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저출산 원인, 신유교주의의 유산 '골든티켓'서 찾자"
"한국 초저출산의 원인을 신유교주의의 유산에서 찾아보자."
한국인구학회장을 지낸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내놓은 저출산 진단이다. "왜 한국의 출산력 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가"에 대한 설명이다. 은 교수는 "전 세계에서 한국의 출산력이 가장 많이 변했는데, 놀라울 정도로 혼외자 비율은 바뀌지 않았다"며 "신유교주의 정통성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진단했다.
은 교수는 지난 15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동반성장포럼에 참석해 이 같은 내용으로 강연했다. 본지는 강연 내용을 토대로 은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은 교수는 다양한 사례를 거론하며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신유교주의의 유산을 언급했다. 그 출발은 1950년대 후반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들이 썼던 보고서다.
은 교수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귀국한 후 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회상했다. 그 보고서에는 경기도 광주의 혼인망(Marriage Network)이 담겨 있었다. 누가 누구와 결혼을 했다는 내용이었는데, 결혼한 남녀의 신분이 양반과 상민, 노비 등으로 표시됐다. 왕조의 역사가 끝난지 꽤 됐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조선시대 유산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은 교수는 이어 나간 현지조사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1990년대에 방문했다는 한 마을이 대표적이다. 그는 "한 양반 집안의 후손이라고 하는 집을 찾아갔더니 안방에 가계도를 붙여놓고 자신들의 시조를 누구라고 했는데 사실과 달랐다"며 "완벽하게 신분을 세탁하고 사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신분을 감추고 싶어하는 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은 교수가 2000년대 초반 찾아간 경기도 판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판교 개발 직전에 찾아간 마을에는 오랫동안 그 지역에 살던 양반 집안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마을 교회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고 한다. 그는 "'상놈'들이 장로하고 권사하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집사를 하느냐고 하더라"라며 "조선시대가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숨쉬고 있는 걸 느꼈다"고 설명했다.
은 교수가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저출산과 관련된 신유교주의의 특성 중 첫번째로 꼽는 것은 '정통성'이다. 그는 "오늘날에는 오직 결혼으로 이뤄진 가족만이 정통성 있는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인다"며 "자식을 낳는 것도 여전히 혼인을 한 사람에 한정된 것으로 보고 있고, 이는 한국과 일본, 대만 등 유교권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현대 시대의 양반'도 신유교주의의 특성 중 하나다. 은 교수는 "과거 양반은 신분이 보장되고 험한 일을 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윤택했다"며 "오늘날에도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험한 일을 시키려고 하지 않고 좋은 학교와 직장을 보내려고 하는데, 이런 모습은 과거 조선시대 양반이 추구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은 교수의 이런 진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서 한국의 저출산 문제의 배경으로 지목한 '골든티켓'(Golden Ticket) 현상과도 유사하다. OECD는 명문대·대기업(정규직) 등에 올인하는 한국 사회의 특징을 '골든티켓 신드롬'으로 표현했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최근 청년들이 학업과 취업 과정에서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경쟁에 시달린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한다고 분석한다. 수도권 쏠림 현상도 경쟁의 결과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은 교수는 "한국 사람들은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이른바 '스카이(SKY)' 대학을 가고 대기업에 입사하려고 하는 등 청년들에게 골든티켓을 주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옛날의 양반"이라며 "골든티켓은 오늘날의 현대판 양반되기와 별 다름 없는 현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티켓을 잡은 사람은 아이를 낳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힘든 상황"이라고 전제한 뒤 "새부대에 새술을 담아야 한다"며 "헌부대에 근대식 정책을 많이 투입해봤자 효과가 없다"고 덧붙였다.
정현수 기자 gustn9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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