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쉽] 핵 제멋대로 먼저 쏘겠다는 북한, 어떻게 상대해야?

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 2022. 9. 1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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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전쟁 중 핵무기를 쓰면 어쩌나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어쩌면 그보다 더 위험한 일이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다. 김정은의 북한이, 자기들이 보기에 이거 아니다 싶으면 선제적으로 핵공격에 나서겠다고 법으로 못박아 밝힌 것이다.(북한은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회의에서 <조선인민민주의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라는 법령을 채택했다.)

핵을 보유한 강대국들은 모두 지금까지 '핵으로 공격받지 않으면 먼저 핵으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을 지켜왔다. 미국과 구 소련은 심지어 재래식전쟁에서 사실상 패배해 철수하는 한이 있어도 핵 선제공격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북한은 여차하면 핵부터 쏘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이런 취지의 법령을 발표하면서, 직접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 나서 비핵화 흥정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먼저 법령의 주요 내용과 김정은이 연설을 통해 드러낸 속내를 살펴보고, 이런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논의를 전개해 보겠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보고서(이슈브리프 389호, 9월14일자)에 따르면, 이번 북한의 법령은 다음과 같은 주요 특징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은 자신에게 극도로 불리한 상황이나 최후의 수단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돼 왔으나, 이 법령은 '작전상 주도권 장악을 위해 전쟁 초기에도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지난 6월의 전술핵무기를 포함한 새로운 작전계획 수립 결정도 이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 이번 북한의 법령은 핵무기를 쓸 상황을 모두 "~라고 판단되는 경우"라고 정했다. 자의적이고 주관적 상황인식에 따라 핵을 쓰겠다는 것이고, 한미양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았어도 자기네 입장에서 위협적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핵무기를 쓸 수 있다는 협박을 명문화한 것이다.
"국가 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체계가 위험에 처하는 경우 사전에 결정된 작전 방안에 따라 핵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는 부분도 주목된다. 이는 풀어서 말하자면, 김정은에 대한 공격이 있다거나 급변사태로 지휘통제체계가 끊어질 경우, 일선 핵 부대에서 자동적으로 핵미사일을 쏠 거라는 뜻이다. 김정은 등 북한군 지휘부에 대한 참수작전과 같은 외부의 공격이 시도될 조짐이 있거나, 심지어 북한 권부 쿠데타, 주민들의 봉기와 같은 내부 혼란이 벌어져도 핵을 쓸 수 있다는 협박이다.
 

'짐이 곧 핵무기'라는 선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탈북 전, 영국주재 공사를 지냈다. 북한의 핵 정책을 유럽에 홍보하고 정당성을 주장하는 게 임무였으므로 북한 정부가 내놓는 말의 뜻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는 사람이다. 그는 최근 미국의소리(VOA) 방송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옛 프랑스의 루이14세 왕처럼 '짐이 곧 핵무기'라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해석했다.
"핵무력은 내가 지휘해. 그런데 내가 만약 죽는다면 어떻게 할 거냐? 이미 쓰인 대로 자동으로 핵을 쏴라 이겁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너희가 북한 정권 붕괴를 노리고 있지? 결국 그게 내 목숨인데 내가 곧 핵무기다. 나의 역할은 결국 뭐냐? 내가 살아있는 것이 곧 북한 핵무력에 대한 통제이고 내가 살아있는 것이 곧 핵전쟁을 막는 억지력이다. 그러니 너희가 나를 죽이면 밑의 아이들은 자동으로 쏜다. 이것을 법제화해 놓은 겁니다." (VOA 9월11일 전화인터뷰)

이는 김정은 본인의 연설을 통해서도 드러나는 속내다. 9월8일자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 보면, 김정은이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 인민은 미제국주의자들의 상투적인 설교와 궤변과 제재 압박, 군사적 위협에 못이겨 잘못된 선택으로 비참한 말로를 걷고 비극적인 마감을 맞은 20세기, 21세기의 수많은 력사의 사건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말한 '잘못된 선택'이란 핵 포기를 말한다. '우리 인민' 을 주어로 했지만, 이 문장은 김정은 자신의 마음 속 두려움을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핵을 내놨더니 독재자의 목숨이 비참하게 끝장난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리비아의 카다피다.

