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쉽] 핵 제멋대로 먼저 쏘겠다는 북한, 어떻게 상대해야?
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전쟁 중 핵무기를 쓰면 어쩌나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어쩌면 그보다 더 위험한 일이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다. 김정은의 북한이, 자기들이 보기에 이거 아니다 싶으면 선제적으로 핵공격에 나서겠다고 법으로 못박아 밝힌 것이다.(북한은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회의에서 <조선인민민주의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라는 법령을 채택했다.)
핵을 보유한 강대국들은 모두 지금까지 '핵으로 공격받지 않으면 먼저 핵으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을 지켜왔다. 미국과 구 소련은 심지어 재래식전쟁에서 사실상 패배해 철수하는 한이 있어도 핵 선제공격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북한은 여차하면 핵부터 쏘겠다는 것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보고서(이슈브리프 389호, 9월14일자)에 따르면, 이번 북한의 법령은 다음과 같은 주요 특징을 갖고 있다.
'짐이 곧 핵무기'라는 선언
이는 김정은 본인의 연설을 통해서도 드러나는 속내다. 9월8일자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 보면, 김정은이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 인민은 미제국주의자들의 상투적인 설교와 궤변과 제재 압박, 군사적 위협에 못이겨 잘못된 선택으로 비참한 말로를 걷고 비극적인 마감을 맞은 20세기, 21세기의 수많은 력사의 사건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말한 '잘못된 선택'이란 핵 포기를 말한다. '우리 인민' 을 주어로 했지만, 이 문장은 김정은 자신의 마음 속 두려움을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핵을 내놨더니 독재자의 목숨이 비참하게 끝장난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리비아의 카다피다.
그래서인지 김정은은 연설에서 '핵포기 협상은 없다'는 점을 여러차례 강조한다. 이런 식이다.
"절대로 먼저 핵포기란,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그 공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습니다. 핵은 우리의 국위이고 국체이며 공화국의 절대적 힘이고 조선인민의 크나큰 자랑입니다." "우리 공화국 정권과 후대들의 안전을 담보하는 핵을 대가로 개선된 가시적인 경제생활환경을 추구하지 않을것이며 천신만고한대도 우리의 선택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핵을 놓고 더는 흥정할수 없게 불퇴의 선을 그어놓은 여기에 핵무력정책의 법화가 가지는 중대한 의의가 있습니다."
자, 그럼 대체 이런 김정은을 우리는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가? 어느 전문가의 견해를 들어보는게 가장 좋을지 고민하던 필자의 머리에 1순위로 떠오른 사람은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이다. 그는 외교관으로서 1990년대 중반 1차 북핵위기때부터 북한 핵문제를 다뤘다. 미북 제네바 합의로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주게 됐을 때는 공사현장을 드나들며 북한 내부 사정을 경험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안보리 제재 문제의 최고 전문가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연이어 고위직을 지내서, 북한과 미국에 대한 양쪽 진영의 정책 프레임을 모두 경험했다. 국방,군사분야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식견도 강점이다. 2011년 1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우리 선박과 인질을 구출하는 '아덴만 여명작전'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관철한 것이 이 사람이다. 2012년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담판을 벌여 '한미 미사일지침'을 전면개정해 대한민국 미사일 전력을 획기적으로 증강할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마침 올봄에 책을 냈다. 『대통령의 외교안보어젠다』라는 제목이다. 대한민국 외교의 수장과 군 통수권자를 겸하는 대통령 자리에 누가 앉든 이해해야 하는 이슈들에 대해 국내정치적 이해에 매몰되지 않고 국제정치적으로 볼 수 있도록 설명한다. 북한 핵이 왜 문제인가, 왜 늘 돌고돌아 제자리인가, 북한의 생존전략과 협상전술은 무엇인가, 제재 무용론과 만능론의 함정, 한미양국이 선택할 비핵화전략, 독자 핵무장이 답인가, 미중갈등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번에 북한이 '절대로 핵포기 없다'고 새삼스럽게 천명한 것을 어떻게 보는지, 책 내용에 업데이트를 할 것이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다. 우리로선 난처한 일 아니냐고 전화를 한건데, 예상 외로 쿨한 반응이 나왔다.
오히려 잘됐다? 북한이 핵 사용 법제화 하든 말든 큰 차이 없는 이유
의도가 아니라 '능력'이 중요하다
예컨대, 대통령 특사단은 2018년 3월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면담한 뒤 김정은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면서 언론에 발표하고,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전했다. 그런데 미국이 바로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평양에 파견해 김정은의 의사를 직접 확인하기로 한 것은 정의용 특사가 전달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김정은은 폼페이오 국장에게 끝내 비핵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고 "내 아이들이 평생 핵을 지고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라는 애매모호한 언급 이상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 천영우 지음 『대통령의 외교안보어젠다』 중에서
북한이 입으로 무슨 소리를 하든, 핵무기로 우리를 위협할 '핵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 그리고 그걸 막을 능력을 우리가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자극하면 북한이 핵을 쏠 것이라는 착각
"일부러 우리가 북한이 핵을 사용하도록 자극을 하고 할 이유는 없죠. 그런데 그거하고 관계없이, 우리가 자극을 안 해도 북한은 핵을 사용해야 할 순간이 오거든요." "보통 때는, 북한이 그런 체제 생존의 위험이 없을 때는, 우리가 자극한다고 해서 자기들이 핵을 함부로 사용하고 이러지는 않고요."
