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칼럼] 유시민을 위한 칸트 강의
“검찰이 왜 이토록 집요하게 이재명을 노리는가? 윤 대통령이 시켰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유시민 씨의 말이다. 그럼 왜 윤 대통령은 그런 지시를 내렸는가? 그는 두 가지 ‘가설’을 제시한다. 하나는 감정설, 다른 하나는 전략설이다. 감정설은 “대통령이 이재명을 싫어해 감옥에 집어넣으라고 지시했다”는 것, 전략설은 “구속영장 청구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이재명을 계속 흠집 내” 민주당을 내부 분열의 늪에 빠뜨리기 위한 대통령의 계략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제 가설들을 차례로 기각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국의 대통령이 설마 사적 ‘감정’ 때문에 그런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나아가 윤 대통령은 머리가 나빠서 그런 치밀한 ‘전략’을 짤 수준도 못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나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윤석열은 연역적 사고와 경험적 추론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차원에 있는 대통령이다. 칸트 스타일의 ‘불가지론’이 비상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였더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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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은 왜 이재명을 노리는가”
‘불가지론’ 동원한 유시민의 질문
바탕에는 이재명의 결백이 전제
민주당의 윤리적 파탄만 보여줘
」
아무리 철학의 외피를 뒤집어써도 들어주기 민망한 것이 모든 개그의 본질적 특성이다. 아무튼 그의 글을 접하고 한 사람의 철학도로서 마음의 평안을 찾아 불가지론으로 망명을 간 그의 가엾은 영혼을 구제하고 싶어졌다.
그는 왜 불가지론에 빠졌을까? 그 이유는 칸트의 그것과 동일하다. 칸트처럼 그도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했기 때문이다. 그의 사유의 단초가 된 물음은 이것이었다. “검찰은 왜 이토록 집요하게 이재명을 노리는가?”
그걸 몰라서 묻는가. 검찰의 수사가 집요한 것은 그냥 이재명 대표의 혐의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대장동, 정자동, 백현동, 위례지구, 성남 FC, 대북 송금에 허위사실 공표에 이르기까지 수사할 게 어디 한두 가지인가. 고로 그는 “검찰이 왜 이토록 집요하게 이재명을 노리는가”라고 물을 게 아니라 “이 대표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길래 이토록 많은 혐의를 받고 있는가”를 물었어야 했다. 질문을 물구나무 세우니 당연히 불가지론에 빠질 수밖에.
‘검찰은 왜 이토록 집요하게 이재명을 노리는가’라는 질문의 바탕에는 부당 전제가 깔렸다. 즉, “자신이 결백하다”는 이 대표의 주장을 증명 없이 참으로 통하는 ‘공리’로 여기니, 사유가 물구나무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대표의 말은 믿을 만한가? 먼저 경험적 추론을 해 보자. 이 대표는 작년 5월 “불체포 특권 제한에 100% 동의한다”고 했었다. 근데 지금은 불체포특권을 요구한다. 여기서 우리는 경험적으로 그의 말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어서 연역적 사유를 해보자. 이 대표는 그때 “이재명과 같은 깨끗한 정치인에게 불체포특권은 필요 없습니다”라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불체포특권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기서 ‘이재명은 깨끗한 정치인이 아니’라는 결론을 연역할 수 있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없애자고 주장해도 된다.” 유시민씨의 말이 옳다면, 적어도 작년 5월엔 윤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성인’이었다.
이 대표는 옛날에 경찰의 체포를 피해 두 번이나 도주한 적이 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그의 구속을 주장한 바도 있다. 전직 대통령도 도주의 우려가 있다면 낙선한 대통령 후보는 오죽하겠는가.
이제 ‘순수이성비판’에서 ‘판단력비판’으로 넘어가자. 칸트에 따르면 수학의 토대에 ‘공리’가 있듯이 윤리학의 바탕엔 ‘정언명법’이란 게 있다. 공리 없이 수학이 불가능하듯이 정언명법 없이는 윤리적 담론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정언명법 중의 하나는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입법으로서 타당하도록 행동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로남불’하지 말하는 것, 즉 남에게 불체포특권이 필요 없다면 자신에게도 필요 없다고 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 하나는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간주하라’는 것이다. 벌써 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최측근 세 사람이 구속됐다. 유동규·김성태씨가 분노한 것은 이 대표가 자신들을 ‘수단’으로 간주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리라.
최근 친명계 좌장 정성호 의원이 수감 중인 이 대표의 측근들을 찾아가 “맘 흔들리지 마세요.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고만 하면 이재명이 대통령 되는 거예요”라고 했다. ‘목적’이어야 할 인간을 누군가의 대권을 위한 ‘수단’으로 격하시킨 셈이다.
칸트의 두 정언명법을 위반했다는 것은 민주당이 윤리적 파탄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체 왜들 저러는 걸까. 해답은 정성호 의원의 말 속에 있다. ‘검찰에서 꼭지를 못 딴 것으로 보이니, 너희들만 침묵하면 이 대표는 대통령이 된다.’ 이것이 지금 이 대표와 친명계, 민주당 전체가 공유하는 판타지다. 그들이 부리는 억지는 이 허황하기 짝이 없는 환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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