2011년, 나토 군에게 쫓겨 고향 시르테(수르트)까지 도망가 하수구에 숨었다가 시민군에게 붙잡힌 카다피. 이 영상이 촬영된 직후 끌려다니며 매를 맞다가 유혈이 낭자한 채로 죽었다. 너무 끔찍한 모습이어서 여기에 실을 수 없다. (Reuters/BBC 캡처)

그래서인지 김정은은 연설에서 '핵포기 협상은 없다'는 점을 여러차례 강조한다. 이런 식이다.
"절대로 먼저 핵포기란,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그 공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습니다. 핵은 우리의 국위이고 국체이며 공화국의 절대적 힘이고 조선인민의 크나큰 자랑입니다." "우리 공화국 정권과 후대들의 안전을 담보하는 핵을 대가로 개선된 가시적인 경제생활환경을 추구하지 않을것이며 천신만고한대도 우리의 선택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핵을 놓고 더는 흥정할수 없게 불퇴의 선을 그어놓은 여기에 핵무력정책의 법화가 가지는 중대한 의의가 있습니다."

자, 그럼 대체 이런 김정은을 우리는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가? 어느 전문가의 견해를 들어보는게 가장 좋을지 고민하던 필자의 머리에 1순위로 떠오른 사람은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이다. 그는 외교관으로서 1990년대 중반 1차 북핵위기때부터 북한 핵문제를 다뤘다. 미북 제네바 합의로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주게 됐을 때는 공사현장을 드나들며 북한 내부 사정을 경험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안보리 제재 문제의 최고 전문가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연이어 고위직을 지내서, 북한과 미국에 대한 양쪽 진영의 정책 프레임을 모두 경험했다. 국방,군사분야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식견도 강점이다. 2011년 1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우리 선박과 인질을 구출하는 '아덴만 여명작전'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관철한 것이 이 사람이다. 2012년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담판을 벌여 '한미 미사일지침'을 전면개정해 대한민국 미사일 전력을 획기적으로 증강할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마침 올봄에 책을 냈다. 『대통령의 외교안보어젠다』라는 제목이다. 대한민국 외교의 수장과 군 통수권자를 겸하는 대통령 자리에 누가 앉든 이해해야 하는 이슈들에 대해 국내정치적 이해에 매몰되지 않고 국제정치적으로 볼 수 있도록 설명한다. 북한 핵이 왜 문제인가, 왜 늘 돌고돌아 제자리인가, 북한의 생존전략과 협상전술은 무엇인가, 제재 무용론과 만능론의 함정, 한미양국이 선택할 비핵화전략, 독자 핵무장이 답인가, 미중갈등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번에 북한이 '절대로 핵포기 없다'고 새삼스럽게 천명한 것을 어떻게 보는지, 책 내용에 업데이트를 할 것이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다. 우리로선 난처한 일 아니냐고 전화를 한건데, 예상 외로 쿨한 반응이 나왔다.

"저는 북한이 그거 발표하는 것과 안 하는 것, 별로 차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됐다? 북한이 핵 사용 법제화 하든 말든 큰 차이 없는 이유

그는, 어떤 의미에선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했다. 사실 국내에는 북한에게 잘 해주면 (즉, 그들이 원하는 '적대시정책 포기' '체제안전보장' '제재 해제와 경제 지원' 등을 제공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전 정부의 북핵정책도 상당부분 그런 기대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번에 북한이 '대가 받고 핵 포기하는 그런 협상 절대 없다. 핵포기 안한다'고 지르고 나선 것은 국내 일각의 낭만적 대북관에 찬물을 끼얹은 효과가 있다.
천영우 이사장은, 북한이 법령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고 봤다. 어차피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만일 비자발적으로 핵을 내놓아야 할 상황이 되면 그땐 법이 있어도 소용없다는 거다.
 

