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차면 성적 나야? 주제파악 못하는 한화에 ‘리빌딩’은 사치였나

안형준 2023. 5. 1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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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안형준 기자]

정말 3년차면 성적을 내야한다고, 또 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한화 이글스는 5월 11일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을 전격 경질하고 최원호 감독을 선임한 것. 한화는 퓨처스 팀을 이끌던 최원호 감독과 3년 14억 원 계약을 공식 체결했다.

모든 것이 충격적이었다. 한화는 5월 치른 7경기에서 5승 2패를 기록했고 10-11일 삼성을 상대로 연승을 거두며 3년만에 삼성전 위닝시리즈도 달성한 상황이었다. 팀 분위기가 상승세를 탄 시점에서 한화는 연승 직후 감독 경질을 발표했다.

한화가 밝힌 감독 경질의 이유는 '이기는 야구'를 하기 위해서다. 지난 2년은 최하위에 머물렀지만 올해는 이기는 야구를 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수베로의 한화'는 4월부터 상당한 연패를 당했고 그 때 시작된 내부 논의가 이제 최종 결정이 났다는 것이다. 한화는 오프시즌에도 감독 교체를 논의했지만 유임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개막 후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다시 교체를 논의했고 공교롭게도 상승세를 탄 시점에 최종 결정이 났다.

물론 모든 프로 팀의 목표는 승리다. 하지만 한화가 정말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2021시즌에 앞서 한화는 수베로 감독과 3년 계약을 맺었다. 당시 한화는 팀의 상징이었던 김태균의 은퇴와 함께 베테랑 선수들과 대거 결벌하며 리빌딩을 선언했다. 그리고 '육성 전문가' 수베로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3년 동안 팀 전력을 재정비해달라는 것이었다.

수베로 감독이 팀을 맡을 당시 한화는 그야말로 도저히 성적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18년 깜짝 3위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2008년 이후 한 번도 위닝시즌을 기록하지 못한 팀이었고 2020년에는 승률이 0.326에 그친 팀이었다. 그리고 2020시즌 종료 후 그나마 남아있던 베테랑 선수들과도 거의 결별했다. 수베로 감독은 초토화 된 최하위 팀에 '전력'이라 부를만한 것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미국, 일본과 비교하면 야구 저변에 비해 프로야구 팀이 지나치게 많고 트레이드에도 폐쇄적인 KBO리그는 리빌딩이 쉽지 않은 구조다. 마이너리그 레벨만 몇 개가 있고 팀마다 수많은 유망주를 보유하며 베테랑과 기대주를 적극적으로 맞바꾸는 메이저리그와는 환경 자체가 다르다. KBO리그는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재능 뿐인 소수의 어린 선수들이 성장해 기량을 갖춰야만 팀 전력이 강해질 수 있는 구조다.

수베로 감독은 팀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팀이 처한 현실을 파악해 육성에 매진했다. 눈앞의 작은 승리에 집착하는 대신 선수들의 마음가짐을 바꾸고 팀의 분위기를 변화시키는데 집중했다. 수베로 감독은 자신이 한화에 우승 트로피를 안기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고 늘 미래를 봐달라는 말을 했다. 승리한 경기에서도, 패배한 경기에서도 결과보다는 '과정'을 이야기했다.

'과정'이야말로 수베로 감독이 한화 유니폼을 입은 이유였고 수베로 감독은 누구보다 과정에 진심이었다. 지난시즌 막바지에는 "'실패는 곧 끝'이라는 한국야구 특유의 문화에 익숙한 선수들이 가진 두려움이 조금씩 깨지고 있다"고 선수들의 변화를 이야기했고 5월 초에는 "순위와 관계없이 경기 내용이 지난해보다 분명 나아졌다. 선수들을 결과만 보고 '계속 지는 선수들'로 취급하느냐 과정을 보며 '발전하고 있는 선수들'로 보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7경기 5승 2패 성과는 비록 그간의 부진한 성적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수치지만 결국 성장의 과정을 중시한 끝에 얻어낸 것이었다.

지난 3일 두산전에 앞서 수베로 감독은 "과정은 괴롭고 누구도 그런 과정을 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 성과가 나온다. 한화는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고 분명히 꾸준히 승리하는 팀이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물론 꾸준히 승리하는 팀이 됐을 때도 내가 여기에 몸담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때를 위한 씨를 뿌려야 한다"고 말했다.

지는 것이 당연한 전력을 가졌던 팀이 겨우 1-2년의 기다림으로 우승팀이 될 수는 없다는 냉정한 성찰과 함께 비록 그 달콤함은 자신의 몫이 아니더라도 한화가 언젠가는 승리라는 열매를 맛볼 수 있도록 묵묵히 기반을 다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의지야말로 한화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한화의 전력은 여전히 약하다. 노시환 정도를 제외하면 젊은 선수들은 아직 다 성장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KBO리그에서 가장 중요한 외국인 전력이 사실상 최악에 가깝다. 그리고 외국인 선수들의 실패는 감독이 아닌 프런트의 책임이다. 스미스와 오그래디를 영입한 것은 수베로 감독이 아닌 손혁 단장이었다. 현장의 지휘봉을 수베로 감독 대신 최원호 감독이 잡는다고 해서 팀 타율 최하위, 팀 평균자책점 7위인 한화의 전력이 5강권으로 올라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한화는 수베로 감독에 대해 '여전히 실험적인 야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험은 우승은 노리는 팀이 아닌 전력을 재정비하는 팀에서 하는 것. 이런 지적을 감안하면 한화는 내부적으로 '리빌딩은 이미 끝났고 팬들이 가을까지 환호할 수 있는 성적을 낼만한 전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내린 듯하다.

감독을 바꾸고도 '리빌딩'을 이어간다면 굳이 시즌 도중 연속성을 해치는 선택을 했어야 하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고 감독을 바꿨음에도 남은 시즌 확실하게 '이기는 팀'이 되지 못한다면 구단의 선택은 처참한 실패라는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다. 과연 한화가 충격적인 시점에 내린 충격적인 결정은 냉정하고 합리적인 결단이었을지, 아니면 '주제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만용이었는지 남은 5개월의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만약 후자라면 한화라는 팀에 '리빌딩'이라는 거창한 단어는 애초부터 사치였을지도 모른다.(사진=수베로/뉴스엔DB)

뉴스엔 안형준 mark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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