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만난 뒤 ‘진술 오염’?…대장동 재판에 등장한 ‘김학의 판례’
[대장동 개발사업 수사]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으로 1년여 재판을 받아온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남욱 변호사가 기존 진술을 뒤집자, 법조계에서는 해당 진술의 증명력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가 대장동 2차 수사·재판의 쟁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진술 오염 가능성 때문이다.
‘오염된 진술’ 논란은 대장동 본류 사건(배임 혐의)과 별개로 진행되고 있는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50억원 로비 의혹 재판에서 먼저 시작됐다. 검찰이 ‘수사 상황에 진척이 있다’며 남욱 변호사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증인으로 ‘다시 불러’ 신문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다. 이 둘은 석방 뒤 이 대표 쪽으로 책임을 돌리는 증언을 이어가며 검찰 수사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재판부는 이미 증인신문을 마친 남 변호사를 재차 증인으로 부르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기존에 진술했던 부분에 대해 (당시엔) 법정에서 왜 진술을 안 했는지가 문제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공동 피고인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쪽 변호인도 남 변호사 등을 다시 증인으로 채택하는데 강하게 반대했다. 전면 재수사로 연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남 변호사 등의 진술이 검사의 회유·압박 등으로 오염됐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남 변호사 등과 달리 기존 진술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김씨 쪽 변호인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판례’로 추가 증인신문을 반대하고 있다. 사업가 최아무개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차관 재판에서, 최씨는 검찰 조사와 1심 때 진술을 뒤집고 항소심부터 김 전 차관에게 불리한 증언을 내놓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김 전 차관은 항소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최씨는 항소심 증인신문에 앞서 검사와 따로 면담을 한 사실이 드러났고, 대법원은 최씨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공판에서 증인신문할 사람을 검사가 미리 수사기관에 불러 면담하고, 이후 해당 증인이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는 경우 검사가 회유·압박·답변 유도·암시 등으로 증인의 법정진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이 담보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곽 전 의원 로비 의혹 사건에서 시작된 ‘오염된 진술’ 논란은 대장동 본류 사건으로도 번질 것으로 보인다. 주요 혐의와 관련해 태도가 180도 바뀐 유동규 전 본부장 진술이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검찰의 전면 재수사 과정에서 김용·정진상 등 이재명 대표 최측근과 관련된 본인의 뒷돈 전달 혐의를 자백한 셈인데, 이 과정에서 유 전 본부장은 변호인 없이 혼자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27일 “법정에서 부인하던 혐의를 변호사 입회 없이 검찰 조사를 받다가 자백하게 된 상황인데, (검사의 개입 없이) 자백이 이뤄졌는지 충분히 문제제기 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증인 사전 접촉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에 대한 오랜 논란이 대장동 재수사를 계기로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본다. 원칙적으로 검찰은 법정에서 진술할 증인을 만나면 안 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공동 피고인을 증인으로 신문하는 일이 드물지는 않기 때문이다. 남욱·유동규 두 사람이 현재 수사 중인 사건으로 계속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라는 점에서 ‘단순 증인’과는 다른 처지에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반면 오히려 이런 불리한 처지에서 진술이 바뀐 만큼 증언의 신빙성을 더 꼼꼼히 따져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현직 부장판사는 “증인신문 전에 미리 만났다는 것은 일단 의심을 사는 행위이기 때문에 증인신문에 앞서 (검찰이 회유 및 압박은 없었다는) 설명을 어느 정도 해야 할 것이다. 공동 피고인 쪽에서 ‘왜 진술을 번복했는지’ ‘회유는 아닌지’ 적극적으로 물어볼 텐데 판사가 직접 듣고 신빙성을 판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른 판사는 “대체로 뇌물 공여자는 입을 닫고 있다가 나중에 털어놓는데 이게 ‘진술의 일관성’이라는 관점에서 약점이 되어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증인 진술이 앞뒤가 맞는지, 객관적 자료 증거와 부합하는지 등에 비춰서 증명력을 따져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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