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일이 아니다"..우크라이나 전쟁 샅샅이 파헤치는 한국군 [박수찬의 軍]
미국과 주요 서방 국가 군대와 연구기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분석에 한창이다. 21세기 유럽에서 벌어진 전면전을 통해 자국군에게 필요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다.
◆러시아, 부실한 기획·판단으로 전쟁 ‘수렁’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이 국방부 등에서 제출받은 우크라이나 전쟁 분석 중간 결과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군은 국방부와 합참 주요 부서를 중심으로 분석 작업을 벌여왔다.
분석 분야는 정책 및 전략(국방부 정책기획관실, 합참 전략기획·정보본부, KIDA, 국방대), 군사력 운용(합참 전략기획·작전본부, 각 군과 합참대 등), 군사력 건설(국방부 전력자원관리실, 합참 전략기획본부), 민간 활용(국방부 동원기획관실), 국제사회 대응과 소통(국방부 국제정책관실) 등 5개다. 국방부·합참 핵심 부서가 모두 참여하는 셈이다.
우리 군 당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분석을 진행해온 것은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옛소련 시절과 2014년 크름반도 합병 당시의 경험에 근거해 우크라이나군이 순순히 투항할 것이라는 잘못된 평가를 내린 탓이라고 군 당국은 분석했다.
침공 시기도 부적절했다. 2월 말 이후 우크라이나는 라스푸티차(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등에서 봄·가을에 땅이 진흙탕으로 변해 통행이 어려워지는 것)로 차량 이동경로가 제한된다.
전차 등 중화기 위주로 구성된 러시아군의 진격로는 일부 도로에 국한됐다. 개전 초 러시아군 기계화부대의 공격으로 국경 지역을 내줬던 우크라이나군은 도로 인근에 매복해 재블린 등 서방에서 지원받은 대전차무기로 러시아군을 공격했다.
전쟁 전 러시아의 국방개혁 성과로 평가받았던 대대전술단(BTG)에 대해서도 군은 “기동과 화력에 강점이 있으나 보병이 부족하고 지속적인 지원이 제한된다”며 “러시아군의 합동작전 제안으로 키이우 진격 과정에서 취약점을 노출했다”고 지적했다.
전면전보다는 지역 분쟁 개입에 더 적합하다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분석과 비슷한 맥락이다.
러시아군은 통신과 보안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장병들이 전선에서 휴대전화나 민간 무전기 등 상용통신망을 사용하면서 군사보안 사항이 노출됐다.
반면 우크라이나군은 전선 지휘관들에게 권한을 부여했다. 여기에 스타링크로 연결된 인터넷을 사용하는 지휘통제체계가 더해지면서 의사결정에 걸리는 시간도 단축했다.
◆무기 사용에서도 우크라이나군이 우세
전쟁에서 양측이 사용한 무기의 위력에서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보다 열세였다.
러시아는 개전 직후 24일간 미사일 900여발을 쐈다. 이는 미국이 이라크전쟁 당시 이틀만에 사용한 양과 같다. 그만큼 러시아군의 미사일 재고가 부족했고, 화력 집중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셈이다.
러시아가 자랑하던 전차는 ‘전차 무용론’이 한때 제기될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대전차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전차를 지켜줄 능동방호장치와 반응장갑이 없었기 때문이다.
능동방호장치와 반응장갑은 대전차미사일 위협에서 전차를 지켜주는 다층방어체계다. 이를 통해 전차 승무원은 미사일 공격을 받아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민병대와 현지 주민들은 화염병으로 러시아 전차의 상부와 후방 등을 집중 공격했다. 러시아 전차들이 능동방호장치와 반응장갑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이같은 공격은 상당한 효과를 거뒀다.
우크라이나 군은 러시아군 항공기 출현 예상 경로에 휴대용 지대공미사일을 매복, 저고도로 비행하는 다수의 항공기를 격추했다.
전쟁 전인 2019년 튀르키예에서 바이락타르(TB-2) 무인기를 도입, 지난해부터 동부 돈바스에서 활용하며 운용경험을 쌓았다. 이때 얻은 경험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큰 도움이 됐다.
바이락타르는 시리아 내전과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위력을 떨친 공격용 드론으로 가성비가 매우 높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는 TV와 SNS 등을 통해 국민의 항전 의지를 고취했다. 특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SNS에 수시로 연설영상을 올려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지속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 의회 연설 등을 통한 외교적 노력으로 러시아를 고립시켰고, 러시아군의 민간인 살해와 고문 등을 대대적으로 보도해 도덕적 우위를 확보했다. 러시아군 포로 및 사망자 신원을 공개해 러시아 내에서 반푸틴, 반전 여론을 유도했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 명분인 ‘탈나치화’가 국제사화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서 전방위적 저항에 직면했다.
또 “정찰위성 등 우주 인프라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관련 기술 및 장비개발 동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우주전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략적 소통에 대해서는 “효과적인 전략적 소통은 국제사회의 지지와 유리한 전쟁상황 조성, 항전의지 결집 등에 필수”라며 “출처가 명확한 정보를 식별하고, 허위정보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기능 및 부서 보강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밖에도 군 당국은 △한반도 기상·지형에 최적화된 지원 체계 구축 △민군 융합 정보전 수행 개념 발전 △시가지 작전능력 배양 △민간 자원 활용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군은 우크라이나 전쟁 변화에 따라 새로운 연구 분야를 지속 발굴하는 등 관련 자료를 계속 분석해 한국군 발전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전쟁 교훈에 대한 군 당국 내부 분석과 토의, 연구가 더욱 활발히 진행될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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