의도가 아니라 '능력'이 중요하다

천영우 이사장은 그의 책에서, 북한의 '의도'에 전전긍긍하거나 심지어 그 의도를 과장하는 접근법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책에는 이런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예컨대, 대통령 특사단은 2018년 3월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면담한 뒤 김정은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면서 언론에 발표하고,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전했다. 그런데 미국이 바로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평양에 파견해 김정은의 의사를 직접 확인하기로 한 것은 정의용 특사가 전달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김정은은 폼페이오 국장에게 끝내 비핵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고 "내 아이들이 평생 핵을 지고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라는 애매모호한 언급 이상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 천영우 지음 『대통령의 외교안보어젠다』 중에서

북한이 입으로 무슨 소리를 하든, 핵무기로 우리를 위협할 '핵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 그리고 그걸 막을 능력을 우리가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이 핵을 갖고도 섣불리 전쟁할 생각을 못하게 만들만큼 군사적으로 확고한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군비를 증강하고 한미연합훈련을 강화하면 북한이 '위협당했다'며 핵에 손을 대는 상황이 벌어지진 않을까. 그런 두려움을 갖는 국민도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북한에 대해서 제일 중요한 건 북한의 핵 사용을 거부하는 역량을 갖추고 그런 상황이 올 때 언제든지 거부 능력을 차질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항상 태세를 갖추고 있는 거죠. 훈련 안 하면, 아무리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태세가 안 갖춰집니다. 러시아가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제대로 훈련이 안 되고 태세가 안 돼 있으니까 무력으로 따지면 3분의 1도 안 되는 나라한테 계속 밀리고 있는 거거든요."
 

우리가 자극하면 북한이 핵을 쏠 것이라는 착각

그래도, 한미양국의 훈련이나 미국의 핵자산 한반도 전개가 북한을 자극하면 어쩌나 걱정하는 국민이 있지 않을까.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일부러 우리가 북한이 핵을 사용하도록 자극을 하고 할 이유는 없죠. 그런데 그거하고 관계없이, 우리가 자극을 안 해도 북한은 핵을 사용해야 할 순간이 오거든요." "보통 때는, 북한이 그런 체제 생존의 위험이 없을 때는, 우리가 자극한다고 해서 자기들이 핵을 함부로 사용하고 이러지는 않고요."

문제는 그런 상황에 대한 김정은의 판단이 매우 자의적일 것이라는 점이다. 천영우 이사장의 말이다.
"(김정은) 체제의 종말을 하루라도 늦추는데 소용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때 핵을 선제적으로 사용할 겁니다. 그때가 제일 위험한 거죠. 외부의 적의 공격이 임박했을 때 사용하는 게 아니고, 임박했다고 "판단될 때" 사용한다는 게,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 판단이 주관적인 거거든요. (한미양국의 공격이) 전혀 임박하지 않았는데도 북한 스스로 임박했다고 믿으면, 이 사람들은 대낮에라도 귀신을 보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핵 능력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얘기다.
북한의 2021년 10월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발사모습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의 '핵 보유 손익 구조'를 바꿔야 한다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보니, 북핵문제에는 다른 국가의 핵무기 보유와는 다른 특성이 존재한다. 천영우 이사장에 따르면, 미국과 러시아, 미국과 중국, 인도와 파키스탄 등 핵보유국간에 핵전쟁이 나지 않는 것은 다음과 같은 손익구조 때문이다.
 
1) 핵으로 먼저 공격하면, 우리도 핵으로 응징 보복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반드시 망한다.
2) 핵을 먼저 쓰지 않는다면, 생존을 유지하는 데에 지장이 없다. 그러므로 굳이 핵 선제 사용으로 멸망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북한에는 이런 보편적 원리가 통용되지 않는다. 북한의 경우엔 핵 선제 사용으로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은 순간이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손익 구조가 다른 국가들과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북한 내부에 급변 사태가 발생해 김정은 체제가 벼랑 끝에 몰리게 될 경우 , 김정은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봉기하는 주민들을 대량 학살해야 할 상황에 도달할 수 있다. 이때 한미양국과 국제사회는 인도적 재앙을 막기 위해 군사적 개입을 시도할 수 있다. 김정은은 이를 막느냐 여부에 자신의 권력과 체제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보고, 핵무기 선제 사용에 나설 수 있다. 핵 선제 사용의 이익이 손실보다 크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핵을 사용하지 않으면 정권의 종말을 피할 수 없고 핵 공격으로 체제 종말의 가능성을 단 1%라도 줄이거나 자신의 정권을 하루라도 더 연장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한미양국이 아무리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억지가 실패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 이는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라, 국가권력이 김씨 일가에게 완전히 사유화되어 있고 '최고존엄'을 '결사옹위'하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과 동일시되는 왕조국가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괜히 '조선'국호를 여전히 쓰는 게 아니다. 백성은 죽든말든 자신만 명나라로 도망가면 종묘사직을 지키는 거라고 생각했던 선조를 떠올려 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북한이) 아무리 핵을 포기하겠다고 말을 해도 그건 거짓말 하는 것 뿐이지요. 손익 구조를 바꿔놓기 전에는 아무리 북한보고 핵을 포기하라고 해도 안 하는 거고요. 만일 손익 구조가 안 바뀌었는데도 북한이 핵포기 하겠다고 하면, 그거는 뭔가 다른 의도를 가지고 하는 거죠."
 

