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거 다해” 대만·美·日, 반도체 지원 경쟁 가속…한국만 뒤처졌다
韓, 뒤늦게 개정안 마련… 국회통과는 불투명
”칩4 등 글로벌 공급망서 한국 실익 챙겨야” 지적도
새해 삼성전자가 ‘어닝쇼크’ 실적을 발표하며 반도체 업계 불황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기업 TSMC의 모국 대만이 반도체 지원책을 통과시키며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한국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적에 뒤늦게 반도체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을 최대 25%로 인상하는 안을 추진하기로 했으나, 최종 관문인 국회를 통과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주요 반도체 경쟁국이 잇따라 통 큰 지원으로 자국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는 사이 한국 경쟁력이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대만, 올해부터 R&D 투자비 25% 공제… 통 큰 國에 기업 몰린다
11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대만은 지난주 ‘산업혁신 조례 수정안’을 통과시키고 기술 혁신과 세계 공급망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업체에 연구개발(R&D) 투자비의 25%, 설비투자의 5%를 세액공제해주기로 했다. 대만 경제부는 “미국·일본·한국·유럽연합(EU)이 모두 자국 공급망 구축을 위해 막대한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며 “대만은 핵심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대만은 지방세가 없고, 법인세 최고세율은 20%로 한국(25%)보다 낮다. 2021년 대만의 기록적인 가뭄으로 대량의 물이 필수적인 TSMC 반도체 생산공장에 물이 동나자 정부가 나서 농업용수를 끌어와 공장에 지원할 정도로 반도체 산업 육성에 열심이다.
그 결과 파운드리 왕좌에 오른 TSMC뿐 아니라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미디어텍 등 여러 반도체 기업이 육성되고 있다. 한국과의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매출 10억달러를 넘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대만은 28곳인 데 반해 한국은 12곳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일본·EU의 지원책도 대규모다. 미국은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25% 세액공제를 해주고, 반도체 시설 투자와 R&D 등에 520억달러(약 73조원)를 지원한다. 막대한 지원에 삼성전자부터 TSMC, 마이크론 등이 미국에 수백억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EU도 반도체 생산 확대를 위해 430억유로(약 59조원) 규모의 민관 투자 펀드를 조성하는 ‘유럽반도체법’에 합의했다. 일본은 정부가 700억엔(약 6650억원)을 지원해 소니, 도요타, 키옥시아 등 일본 대표 기업 8개가 뭉친 첨단 반도체 회사 ‘라피더스’를 설립했다. 또 반도체 기업 설비 투자의 40%가량을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TSMC가 이 지원을 받아 1조1000억엔(약 10조5500억원)을 들여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 韓 세액공제 개정안, 국회 통과 미지수… ‘칩4 역할론’ 제기도
한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안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국내 반도체 산업 육성 지원법인 ‘K칩스법’ 중 업계에서 가장 시급한 반도체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법안은 8%로 축소돼 통과됐다. 앞서 무소속 양향자 의원 주도로 국민의힘 반도체특위에서 마련한 K칩스법은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기준 20%까지 끌어올리는 법안을 추진했지만, 기획재정부가 세수 감소를 우려해 8% 수준에서 세액공제율을 채택할 것을 고집한 영향이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까지 나서 재검토를 지시하자 지난 3일 기재부는 세액공제 한도를 대폭 완화하는 안을 내놨다. 뒤늦게나마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현행 8%의 세액공제율을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까지 상향 조정하기로 한 것이다. 법이 개정되면 통과 시점과 상관없이 올해 반도체 투자분은 모두 소급 적용돼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올해 투자 증가분에 대한 추가 10% 공제 혜택을 더하면 최대 공제율은 대기업 25%, 중소기업은 35%까지 늘어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R&D 비용에 대한 세액공제율 30~50%까지 감안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지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기재부는 이달 안으로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안이 국회로 넘어가면 여야가 논의해 수정 과정을 거치는데, 현재로선 국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야당의 동의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 ‘칩4(한국·미국·일본·대만)’에서도 한국의 역할이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과 대만은 미국과 구체적인 기술 협력을 논의하며 실익을 챙기고 있으나, 한국은 칩4 참여를 공식화했을 뿐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 5일 일본은 자국 통합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를 내세워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IBM과 파운드리 분야 기술 협력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 대사는 지난 9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는 한국, 일본, 네덜란드가 모두 더 엄격한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규제를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를 바라고 있다”며 “이는 중대한 사안으로, 관련해 논의 중이다”라고 했다. 네덜란드에는 미세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기를 독점 공급하는 장비 회사 ASML이 있다. 이매뉴얼 대사의 공식 발언과 달리 한국 정부는 아직 관련 논의를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의 표준은 미국이 주도하기 때문에 미국의 동맹국 위주로 재편되는 차세대 반도체 플랫폼에 참여할 수 있게 정부가 힘써야 한다”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한국에 위기가 아닌 새로운 기회가 되게끔 생태계를 국외로 확장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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