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억눌린 분노 폭발".. 격렬해지는 이란 반정부 시위
보수 강경파 라이시 대통령 취임 후
국제고립 탈출·자유확대 기대 꺾여
보안군 구타·'도덕경찰' 본부 폭파
최고지도자 정면으로 겨눈 구호도
계층·종족 떠나 '여성·생명·자유' 외쳐
보안군 실탄 발사 최소 50명 사망설
美·英 등 각국 도시서도 규탄 시위
“이란에 자유를” 이란에서 여성의 머리 등을 가리는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대 여성이 도덕경찰 조사 중 의문사해 항의시위가 전국으로 번지고, 지구촌 곳곳에서도 이란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워싱턴에서 24일(현지시간)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왼쪽 사진의 오른쪽)와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으로 분장한 시위대가 항의 퍼포먼스를 하는 가운데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시민들이 ‘이란에 자유를’이라는 푯말 등을 들고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워싱턴·토론토=AFP연합뉴스 |
목격자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시위대가 보안군을 구타하고 차에 불을 질렀으며, 여성 복장 등을 감시해 악명 높은 도덕경찰 본부를 폭파할 정도로 상황이 격화했다. 미국 워싱턴, 영국 런던, 이탈리아 로마, 그리스 아테네 등 전 세계 각국 주요 도시에서도 이란 정부를 규탄하고 자유 확대를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경찰은 아미니 사인을 심장마비라고 발표했으나, 경찰이 진압봉으로 아미니 머리를 때렸다는 보도를 접한 시민은 사망 다음 날인 17일 거리로 몰려나오면서 항의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1987년 경찰 고문으로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군 사건’을 방불케 한다.
외신들은 ‘여성, 생명, 자유’를 주요 기치로 내건 이번 시위가 전례 없는 양상을 띤다고 분석했다. 2009년 부정선거 항의 시위가 주로 중산층에, 2017년 경제정책 실패 규탄과 2019년 유가 인상 반대 시위가 빈곤층에 국한됐다면, 이번에는 계층과 종족, 성별의 구분이 사라진 모습이다.
NYT는 “테헤란 북부의 고층 아파트에 사는 부유층과 남부 시장 상인, 페르시아족과 쿠르드족, 투르크족이 결속하는 모습은 건국 이후 처음”이라며 “이는 이란의 취약해진 경제, 노골화한 부패, 정치적 억압에 대한 이란인의 폭넓은 불만을 반영한다”고 짚었다.
특히 이날 테헤란대 시위 현장에서는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가 울려퍼지는 등 반정부적·반체제적 성격이 더욱 짙어졌다. 이는 지난해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지원을 받은 보수 강경파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핵합의 복원을 통해 경제 위기와 국제적 고립을 탈출하고 사회적 자유가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가 꺾인 것이 주요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라이시 대통령은 지난 7월 “이란과 이슬람의 적들이 종교적 기반과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며 보수적 복장 규정이 완전하게 시행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 후로 종교도시 쿰의 커피숍 3곳이 히잡 미착용자를 받았다는 이유로 폐쇄되는 등 도덕경찰의 활동이 눈에 띄게 강화됐다. 이란 내부에서 보수적·종교적인 사람들마저 불만을 가져오던 차에 터진 아미니 의문사 사건이 불을 지핀 셈이다. 여성들이 공개적으로 머리칼을 자르거나 히잡을 불태우는 시위에 남성들도 적극 가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번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이란의 안보와 평온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서부 일부 지역에서는 보안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란 국영 TV는 이날까지 41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NYT는 무력 진압에 따른 사망자가 최소 50명이라고 전했다.
이란 당국이 아미니의 입원 소식을 처음 보도한 기자 등 언론인 최소 17명을 체포하고 인터넷을 차단한 가운데 미국은 대(對)이란 제재 지침을 개정해 이란 내 인터넷 접근 지원에 나섰다. 미국 우주 기업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이란의 인터넷 자유를 확대하겠다는 국무부의 온라인 성명이 발표되자 “스타링크 활성화”라는 트윗을 남겼다. 스페이스X의 저궤도 위성 인터넷 서비스를 이란 지역에 제공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유태영 기자,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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