문제는 그런 상황에 대한 김정은의 판단이 매우 자의적일 것이라는 점이다. 천영우 이사장의 말이다.
"(김정은) 체제의 종말을 하루라도 늦추는데 소용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때 핵을 선제적으로 사용할 겁니다. 그때가 제일 위험한 거죠. 외부의 적의 공격이 임박했을 때 사용하는 게 아니고, 임박했다고 "판단될 때" 사용한다는 게,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 판단이 주관적인 거거든요. (한미양국의 공격이) 전혀 임박하지 않았는데도 북한 스스로 임박했다고 믿으면, 이 사람들은 대낮에라도 귀신을 보는 사람들이니까요."
북한의 '핵 보유 손익 구조'를 바꿔야 한다
1) 핵으로 먼저 공격하면, 우리도 핵으로 응징 보복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반드시 망한다.
2) 핵을 먼저 쓰지 않는다면, 생존을 유지하는 데에 지장이 없다. 그러므로 굳이 핵 선제 사용으로 멸망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북한에는 이런 보편적 원리가 통용되지 않는다. 북한의 경우엔 핵 선제 사용으로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은 순간이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손익 구조가 다른 국가들과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북한 내부에 급변 사태가 발생해 김정은 체제가 벼랑 끝에 몰리게 될 경우 , 김정은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봉기하는 주민들을 대량 학살해야 할 상황에 도달할 수 있다. 이때 한미양국과 국제사회는 인도적 재앙을 막기 위해 군사적 개입을 시도할 수 있다. 김정은은 이를 막느냐 여부에 자신의 권력과 체제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보고, 핵무기 선제 사용에 나설 수 있다. 핵 선제 사용의 이익이 손실보다 크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핵 포기 없이 경제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주면 안돼
"사랑하는 우리 인민들과 아이들이 허리띠를 더 조이고 배를 더 곯아야 하였고 귀중한 우리의 모든 가정들에 엄청난 생활난이 초래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보다 큰 승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는 하였지만 너무도 큰 대가를 각오해야 했고,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결과를 쉽게 예측할수는 없었던 험난한 초행길이였습니다."
북한은 핵 포기 없이는 가혹한 제재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이것은 우리가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강력한 레버리지다. 그런데도 지난 정부는 제재부터 좀 풀어주자며 세계 주요국가들을 설득하려다 냉담한 반응만 얻었다. 핵 포기 수순을 밟지 않는데도 경제를 키울 방법이 있다면, 북한은 핵 포기의 길을 갈 이유가 없다.
호감/혐오가 아니라 '레버리지'가 협상을 좌우한다
북한은 어떨 때 대화에 나올까
다만, 대화 금단현상에 빠져 북한에 대화를 계속 구걸하는 것, 정권 임기내에 성과를 내서 국내정치에 활용하려는 조급증이 나쁘다고 지적한다.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화하기 싫다는데 계속 대화하자고 스토킹해봐야 특별히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당신들이 원하면 언제나 대화할 수 있다 하는 걸 보여주는 정도면 되지, 대화하기 싫다는데 계속 따라다니면서 대화하자고 자꾸 추근거리고 이럴 필요는 없다고 봐요."
독자 핵 무장이 답이 아닌 이유
독자 핵무장을 위해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는 순간 한국에 원전 연료를 판매하는 것이 국제적으로 금지된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마침 에너지대란이 국제적으로 심각한 때이니만큼, 원자력발전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게 우리 생활에 어떤 변화를 의미하는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있어 우리의 독자적 핵무장 외에는 대안이 없다면 핵무장을 절대 못할 이유는 없지만, 동맹인 미국이 확장억지 공약(유사시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가용 수단을 동원해 대한민국을 지켜준다는 공약)을 잘 지키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훨씬 낫다는 게 천 이사장의 설명이다.
즉, "미국이 보유한 핵을 우리가 보유한 핵처럼 필요할 때 차질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동맹국간에 신뢰를 유지하고 연합방위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만들면" 독자핵무장 없이도 핵무기에 의한 북한 억지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따옴표 안의 조건을 충족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게 문제다. 한미동맹은 공짜가 아니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기브 앤 테이크' 관계다. 한미동맹 강화는 국내정치, 경제, 한일-한중관계가 모두 얽힌 고차원의 방정식이다. 정부가 풀어가야 할 난제가 만만치 않다.
(구성·편집: 이현식 D콘텐츠제작위원 / 콘텐츠디자인: 옥지수, 박수민)
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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