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한 이야기]영상 기온에도 99명 동사한 대만…"히터가 뭔가요?"
[편집자주] 세계 반도체 수요의 60%, 150조원 규모의 가전시장을 가진 중국은 글로벌 IT시장의 수요 공룡으로 꼽힙니다. 중국 267분의 1 크기인 대만은 세계 파운드리 시장을 호령하는 TSMC의 본거지입니다. 미국·유럽 등 쟁쟁한 반도체 기업과 어깨를 견주는 것은 물론 워런 버핏, 팀 쿡 등 글로벌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았죠. 반도체와 가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화권을 이끄는 중국·대만의 양안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중국과 대만 현지의 생생한 전자 이야기, 여러분의 손 안으로 전해 드립니다.
"바닥이 후끈후끈하거나 에어컨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모습은 아직 대만에서 생소한 모습입니다."
대만 북부 신뻬이 시에 거주하는 A씨(30)는 겨울이 오면 집 안에서도 장갑과 외투를 착용한 채로 생활한다. 영상 10도 안팎의 '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사망자가 나온다는 뉴스가 잇따르지만, 별다른 난방용품이 없어 온 가족이 겨울 내내 외출복을 입는다. A씨는 "한국에 방문했을 때 날씨가 더 추웠는데 건물 안이 따뜻해 신기했다"라며 "핫팩 사용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 뉴스에서 소개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아열대 기후인 대만에 올 겨울들어 영상 4~8도를 오가는 한파가 불어닥치면서 벌써 99명이 숨지는 등 '겨울 비상'이 걸렸다. 세 자릿수의 사망자가 나왔던 2018년·2021년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에도 제대로 된 난방 대책이 없어 희생이 커진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난방에 대한 대만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보급률 90%가 넘는 에어컨 시장에 비해 초라했던 난방 가전 시장이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대만 온라인 유통 1위 '모모쇼핑망'에 따르면 최근 한파가 극심해지면서 12월 난방 가전 구매량이 지난 달 대비 50% 이상 급등했다. 충전식 손난로나 전기 담요 등 소형 가전에서부터 히터 등 대형 가전과 같이 난방 관련 키워드 검색량도 2배 이상 늘었다. 지난 17일부터 기온이 급격히 하강해 타이페이와 타오위안, 까오슝, 핑둥 등 전국에서 99명이 저체온증으로 숨지면서 보온 대책 관심이 급증했다.
대만이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영상 4~8도의 기온에도 사망자가 잇따르는 것은 섬 지형 특유의 습도 때문이다. 겨울에도 제습기를 가동할 정도로 습한 기후가 지속되다 보니 기온이 조금만 낮아져도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탓이 크다. 여름 기온이 40도 언저리까지 치솟고, 극지에 가까운 고위도 지역보다 추운 날이 많지 않아 제대로 된 난방 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은 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23일 타이페이의 한 가전 매장에도 난방용 가전을 구매하려는 발길이 잇따랐다. 주로 난로나 전기 담요 등 소형 가전을 찾거나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히터나 냉난방 겸용 에어컨을 찾는 사람은 적었다. 아직 실내 난방에 대한 인식이 낮기 때문이다. 매장 관계자는 "히터 제품이 있긴 하지만 구매·문의가 다른 제품의 절반 수준"이라며 "방을 온풍으로 덥힌다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다"라고 말했다.
대만 난방 가전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현지 업계는 난방 가전 시장을 여름용 에어컨 시장의 10분의 1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대만 공업기술연구원과 유로모니터 등에 따르면 대만 에어컨 시장 규모는 2025년 기준 425억 대만달러(한화 약 1조 7700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이는데, 난방 가전 시장은 약 38억~40억 대만달러(약 1700~2000억원) 수준으로 규모가 적다.
93.72%에 달하는 에어컨 보유 가구 비율과 에어컨·히터 겸용의 하이브리드형 제품이 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대만 에어컨은 '싼요' '싼포' 같은 토종 브랜드나 히타치와 다이킨, 파나소닉 같은 일본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냉방과 제습 성능에 초점을 맞춘 제품이고, 난방 성능을 갖춘 제품은 드물다. 바닥을 돌로 깔고 신발을 신는 문화가 정착돼 있어 온돌 사용도 어렵다.
냉난방 겸용의 히트펌프를 활용한 에어컨 시장이 활성화되면 여름에는 냉방, 겨울에는 난방 형태로 활용할 수 있어 대만 시장에 적합하다. 현지 가전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대만에 겨울 한파가 잇따르면서 주거·업무 공간을 따뜻하게 하려는 수요가 점차 늘고 있다"라며 "한 가정이 1~3층을 통째로 사용하거나 방마다 독립된 생활을 하는 주거 문화를 감안하면 난방 가전 수요 확대 폭은 가파를 것"이라고 했다.
최근 국가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면서 점차 점유율을 올려가고 있는 삼성·LG 등 한국 기업에게는 대만 난방 가전 시장이 새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의 대만 에어컨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00.5% 증가한 304만 달러(약 39억원)이다. 아직은 규모가 크지 않지만, 국내 기업이 에어컨과 히터를 겸하면서도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 라인업을 갖추고 있어 성장 가능성이 높다.
태풍과 지진, 좁은 국토 면적으로 인해 전력 수급이 빠듯한 편인 대만 소비자가 에너지 효율을 갖춘 제품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다. 삼성전자가 유럽에서 지난해 대비 118% 이상 성장한 제품인 친환경 냉난방 시스템 EHS는 발생 탄소를 줄이고 효율을 개선하면서도 우수한 냉난방 성능을 갖췄다. LG전자가 최근 선보인 '휘센 사계절에어컨'도 냉난방 성능을 겸비하면서 에너지 효율을 대폭 올렸다.
현지 업계 관계자는 "대만의 젊은층인 '톈란두'(1980년대 이후 출생자) 사이에서는 기성 세대보다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이 강하고 브랜드 선호도가 높다"라며 "잠재력은 높지만 아직 개척되지 않은 시장인 난방 가전 시장을 선점하려면 조기에 국가 브랜드를 활용한 공격적 마케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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