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가 변기 닦아야 ‘잼버리 화장실’ 바뀌는 나라

박국희 기자 2023. 8. 1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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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 위생 문제 국내외 비판에도… 조직위 “별일 아냐”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4일 오후 전북 부안군에서 열리고 있는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장을 찾아 시설물을 점검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4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양팔 소매를 걷어붙인 셔츠 차림으로 변기에 묻은 오물을 직접 휴지로 닦고 있는 사진이 화제가 됐다. ‘2023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의 부실 운영에 대한 국내외 비판이 계속되자, 급기야 한 총리가 직접 전북 부안군 새만금 현장을 찾아 당시 참가자들로부터 불만이 높았던 더러운 화장실 청소와 시설 불시 점검에 나선 것이다. 관가에서는 “우리 행정 체계 수준이 ‘74세 국무총리’가 직접 화장실 청소에 나서야만 문제가 해결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자조가 나왔다. 지난 6년간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고도 화장실 위생 같은 기초적인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한 이번 잼버리 사태를 계기로 우리 공직 사회의 문제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잼버리 행사가 끝나면 여성가족부와 전북도 등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감찰 및 감사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현장의 잼버리 참가자들 사이에서 더러운 화장실 불만이 고조되고 한 총리가 현장에서 직접 청소를 하기 직전까지도 잼버리 조직위원회 내부에서는 “화장실 문제가 별거냐”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대회 집행위원장인 김관영 전북지사는 총리가 불시에 화장실 청소를 하던 당일 부안 직소천을 찾아 잼버리 대원들의 물놀이 체험 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소셜미디어와 해외 언론 등에서는 “기본적인 화장실 위생 상태부터 형편없다”는 문제가 잼버리 부실 운영의 대표 사례로 부각되고 있었다. 미국 스카우트 대원 마일스 킴(19)군은 “첫날부터 화장실은 도저히 사용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화장실에 좌변기가 2칸 있었는데, 2곳 모두 막혀 있어 변이 그대로 남아있었다”며 “그나마 에어컨 나오는 곳이 화장실밖에 없어 그 냄새 나는 화장실이 대원들로 북적였다”고 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 “숙영지 외곽 화장실과 샤워실 상태가 더 문제”라는 외국 관계자 말을 들은 한 총리가 화장실부터 들어가자 조직위 관계자들이 당황한 것으로 전해졌다.

잼버리 대원들 체험 행사 참석한 김현숙 여가부 장관 - 김현숙(앞줄 맨 오른쪽) 여성가족부 장관이 9일 서울 성균관대학교에서 태권도 체험을 위해 방문한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참가자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있다. /김지호 기자

변기 오물을 직접 닦던 한 총리는 “청소 용역 업체 인력을 추가 확보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총리실 관계자는 “수십 년 공직 생활을 한 한 총리 스스로도 공무원들에게 화장실 청소를 하라고 하면 뻔히 반발이 나올 것을 예상하고 용역 업체부터 찾은 것”이라고 했다.

실제 행사 집행 기관인 전북도청을 비롯해 김제, 부안 등 전북 지역 공무원들은 노조를 중심으로 “왜 우리가 사전 협의되지 않은 화장실 청소에 동원돼야 하느냐”며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화장실은 최신 수세식이 아닌 일명 푸세식 화장실이었다”며 “노조에서 강력히 항의해 (화장실 청소 동원은) 취소됐다”고 했다.

결국 다음 날부터 “총리가 직접 화장실을 청소한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현장 분위기가 달라지며 급수 문제나 ‘쿨링 버스’ 투입 등 폭염 대비책도 개선되기 시작했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말이다. 4만3000명이 머무를 예정이었던 새만금 야영지에는 이동식 화장실이 354개뿐이었다. 121.5명당 1개꼴이었다. 조직위는 한 총리의 화장실 청소 이후에야 청소 용역 인력을 기존 70명에서 542명까지 확대 투입했다. 스리랑카 스카우트 대원 히룬 테나쿤(15)군은 “화장실이 매우 더럽고 냄새가 났지만 5일부터는 깨끗해졌고 냄새도 나지 않았다”고 했다. 한 총리는 태풍으로 인해 새만금 숙영지 취소 결정이 내려진 7일에도 무작위로 화장실에 들어가 비누 유무를 확인하며 “상태는 나아졌지만 아직도 비누와 휴지통이 없는 곳이 있다”고 주변을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만금 잼버리장 천막 철거 - 8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행사장에서 천막을 철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총리의 화장실 청소’ 사태는 잼버리 부실 운영을 계기로 드러난 공직 사회 세태의 일면이라는 지적이다. 공무원들이 당연히 해야 할 기본적인 일을 하지 않아 사태가 커졌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잼버리는 공무원의 자율성은 없고 오직 상부에서 내려오는 ‘톱다운’ 지시만 있었다”고 했다. 이번에 불거진 잼버리 운영상 대부분의 문제는 수년 전부터 지적이 돼왔지만 결국 대회 당일까지 고쳐지지 않았다.

올 초 차관 회의에서도 잼버리를 주관하는 여성가족부는 미비한 폭염 대책, 폭우로 인한 배수 시설부터 벌레 문제 등을 모두 보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한 관료는 “다른 부처들은 내 일이 아니라고 ‘나 몰라라’ 하고 담당 부처는 역량이 안 돼 우왕좌왕하며 사태가 이렇게 된 것 같다”고 했다.

현재 여가부나 행사를 집행한 전북도청 등은 잼버리 부실 운영 문제를 추궁하기 위한 국회의 쏟아지는 자료 제출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관계자는 “홍보는 앞다퉈 하다가 이제 와서 문제가 되니 지금은 여가부, 행안부, 문체부 등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은 부처끼리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 아니냐”고 했다.

지시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공무원 탓만 할 수도 없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 정부에서 지시 이행을 했던 공무원들이 대거 형사처벌을 받은 일들이 쌓이면서 이러한 공직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주변 환경 탓보다는 할 일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중앙 부처 관계자는 “주어진 일만 하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일을 안 하려다 보니 효율성은 더욱 떨어지고 ‘MZ 세대’를 중심으로 공직 사회 탈출 행렬이 이어지는 실정”이라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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