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따라 “핵공유” 평가한 국민의힘, 미국 반박에 ‘난감’
미국 정부 고위당국자가 “사실상 미국와의 핵 공유”라는 한국 대통령실의 한·미 정상 간 워싱턴선언 평가를 반박하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면서 대통령실을 좇아 ‘핵 공유’에 큰 의미를 부여한 국민의힘은 난감한 처지가 됐다.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은 27일(현지시간) 미 국무부 청사에서 경향신문을 포함한 한국 언론 워싱턴특파원과 가진 간담회에서 한국 정부가 워싱턴선언을 사실상 핵 공유라고 설명하는 데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매우 직접적으로 말하겠다. 우리는 이것(워싱턴선언 내용)을 ‘사실상의 핵 공유’(de facto nuclear sharing)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케이건 국장은 ‘(한반도에) 전술핵 무기를 배치하지 않기 때문에 핵 공유가 아니라는 의미인가’라는 취지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우리는 한반도에 핵무기를 재배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겠다”며 “한국 대통령실이 어떻게 핵 공유를 정의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위치가 아니지만 우리가 정의하는 바에 따르면 (한·미 합의는) 그것(핵 공유)이 아니다”고 했다.
앞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26일(현지시간) 워싱턴 현지 프레스룸 브리핑에서 “한·미 양국은 이번에 미국 핵 운용에 대한 정보 공유와 공동계획 메커니즘을 마련했다”며 “우리 국민이 사실상 미국과 핵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것으로 느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8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에서 여당 의원들은 케이건 국장 발언 보도를 보지 못한 듯 김 차장의 ‘핵 공유’ 평가를 그대로 따라갔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워싱턴선언의 핵심은 3핵이다. 즉, 핵협의그룹(NCG) 설립과 핵문서 공개, 핵잠수함 한반도 전개 강화 가시성 증대”라며 “특히 핵문서는 사실상 최초의 핵공유 선언문”이라고 주장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여당 간사인 신원식 의원은 “미국이 타국과 핵 공유 관계를 맺은 것은 1966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처음이고, 대한민국이 두번째”라며 “1968년 핵확산금지조약(NPT) 출범 이후를 기준으로 하면 대한민국이 첫번째 국가”라고 했다. 신 의원은 “미국이 가진 가장 귀한 수단인 핵까지 대한민국과 공유하겠다는 것은 미국이 뉴욕의 안전을 위해 서울을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가장 확실한 메시지”라며 “만약 핵 공유체제가 대한민국을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에 있는 미국의 다른 동맹국과 우방국까지 확대된다면 중국에게 끔찍한 악몽의 연속이 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미국이 다른 나라와 핵 공유체제를 구축한 것은 나토에 이어 두번째에 불과하기도 하거니와 재래식 무기체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제는 모든 확장억제수단을 공유하는 동맹으로 발전한 것 역시 양국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 후 케이건 국장의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내용을 확인하고 난 후에 답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난감해 했다. 윤 원내대표는 ‘핵 공유’란 평가를 하는 데 대통령실과 사전 교감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교감하고 그러지 않았다. 당 공식 입장을 정한 건 없다. (의원들이) 보도 내용을 종합해서 개별적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강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나토 핵 공유와 (비교해서는) 상당히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서도 “한·미 동맹이 강화된 것을 재확인한 자리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달라”고 말했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성과 없는 한·미 정상회담을 어떻게든 포장하고 대통령실을 띄워보려 용쓰는 여당의 말잔치가 눈물겹다”며 “(윤 대통령이) 미국을 떠나기도 전에 단칼에 반박 당한 대통령실과 여당 때문에 국민은 부끄럽기만 하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을 무작정 옹호하다가 난관에 봉착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최근에는 윤 대통령 발언의 ‘주어 논란’이 벌어졌다. 유상범 수석대변인을 비롯한 여당 인사들은 워싱턴포스트(WP)의 지난 24일 윤 대통령 인터뷰 기사 중 “100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 있다거나, 100년 전 우리의 역사 때문에 (일본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윤 대통령 발언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의 주어는 ‘일본’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이 가짜뉴스를 퍼뜨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을 인터뷰한 기자가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한 윤 대통령 발언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국민의힘 주장이 거짓임이 판명났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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