탐사 위한 연구와 투자 지속돼야
인류가 당면한 에너지와 기후변화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줄 백색수소가 대량으로 매장돼 있을 가능성은 가슴을 들뜨게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수천m를 파내려가야 하는 굴착 기술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셰일은 지하 3000m 정도까지 굴착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러한 방식을 수소 채굴에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또한 천연가스에 비해 훨씬 가벼운 수소를 어떤 방식으로 포집해 활용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더 큰 문제는 현재의 기술로 경제성을 충족시키는 수소가 얼마나 매장돼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질구조를 고려해볼 때 대규모 수소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매장 여부는 정밀 탐사 등을 통해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백색수소가 낙관적 예상대로 지하에 대규모로 매장돼 있다면 수소 이용을 둘러싼 그동안의 논란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수소 이용에 대해 다시 한번 관심을 가지고 이를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지속돼야 할 것이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파면에 이혼” 제자 성폭행하고 선처 호소한 국립대 교수 - 시사저널
- “숏컷 페미는 맞아야”…편의점 알바 폭행 20대 ‘신상공개 청원’ 등장 - 시사저널
- 생후 4개월 아들 먹던 분유 팔고 이온음료 준 母…2심도 ‘징역 4년’ - 시사저널
- “아버지뻘에 예의 없이” “그래서 인기”…與 ‘이준석 싸가지론’ 갑론을박 - 시사저널
- 택시비 뜯으려 여중생 강간·감금한 40대…母 ‘불우가정’ 호소 안통했다 - 시사저널
- 文 만난 조국, 출마할 결심? - 시사저널
- 동거女 미성년 딸 2명 수면제 먹여 성폭행한 60대…징역 10년 - 시사저널
- 순항하는 줄 알았던 다이어트…‘이 신호’ 나타나면 멈춰야 - 시사저널
- 하루 세 번 양치질, ‘이렇게’ 하면 되레 건강 악영향 - 시사저널
- 전국 각지서 속출하는 ‘빈대’…서식 확인·방제 어떻게? -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