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뒷산에 산책로 만든 의문의 주민, 누군지 찾아보니...

심규상 2023. 6. 14. 11:5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말 고맙고 감사할 뿐이죠.""그렇게 힘들게 봉사하면서도 어디 사는 누구인지도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최근 충남 계룡의 한 아파트 주민들을 중심으로 전해지는 미담이 있다.

할머니의 칭찬은 산책로를 닦은 사람에 대한 칭찬으로 이어졌다.

좁은 오솔길을 평평한 산책로로 변화시킨 일을 운동 삼아 한 일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계룡시 단지 뒤 홀로 정비·관리한 김석진씨... "학생 통학길·주민 소통길 돼 기뻐"

[심규상 대전충청 기자]

 김석진(72)씨가 홀로 만든 마을 산책로. 인근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통학길이자 주민들의 소통길로 변모했다.
ⓒ 심규상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말 고맙고 감사할 뿐이죠."
"그렇게 힘들게 봉사하면서도 어디 사는 누구인지도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최근 충남 계룡의 한 아파트 주민들을 중심으로 전해지는 미담이 있다. 누군가 아파트 뒷산에 산책로를 만들고 일 년 가까이 홀로 관리를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으로 미리 본 산책로는 홀로 만들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넓고 깔끔했다. 산책로의 길이도 상당했다. 

미담의 주인공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13일 오전 산책로를 찾았다. 

해당 아파트 뒤로 들어서자 몇몇 주민들이 산 쪽방향으로 들어섰다. 뒤를 따라가 보았다. 곧바로 사진으로 봤던 낯익은 산책로가 보였다. 폭 3미터가 넘는 황톳길이다. 풀 한 포기 없는데다 평탄하기까지 했다.

길을 따라 걸었다. 청량한 새소리가 골짜기에 가득했다. 아름드리 굴참나무와 소나무가 곳곳에 보였다. 잘 다듬어진 산책로는 굽이굽이 산마루까지 이어졌다. 자그마치 600미터에 달했다.

산책길을 되짚어 내려오는 데 책가방을 멘 학생들의 모습이 하나둘 보였다. 그 길에서 만난 학생의 말이다.

"산 너머 중학교에 다니는 데 큰 도로를 따라 학교로 가려면 20분 넘게 걸려요. 그런데 이 산길로 가면 10분 남짓이면 학교까지 가요. 전부 나무 그늘이라 시원하고 경치 좋고, 길도 잘 다듬어져서 모두 산책길로 다녀요."

홀로 산책길 만든 김석진씨 "운동 삼아 한 일"  

조금 더 내려가니 지팡이를 짚고 조심스레 오르는 할머니가 보인다. 아파트단지에서부터 걸어 올라왔다는 할머니는 산책로 자랑을 쏟아냈다.

"예전엔 사람 한 명 지나기도 힘든 좁은 비탈진 길이었어. (바짓단을 올려 다리를 보여주며) 이게 다 돌에 걸려 넘어져서 다쳐서 생긴 흉터야. 이렇게 잘해 놓으니 이제 맨발로도 다닐 수 있어 너무 좋아. 참 편해."

할머니의 칭찬은 산책로를 닦은 사람에 대한 칭찬으로 이어졌다.

"눈비가 와도 하루도 안 거르고 돌을 고르고, 풀도 뽑고 하는데 '어디 사는 누구냐'고 해도 알려주질 않는 거야. 최근에서야 알았는데 저기 아파트 단지에 사는 주민이더라고. 어찌나 고마운지..."
 
 김석진씨에게 산책로를 정비한 이유를 물었다. 그는 "운동 삼아 한 일이고 재능기부"라고 답했다.
ⓒ 심규상
 
올해 초부터 5개월여 홀로 산책길을 만들고 정비해 온 사람은 김석진(72)씨다. 그를 만나자마자 산책로를 만들고 관리하는 이유부터 물었다.

"운동 삼아 한 일인데 모두들 좋아해서 보람을 느껴요."

좁은 오솔길을 평평한 산책로로 변화시킨 일을 운동 삼아 한 일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군 복무하기 전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 본 경험이 있어서 어떻게 길을 내고, 다듬어야 하는지 알아요. 제가 좋아서 한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이니 재능 기부죠."

경북 포항이 고향인 그는 공군 대령으로 근무하다 지난 2006년 전역 후 계룡에 정착했다. 원주가 고향인 아내도 흔쾌히 동의했다. 이후 취미생활로 수석 감상(현재 한국수석회 계룡대연합회장) 또는 봉사활동을 해왔다.

처음부터 산책길을 만들려는 건 아니었다.

"아파트 뒤편 주민들이 가꾸는 텃밭이 있는데 오랫동안 비닐이나 폐기물이 쌓여 있어 보기 좋지 않더라고요. 이걸 지난해 싹 치웠어요. 또 좁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 보면 소나무, 참나무, 새소리가 너무 좋은데 이걸 혼자 즐기기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산 주인분께 '산책길을 만들겠다'고 하니 '좋다'며 허락을 해주셨어요. 매일 조금씩 돌을 캐내고, 넓히고, 다듬고, 눈 치우고, 풀 뽑고... 하다 보니 이렇게 완성됐네요."

그는 "작은 일이 큰 변화를 이끌어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많은 주민이 산책로를 즐기고, 산책로에서 만나는 사람들끼리 인사를 나누며 소통하는 소통 길이 됐어요. 특히 산책길을 따라 중학교를 통학하는 학생들이 참 많아요. 계룡시에서도 산책로 중간 중간에 의자를 새로 놓아줬어요. 참 감사하죠."

김석진씨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재능기부를 계속하겠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래서인지 무척 건강해 보였다.

"비가 오면 산책길이 파이고 지저분해져요. 돌이 드러나기도 하고요. 매일 쓸고 관리하려고요... 정말 운동 삼아 하는 겁니다."
 
 김석진씨가 산 주인의 동의를 얻어 만든 산책로는 약 600여 미터에 이른다.
ⓒ 심규상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