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론적 답변”이지만…경색된 중러 관계, 尹대통령 방미 성과 부담
대통령실 “원론적 답변”…中대사 초치 “외교적 결례”
중러, 대북정책 중요 파트너…30년 북방외교 중대기로
尹대통령 발언 시점에 주목…외신 인터뷰 방식은 논란
박지원 “의도된 발언…미국서 무기 지원 합의할 가능성”
안철수 “회담에서 사용후 핵처리·핵추진 잠수함 얻어야”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12년 만에 한국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을 앞두고 한반도 정세가 극도로 긴장상태에 놓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외신 언론 인터뷰에 중국과 러시아가 거세게 반발하면서 30년 역사를 이어온 한국의 북방외교가 중대 기로에 놓였다. 이러한 가운데 북한은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이어 군정찰위성 발사를 예고하고 있다.
대통령실의 해명대로 원론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에 불과하지만 중러가 격양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정상 발언의 무게와 발언의 공개 시점에 있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민감한 시기에 외신 언론과의 인터뷰 형식으로 중대한 외교 원칙을 밝힌 것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중러는 한국이 그동안 지켜왔던 대(對)중국·대 러시아 외교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한미일이 3국 협력으로 밀착하는 가운데 중러와 경색된 관계로 한국의 외교적 부담은 더욱 커졌다.
윤 대통령의 국빈방미를 앞두고 지난 19일 보도된 영미권 통신사 로이터와의 인터뷰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보도 당일에는 잠잠했던 중국은 20일 ‘말참견’(不容置喙·부용지훼)이라는 무례한 용어를 사용하며 공세를 펼쳤고, 우리 외교부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이라며 거친 언사를 주고받았다.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중국이 대만해협 문제에 그동안 민감하게 반응해왔지만 다른 국가의 정상 발언에 외교부 중국 대변인이 원색적인 표현을 쓰며 반발한 것은 양안(兩岸) 문제에 방점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양안 관계에 대해 “단순히 중국과 대만 간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 문제와 마찬가지로 전세계적 문제”라고 말했고, 대만해협 일대 긴장 고조에 대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국제사회와 함께 전적으로 반대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남북문제와 중국-대만 문제의 유사성을 거론한 것을 중국이 ‘하나의 중국’(一個中國) 원칙을 건드렸다고 받아들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며 타국의 대만 문제 언급을 내정간섭으로 반발해 왔다. 지금까지 한국을 포함해 미국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해 왔다.
또한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해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학살이라든지,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살상무기 지원 불가’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던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그 나라 국민이 러시아의 최신 무기가 그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우리의 파트너인 북한의 손에 있는 것을 볼 때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며 ‘퀴드 프로 쿼’(quid pro quo·보상)를 언급하며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이번 인터뷰가 모두 ‘원론적인 답변’이라고 해명했다. 우크라이나 관련 발언에 대해서는 ‘전제’가 있다고 강조, 당장 지원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는 점을 설명했다. 중국 문제에 대해서도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원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원론적인 입장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가 거세게 반발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당 발언이 나온 시점과 방식의 문제라는 것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원론적인 답변은 맞지만,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민감한 상황에서 발언한 시점으로 우리나라에 부담을 준 것을 사실”이라고 짚었다.
그동안 정부가 고수해 온 외교 원칙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을 외신 인터뷰를 통해 공개한 방식에 대해서도 지적이 나온다. 통상 대통령의 타국 방문을 앞두고 현지 매체와 인터뷰가 진행되는 것이 관례다.
다만 우리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외교 원칙을 외신 보도를 접하게 되면서 따르는 국내외 여파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지점이다. 대통령실은 러시아의 반발에 대해 “인터뷰 내용을 정확히 읽어볼 것을 권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러는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있어서 협조가 필수적인 핵심 국가들이다. 현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에 대해 비토권을 놓고 있는 것도 중러다. 한국의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북한의 우호국인 중러의 지지없이는 추진력을 받기가 어렵다.
한국과 중러의 관계가 더욱 냉랭해지면서 윤 대통령의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성과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윤 대통령이 강조해 온 한미일 3국 협력이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지난달 한일 정상회담에서 강제징용 해법안에 대한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 조치’를 얻지 못하면서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중러와의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추진되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나라에 실질적인 이익을 수호해야 한다는 부담이 커졌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21일 CBS라디오 ‘김현정읜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최소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와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얻어야 한다”며 핵공유에 대해 “실효적이고 정례적으로 훈련을 같이 하면서 제대로 쓸 수 있게 하자”고 밝혔다.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YTN라디오 ‘박지훈의 뉴스킹’과의 인터뷰에서 “상대국에 방문할 때는 그 상대국의 언론과 인터뷰하는데 이번에는 영국의 로이터 통신과 한 것도 이상하다”며 “미국 가서 염려하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다고 하는 합의를 하기 위한 의도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전 실장은 “너무 미국 편중의 외교로 가고 있다”며 “한미 동맹은 중요하지만 러시아나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것은 바른 외교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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