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뒷산에 산책로 만든 의문의 주민, 누군지 찾아보니...
[심규상 대전충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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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석진(72)씨가 홀로 만든 마을 산책로. 인근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통학길이자 주민들의 소통길로 변모했다. |
| ⓒ 심규상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말 고맙고 감사할 뿐이죠."
"그렇게 힘들게 봉사하면서도 어디 사는 누구인지도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최근 충남 계룡의 한 아파트 주민들을 중심으로 전해지는 미담이 있다. 누군가 아파트 뒷산에 산책로를 만들고 일 년 가까이 홀로 관리를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으로 미리 본 산책로는 홀로 만들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넓고 깔끔했다. 산책로의 길이도 상당했다.
미담의 주인공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13일 오전 산책로를 찾았다.
해당 아파트 뒤로 들어서자 몇몇 주민들이 산 쪽방향으로 들어섰다. 뒤를 따라가 보았다. 곧바로 사진으로 봤던 낯익은 산책로가 보였다. 폭 3미터가 넘는 황톳길이다. 풀 한 포기 없는데다 평탄하기까지 했다.
길을 따라 걸었다. 청량한 새소리가 골짜기에 가득했다. 아름드리 굴참나무와 소나무가 곳곳에 보였다. 잘 다듬어진 산책로는 굽이굽이 산마루까지 이어졌다. 자그마치 600미터에 달했다.
산책길을 되짚어 내려오는 데 책가방을 멘 학생들의 모습이 하나둘 보였다. 그 길에서 만난 학생의 말이다.
"산 너머 중학교에 다니는 데 큰 도로를 따라 학교로 가려면 20분 넘게 걸려요. 그런데 이 산길로 가면 10분 남짓이면 학교까지 가요. 전부 나무 그늘이라 시원하고 경치 좋고, 길도 잘 다듬어져서 모두 산책길로 다녀요."
홀로 산책길 만든 김석진씨 "운동 삼아 한 일"
조금 더 내려가니 지팡이를 짚고 조심스레 오르는 할머니가 보인다. 아파트단지에서부터 걸어 올라왔다는 할머니는 산책로 자랑을 쏟아냈다.
"예전엔 사람 한 명 지나기도 힘든 좁은 비탈진 길이었어. (바짓단을 올려 다리를 보여주며) 이게 다 돌에 걸려 넘어져서 다쳐서 생긴 흉터야. 이렇게 잘해 놓으니 이제 맨발로도 다닐 수 있어 너무 좋아. 참 편해."
할머니의 칭찬은 산책로를 닦은 사람에 대한 칭찬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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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석진씨에게 산책로를 정비한 이유를 물었다. 그는 "운동 삼아 한 일이고 재능기부"라고 답했다. |
| ⓒ 심규상 |
올해 초부터 5개월여 홀로 산책길을 만들고 정비해 온 사람은 김석진(72)씨다. 그를 만나자마자 산책로를 만들고 관리하는 이유부터 물었다.
"운동 삼아 한 일인데 모두들 좋아해서 보람을 느껴요."
좁은 오솔길을 평평한 산책로로 변화시킨 일을 운동 삼아 한 일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군 복무하기 전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 본 경험이 있어서 어떻게 길을 내고, 다듬어야 하는지 알아요. 제가 좋아서 한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이니 재능 기부죠."
경북 포항이 고향인 그는 공군 대령으로 근무하다 지난 2006년 전역 후 계룡에 정착했다. 원주가 고향인 아내도 흔쾌히 동의했다. 이후 취미생활로 수석 감상(현재 한국수석회 계룡대연합회장) 또는 봉사활동을 해왔다.
처음부터 산책길을 만들려는 건 아니었다.
"아파트 뒤편 주민들이 가꾸는 텃밭이 있는데 오랫동안 비닐이나 폐기물이 쌓여 있어 보기 좋지 않더라고요. 이걸 지난해 싹 치웠어요. 또 좁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 보면 소나무, 참나무, 새소리가 너무 좋은데 이걸 혼자 즐기기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산 주인분께 '산책길을 만들겠다'고 하니 '좋다'며 허락을 해주셨어요. 매일 조금씩 돌을 캐내고, 넓히고, 다듬고, 눈 치우고, 풀 뽑고... 하다 보니 이렇게 완성됐네요."
그는 "작은 일이 큰 변화를 이끌어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많은 주민이 산책로를 즐기고, 산책로에서 만나는 사람들끼리 인사를 나누며 소통하는 소통 길이 됐어요. 특히 산책길을 따라 중학교를 통학하는 학생들이 참 많아요. 계룡시에서도 산책로 중간 중간에 의자를 새로 놓아줬어요. 참 감사하죠."
김석진씨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재능기부를 계속하겠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래서인지 무척 건강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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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석진씨가 산 주인의 동의를 얻어 만든 산책로는 약 600여 미터에 이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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