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성 인정받은 노란봉투법…‘대통령 거부권’ 명분 퇴색

방준호 2023. 6. 16.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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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표결 앞둔 노란봉투법 입법 탄력
무분별 손배 제한 노동3권 보장
대법 판결로 법적 근거 마련 평가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노조원과 금속노조 관계자, 변호인단 등이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들머리에서 노동조합이 갚아야 할 배상금을 감액하라는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저지 파업은 정당하다”라고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노동조합과 개별 조합원 등의 손해배상 책임의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근로자에게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2010년 벌인 점거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5일 대법원이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을 근거로 개별 조합원의 책임을 제한하면서, 같은 취지를 담은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입법에도 힘이 붙을 전망이다. 노란봉투법은 교섭에 응해야 할 실질적인 사용자의 범위를 넓히고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해 노동3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날 대법원 판결에 민주노총 법률원은 “노란봉투법과 같은 취지의 판결로 개정안의 법적인 근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특히 노란봉투법 3조에 적힌 ‘손해의 배상의무자별로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취지를 대법원이 현대차 비정규직 손배 판결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에 이 조항이 들어간 이유는 사용자가 손해배상 책임의 대상을 마음껏 정할 수 있는 ‘부진정 연대채무’를 제한하기 위해서다. 그간 이를 악용해 회사가 손배 취하를 노조 탈퇴 등의 ‘회유 조건’으로 삼는 폐해가 나타났다. 대신 노조에 남은 이들이 손해배상 책임을 뒤집어써야 했다. 윤지영 변호사는 “이런 손배 책임이 조합원 사이의 불화, 죄책감, 부담을 조장해 노조를 파괴하는 수단으로 쓰였다”고 말했다. 손배 가압류의 경제적 고통과 그 앞에서 가정과 사회관계가 무너지면서 쌍용차에서 30여명, 현대차 비정규직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날 대법원의 전향적인 판결에도 노동자들은 웃지 못했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와 함께 손해배상액 일부를 감액하라는 법원 판결을 받은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쌍용자동차 2009년 파업 이후 14년이 흘렀다. 그 시간을 이 법원에 피고로 있었다. 고통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 운동은 2014년 손배 가압류에 시달리는 쌍용차 노동자를 돕기 위한 시민 모금 운동에서 시작됐다.

이날 대법원은 쌍용차 노동자의 손해배상 청구액을 일부 줄이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도 2009년 점거 파업이 ‘불법 행위’라는 점에선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이 있었다면 비정규직을 포함해 3천여명의 정리해고에 반대하기 위한 쌍용차 노동자의 2009년 파업 목적이 정당한 것으로 인정될 여지도 있다.

교섭과 대화가 아닌 격렬한 갈등으로 번진 노사 갈등 또한 노란봉투법으로 막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도 나온다. 가령 현대차의 경우 실질적인 사용자인 원청 현대차에 교섭 의무를 부여해, 하청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을 찾아 나서고 점거·파업을 하기에 앞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줄 수 있었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의 공장 점거를 앞뒤로 법원은 여러차례에 걸쳐 현대차를 실제 사용자로 봐야 한다며 불법 파견 판결을 내놨지만 현대차는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서범진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애초 이 재판들이 법원이라는 링 위에 올라온 것부터가 문제”라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은 지난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통과 뒤 본회의에 직회부돼 6월 임시국회에서 표결을 앞두고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노조와 사업자 간 갈등이 심하고, 사유재산권에 대한 헌법 체계를 흔드는 법안”이라는 이유 등으로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도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밝혔다. 고용노동부도 이날 “대법원 판결은 부진정 연대책임(채무) 예외를 인정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과 명백히 달라 개정안의 근거가 될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로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실질적 효과뿐 아니라 명분도 얻지 못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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