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소녀만 건너뛰고 메달 걸어줬다…아일랜드 체조 대회 인종차별 논란
아일랜드의 어린 체조 선수들이 메달 수여를 기다리며 일렬로 서있다. 시상자는 가장 왼쪽에 선 선수부터 차례로 목에 메달을 걸어준다. 흑인 선수가 메달을 받을 차례가 됐지만 시상자는 그대로 이 선수를 건너뛰고 바로 옆 선수의 목에 메달을 걸어준다. 흑인 선수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상자는 개의치 않고 그대로 다른 선수들의 목에 메달을 걸어준다.
이 같은 모습이 담긴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와 아일랜드 체조협회가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1년여 전 발생한 이 사건이 온라인상에 알려지자 관계 당국은 뒤늦게 사과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일(현지시각) 영국 가디언, 아일랜드 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영상 속 사건은 지난해 3월 아일랜드 체조협회가 주관한 대회에서 벌어졌다.
메달을 받지 못한 소녀는 이 대회의 유일한 흑인 참가자였다. 영상을 보면 당시 주변에는 시상자 뿐 아니라 사진작가와 코치진, 기타 관계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역시 흑인 소녀가 메달을 받지 못한 상황을 바로잡지 않았다.
흑인 소녀 가족 측에 따르면 이후 이 가족은 아일랜드 체조협회 측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1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도움을 받지 못했다. 협회가 당시 사건을 사실상 시상자와 개인적인 분쟁으로 취급했다는 게 가족들 주장이다. 아일랜드의 스포츠 관리 당국 GI 역시 흑인 소녀와 가족들에게 별다른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18개월이 지난 뒤에서야 국제사회에 알려졌다. 지난 23일 미국의 흑인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는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이 사건을 알리며 “어떤 스포츠에서도 인종차별은 용납될 수 없다.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후 여러 체조 선수들을 비롯한 유명인들이 소녀가 메달을 받지 못한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했고, 온라인상에선 아일랜드 체조협회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국제적 분노가 커지자 GI는 결국 가족들에게 “걱정을 표한다”는 성명을 보냈다. GI 측은 당초 이 사건을 “개인적 불만”으로 처리했으나 “최근에야 가족들이 공개 사과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GI 이사회는 이날 가족들에게 사과 편지를 보냈으며 25일 이를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GI 측은 성명을 통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고의는 아니었다. 당시 관계자가 실수를 인지하자마자 즉시 이를 바로잡았다”며 “해당 선수가 경기장을 떠나기 전에 선수에게 메달을 수여하도록 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에 대해 소녀의 어머니는 GI 측의 사과가 너무 늦었을 뿐더러 이 문제의 핵심인 인종차별에 대한 사과가 빠졌다는 입장이다. 소녀의 어머니는 딸의 신변보호를 위해 딸과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그들의 사과는 1년이 훨씬 넘게 걸렸고, 전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 사건에 혐오감을 느꼈다”며 “(성명은) 인종차별 문제를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쓸모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체조를 하는 흑인 아이들 모두 안전할 것’ 같은 말을 듣고 싶지만 그런 얘긴 없다”고 덧붙였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