핵 포기 없이 경제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주면 안돼

김정은이 권력을 안전하게 유지하려면 주민들을 잘먹고 잘살게 해줘야 한다. 지난 8일 시정연설에도 이 문제로 김정은이 겪는 스트레스가 여러군데 표출돼 있다. 이를테면, 핵무력 완성을 위해 모진 고통과 국난을 감수했다며 이런 말을 한다.

"사랑하는 우리 인민들과 아이들이 허리띠를 더 조이고 배를 더 곯아야 하였고 귀중한 우리의 모든 가정들에 엄청난 생활난이 초래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보다 큰 승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는 하였지만 너무도 큰 대가를 각오해야 했고,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결과를 쉽게 예측할수는 없었던 험난한 초행길이였습니다."

경제적 댓가를 위해 핵을 먼저 내놓지는 않겠다고 여러번 다짐하는 대목도, 한편으론 경제 스트레스가 크긴 큰가보다 하는 인상을 준다.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회의에서 연설하는 김정은, 지난 8일. 북한은 이 연설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김정은의 노선은 핵-경제 병진 노선이다. 핵무장도 강화하고, 그걸 토대로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내 경제도 발전시키겠다는 거다. 미국이 '대 조선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게 만들어 안보와 경제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최대한의 핵 능력을 최장기간 유지하는 것이 북한의 목표다. 실제로 김정은이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거치며 추구했던 목표가 이것이었다. 욕심이 지나쳐서 하노이 회담에선 결국 트럼프에게 퇴짜를 맞는 파국에 이르렀지만.
2019.2.27 트럼프와 김정은의 하노이 정상회담. 김정은은 영변 핵시설만 내놓고 다른 핵시설은 숨긴 채 핵무기를 계속 생산하려했고, 트럼프가 거부하면서 협상이 깨졌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은 핵 포기 없이는 가혹한 제재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이것은 우리가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강력한 레버리지다. 그런데도 지난 정부는 제재부터 좀 풀어주자며 세계 주요국가들을 설득하려다 냉담한 반응만 얻었다. 핵 포기 수순을 밟지 않는데도 경제를 키울 방법이 있다면, 북한은 핵 포기의 길을 갈 이유가 없다.


호감/혐오가 아니라 '레버리지'가 협상을 좌우한다

'레버리지'란, 상대의 정책을 바꿀 힘을 말한다. 우리의 레버리지는 북한의 생존을 어렵게 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북한의 절박한 실존적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능력과 의지에 달려있다. 북한의 레버리지는 대한민국과 미국을 해칠 능력과 의지에서 나온다. 북한이 우리 정부에 호감을 갖고 있더라도, 북한이 원하는 것을 우리가 주거나 빼앗을 능력과 의지가 없으면 북한을 움직일 '레버리지'가 될 수 없다. 레버리지는 바로 협상력의 본질이고 협상의 결과는 레버리지의 균형에 의해 결정된다.
북한이 한미연합훈련을 결사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연합훈련이 북한의 레버리지를 줄이면서 한미양국의 레버리지를 키우기 때문이라는 게 천 이사장의 지적이다.
 

