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 총장 “대치동 80점과 시골 독학 70점, 누구를 뽑는 게 공정인가”
정부가 수능 ‘킬러 문항’ 배제 등 입시와 교육을 개혁하겠다고 발표했다. 입시는 대학 교육과 직결되는 문제다. 대학 경쟁력은 미래 인재 양성을 좌우한다. 전국 대학 총장을 연쇄 인터뷰해 입시와 대학 개혁 등 우리 교육을 근본부터 혁신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유지범 성균관대 총장은 8일 본지 인터뷰에서 “교육부가 지난 30년간 입시 제도를 개편해 공교육을 정상화하려 했지만 이제는 한계에 이른 듯하다”며 “일부 인사의 일탈로 지금은 ‘반쪽’이 된 학생부 중심의 입시 전형(수시)을 정상화해야 학교 교실도 산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진학 후 학생 성적과 수능 성적이 무관하다는 사실은 교직원이라면 누구든 안다.”
- 수능 ‘킬러 문항’ 논란이 컸다.
“수능이 30년 지속되면서 문제 출제 방식이나 트렌드 분석이 끝났다. 그런데 일부 상위권 대학의 정시(수능 중심) 선발 비중을 늘리니까, 수능의 변별력이 중요해졌다. 수능 성적으로 학생을 뽑으려면 등수가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중위권 수험생은 수능 문제를 얼마나 빨리 정확하게 푸는지, 상위권은 ‘킬러 문항’으로 변별하는 부작용이 생겼다. 이런 폐해는 수능이란 단일 잣대로 학생을 평가하는 입시 제도 자체를 바꿔야 해결된다.”
-지금 성대는 신입생 40%를 무조건 정시(수능)로 뽑아야 하는데.
“그렇다. 이런 규제는 일부 사회 지도층 인사의 입시 비리가 여러 차례 불거진 이후 생긴 것이다. 학생부 중심의 수시 선발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학생의 고교 3년이 적힌 생활기록부 제도 자체가 ‘반쪽’이 됐다. 학교 밖에서 한 인턴, 논문 발표 등을 적지 않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학교 내 동아리와 방과 후 봉사 활동, 교내 수상 실적 등도 모두 기재하지 말라는 건 문제 아니냐. 기업으로 치면 ‘블라인트 테스트’로 신입 사원을 뽑으라는 것과 같다.”
-수능 선발 확대로 입시가 더 공정해졌다는 인식도 있다.
“정시 40%는 결국 수능 성적만 가지고 학생을 뽑으라는 뜻이다. 하지만 학생을 가르쳐보면 안다. 수능 문제 몇 개를 더 맞았나, 특목고 출신이냐는 대학생의 학업 성취도나 사회 진출의 큰 변수가 아니다. 서울 대치동에서 나고 자라 수학 100점 만점에 80점 맞은 학생과 도서 산간에서 혼자 공부해 수학 70점 맞은 학생 가운데 지금 정시 제도는 무조건 80점을 뽑아야 공정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둘 중 정말 누가 더 잠재력 있는 학생인가. 수능 점수라는 단순한 입시 제도의 문이 넓어지면서 대형 사교육 업체들은 대응하기가 오히려 편해졌다. 비싼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 학생과 N수생에게 더 유리해진 것이다. 수시가 늘면 사회 유력층 자녀에게만 유리해지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도 많다. 이런 문제는 발생하면 정부가 감사로 적발하고 엄중한 책임을 물으면 된다.”
-성대는 지역 균형 제도로 10% 선발했다.
“학교 성적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 균형’ 제도로 정원 10%를 3년째 선발하고 있다. 지방 학교에서 학교 공부 열심히 한 학생들을 뽑는 제도다. 도입 후 신입생 출신 고교 숫자가 50개 정도 늘었다. 올해는 고교 졸업 후 3년 이상 일한 학생을 서류로 선발하는 ‘재직자 전형’으로 180명을 선발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이른 나이에 사회에 진출한 학생 중 대학이 원하는 ‘원석’이 있다고 생각해 문을 크게 넓혔다. 정시(수능) 40% 같은 획일적 입시 규제가 없어지면 이런 다양한 학생들을 선발하고 싶다. 학생부 기록을 바탕으로 성적 외 장점을 가진 학생을 뽑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다.”