북한은 어떨 때 대화에 나올까

천영우 이사장은 대화가 쓸모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책에서, '남북관계가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남북대화는 필요하다'고 했다. 대화를 하면 북한 당국의 관심사와 우선순위, 이해관계의 구조 등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북한의 악행과 도발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경우에도 대화를 통한 해결 노력을 다했을 때 명분이 강화되므로, 대화의 문은 항상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대화 금단현상에 빠져 북한에 대화를 계속 구걸하는 것, 정권 임기내에 성과를 내서 국내정치에 활용하려는 조급증이 나쁘다고 지적한다.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화하기 싫다는데 계속 대화하자고 스토킹해봐야 특별히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당신들이 원하면 언제나 대화할 수 있다 하는 걸 보여주는 정도면 되지, 대화하기 싫다는데 계속 따라다니면서 대화하자고 자꾸 추근거리고 이럴 필요는 없다고 봐요."

북한이 우리 정부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대화를 통해 얻을 것이 있다고 판단하면 반드시 대화에 나오게 되어 있다는 얘기다. 과거에도 늘 그런 식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그런 대화라도 가능할까.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다음날,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북한 김여정 (2018년 2월 ,사진=연합뉴스)
천영우 이사장은 북한이 왜 평창동계올림픽 때 갑자기 대화분위기를 조성하며 협상으로 국면을 전환했는지 아느냐며, 세간의 이해와는 다소 다른 설명을 내놨다.
북한은 이번에도 전술핵무기 개발과 그에 필요한 핵실험 등 자기들 할 것 다 하기 전까지는 협상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천영우 이사장의 전망이다.
2017년 11월30일 북한 '화성-15형' ICBM 발사 장면. 북한은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확보한 뒤 2018년 미북정상회담에 나와 담판을 시도했다. (사진=연합뉴스)
"그 사람들은 지금 핵 개발 목표가 있을 거 아닙니까. 미국까지 가는 전략 핵미사일을 개발해 놨고 또 그걸 다탄두화 하겠다는 거고, 탄두를 소형 경량화해서 전술핵도 만들겠다고 하고… 그러면 그걸 폭발시키는 실험을 또 몇번 해야 될겁니다. 그러면 또 신규 제재가 따를거고. 그런 거 다 할때까지는 대화 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북한도 알죠."

독자 핵 무장이 답이 아닌 이유

핵 무장한 북한을 억제하려면 결국 우리도 독자 핵무장을 하거나 미국의 전술핵을 우리가 쓸 수 있도록 공유해야 하는걸까. 그는 이에 대한 설명 역시 책에 상세히 실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우리 손에 핵무기가 있어도 북한이 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므로 억지력으로 작용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북한의 인식 속에 미국은 핵무력의 수준 자체도 무시무시하지만 '한다면 하는 나라'라서 무서운 반면, 한국은 '유사시 핵을 사용하겠다'고 호언장담해도 북한이 믿지 않을 거라고 한다.

독자 핵무장을 위해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는 순간 한국에 원전 연료를 판매하는 것이 국제적으로 금지된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마침 에너지대란이 국제적으로 심각한 때이니만큼, 원자력발전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게 우리 생활에 어떤 변화를 의미하는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있어 우리의 독자적 핵무장 외에는 대안이 없다면 핵무장을 절대 못할 이유는 없지만, 동맹인 미국이 확장억지 공약(유사시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가용 수단을 동원해 대한민국을 지켜준다는 공약)을 잘 지키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훨씬 낫다는 게 천 이사장의 설명이다.

즉, "미국이 보유한 핵을 우리가 보유한 핵처럼 필요할 때 차질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동맹국간에 신뢰를 유지하고 연합방위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만들면" 독자핵무장 없이도 핵무기에 의한 북한 억지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따옴표 안의 조건을 충족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게 문제다. 한미동맹은 공짜가 아니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기브 앤 테이크' 관계다. 한미동맹 강화는 국내정치, 경제, 한일-한중관계가 모두 얽힌 고차원의 방정식이다. 정부가 풀어가야 할 난제가 만만치 않다.

(구성·편집: 이현식 D콘텐츠제작위원 / 콘텐츠디자인: 옥지수, 박수민)

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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