-신입생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는.
“성대 신입생이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수도권과 지방 출신 학생 비율이 반반은 됐다. 그런데 최근엔 70대30 정도로 수도권에 기울었다. 수도권에 살고, 형편이 어느 정도 되고, 수능 성적이 좋은 학생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런 학생들만 너무 많이 모여 있으면 대학과 학생 발전에 모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 있던 학생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게 대학이 할 일이다.”
-입시를 어떻게 바꿔야 하나.
“수능은 대입 자격을 묻는 시험 정도로 바꾸고, 학교 학생부 기록을 정상화해야 한다. 적어도 학생이 학교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는 충실하게 기록하고, 대학은 그걸 바탕으로 선발할 수 있어야 한다. 성균관대는 매년 입학처 직원이 전국 고등학교 700곳을 돌고 있다. 최근 고교 교사들이 하나같이 지적하는 건 학생의 의욕 상실과 불성실이다. 현재 입시에선 학생이 학교 생활을 성실하게 할 유인이 없다. 자기 흥미나 관심에 따라 방과 후 무슨 활동을 하든, 봉사를 하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생활기록부 기록에도 남지 않는다. 학생들도 수능으로 대학에 가려면 수능 대비 학원에, 내신 전형으로 가려면 내신 학원에 ‘올인’ 해야 한다. 교사도 학습과 생활 지도를 할 권위를 잃었다. 입시 공정성을 위해 도입된 제도가 오히려 공교육 붕괴를 부채질하고 있다.”
-교육부는 언제나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입시를 바꾼다고 하는데.
“지난 30년 교육부가 입시 제도를 수시 위주로, 정시 위주로 다양하게 바꿨지만 오늘날 결과만 보면 한계에 봉착한 듯하다. 사교육비 부담이 매년 역대 최고 기록을 깨고 있다. 교육부가 전체 대학 입시를 하나하나 통제해서 중등교육 전체까지 영향을 주겠다는 발상 자체가 실현 불가능한 것 아닌가. 사실 우리나라 4년제 대학 200여 곳은 나름의 서열이나 선호도가 있다. 학부모만 해도 첫째 입시 할 때, 둘째 입시 할 때 자녀 성적이나 상황 따라 입시 제도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교육부라는 기관 하나가 모든 대학, 학생, 학부모의 불만을 잠재우고 사교육까지 잡는 입시 제도를 만들 수는 없다. 교육부가 방향을 제시하면 대학이 건학 이념에 맞게 입시 제도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방식이 맞는다. 다양한 입시 루트를 만들 수 있다.”
-요즘 전부 의대 간다고 난리인데.
“의대 선호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정도의 차이일 뿐 아닌가. 어느 나라나 살 만한 집 자제들은 명문대에 입학한 뒤 의학과 법률 전문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의사·법률가가 다른 직업에 비해 보장되는 ‘최소한의 소득 수준’이 높아서 생기는 일이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의대로 모든 자원이 쏠리지만, 챗GPT 등이 등장하는 미래엔 균형을 찾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하는 건 의료 분야에 진출한 우수 인재를 활용해 바이오 산업을 어떻게 육성해 나갈지, 기초 의학 연구를 어떻게 지원할지 등이다.”
-교육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전국 고등학교는 ‘플래카드’ 붙일 수 있는 명문대 진학 숫자에, 대학은 취업률이나 대학평가 같은 숫자에 지나치게 매달린다. 정책 당국도 ‘백년대계’라는 관점보다는 당장 몇 년 뒤에 신입생 몇%를 어떻게 하라는 식으로 눈앞의 현안에만 급급하다. 평범한 학생 다수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의욕을 잃게 된다. 교육이 어떤 실적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부터 확립했으면 좋겠다.”
☞유지범 총장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성균관대 신소재 공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성균관대 공과대학장, 자연과학캠퍼스 부총장 겸 산학협력단장 등을 거쳐 지난 1월 성균관대 총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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