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서클'부터 '달라진 바지'까지.. 언론, 너무 나갔다
[하성태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2022.9.5 |
ⓒ 연합뉴스 |
다크서클이 짙고 푸석한 윤 대통령의 얼굴에 대해서도 대통령실은 "전날 밤 늦게 까지 태풍 관련 상황을 보고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5일 <중앙일보>, "힌남노 질문만 받겠다"... '비상복' 윤, 이번엔 용산서 철야대기 중
제목에 '비상대기' '철야대기'가 들어간 기사들이 9월 5일 하루동안 쏟아졌다. 그중 백미는 윤석열 대통령의 '다크서클'까지 '해석'을 가미한 <중앙일보> 기사였다. 이날 태풍 힌남노 상륙과 그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이 전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윤 대통령과 정부의 대책 마련에 언론의 관심이 쏠렸다.
그럴 만 했다. 지난 8월 8일 서울과 수도권을 비롯한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수해 당시 윤 대통령의 퇴근과 자택 지휘 등이 여론의 비난에 직면했기 때문에 힌남노에 대한 정부 대응에 자연스레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 5일 출근길 문답에서 "오늘은 퇴근 안 하시고, 그러면 (대통령실에서) 상황을 챙기시냐"는 기자의 질문이 나왔고, 이에 윤 대통령은 "오늘은 제가 비상 대기를 좀 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대다수 언론이 이같은 윤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기사화했다. '비상 대응'도 아닌 '비상 대기' 관련 기사가 쏟아진 배경이다. 윤 대통령의 답변보다 더 눈길을 끈 건 바로 이 질문이었다. 강력한 위력을 예고한 태풍과 이에 대한 안정감 있는 정부 대응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퇴근 여부가 언론의 관심사가 돼버린 것.
이와 함께 윤 대통령은 출근길 문답에서 "재난 상황을 실시간 보도해서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데 우리 언론도 협조를 해주시길 바란다"는 당부도 했다. 실제 이러한 당부처럼 실시간 보도가 쏟아졌다.
다만, 대통령의 '밤샘'을 강조하거나 '각오'를 강조하는 보도들도 함께 쏟아졌다. 얼핏 대통령이 '퇴근'을 안 한 것 자체를 칭찬하는 논조로 비칠 여지가 다분했다.
▲ 윤석열 대통령의 9월 5일(왼쪽), 8월 29일(오른쪽) 출근길 모습. 민방위복 차림과 정장 차림의 차이가 있다. |
ⓒ 연합뉴스 |
"바지가 달라졌더라. 단단히 준비를 하고 오신 것 같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5일 태풍 '힌남노' 북상에 대비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각오'를 전하면서 한 말이다. 지난달 8일 중부지방 집중호우로 서울 곳곳이 침수 피해를 입을 때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새벽까지 전화로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가 야권의 강한 비판을 받았던 윤 대통령이, 이번에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바지'로 드러내 보인 셈이다.
5일 <조선비즈>의 <"바지가 달라졌더라"... 윤 대통령, '힌남노' 북상에 용산서 철야 '각오'> 기사의 서두다. 윤 대통령의 '철야' 의지를 강조하는 대통령실 측 설명이 고스란히 강조돼 있다. 앞서 소개한 '다크서클' 기사와 대동소이한 논조다.
일각에선 '대통령 바지가 달라진 것까지 언론을 통해 알아야 하느냐'는 비판 여론도 적지 않았다. 대통령의 당연한 재난 대응이 대서특필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거나 8월 폭우 이후 태풍 상황이 아닌 대통령의 대응 자체를 국민들이 눈여겨 봐야 하는 '윤석열 시대의 달라진 풍경'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계속됐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세상에 대통령 각하 바지 똑바로 입었다고 박수 처주는 나라에서 살고 있어야 하나?"(@blud*****)라고 꼬집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힌남노가 제주에 최근접할 것으로 알려진 전날 늦은 밤부터 이날 새벽까지 대통령실에서 철야 비상대기 체제를 이어갔다. 지난달 서울과 수도권 집중호우 당시 서초동 자택에서의 원격지휘가 정치적 공방으로 번졌던 만큼, 똑같은 논란이 반복될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 6일 <이데일리>, '달라진' 윤 대통령, 태풍 힌남노 첫 철야 소감 묻자... 중에서
대통령실은 5일 윤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전화로 지시를 하는 사진도 공개했다. 지난 8월 윤 대통령의 '자택 전화 지시'를 떠올리는 이 같은 사진 역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비상 상황에서 전화로 보고를 받는 대응 자체도 어색하거니와 전원이 꺼진 전화를 가지고 지시 상황을 연출한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였다.
▲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강타한 가운데, 6일 경북 포항시 대송면 제내리 주민이 대피하고 있다. 포항은 곳곳이 물에 잠겨 주민 700여 명이 복지회관 등으로 피신했고 하천 7곳이 범람하거나 제방이 유실돼 농경지와 주택이 물에 잠겼다. |
ⓒ 조정훈 |
"대통령실에선 정치권 이슈에 지지율이 잠시 빠졌지만, 태풍 힌남노에 대한 기민한 대응 또는 적어도 논란이 없는 대응만 해도 지지율 반등의 계기를 다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와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강조했듯 민생 안정과 태풍 피해 극복 등에 집중하면서 지지율 반등의 토대를 다진다는 방침이다." - 5일 <파이낸셜 뉴스>, 대통령실, 태풍 대응으로 지지율 반등 계기 만든다 기사 중에서
6일까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논란을 빚은 기사의 일부다. 국민의 생명이 달린 재난 대응마저 추석 민심 및 지지율과 연결시키는 대통령실의 분위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논란이 되자 <파이낸셜 뉴스>는 해당 기사의 제목을 <대통령실, 태풍 대응으로 지지율 반등 계기 만든다>에서 <힌남노에 '비상대기' 대통령실, 기민한 국정운영 나선다>로 수정했다. 그러나 <파이낸셜 뉴스> 외에도 대통령실이 이번 태풍 대응에 총력을 다해 추락한 대통령 지지율을 반등시키는 계기로 만들고자 한다는 분석은 6일까지 적지 않은 언론이 기사화했다.
결과적으로, '다크 서클' 기사도, '바지' 기사도 모두 지난 8월 폭우 대응 당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대통령실이 이번 태풍 대응으로 민심을 되찾고자 하는 노력이 반영된 보도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실제 보도를 접한 이들 중 다수는 정부와 대통령의 당연한 재난 대응 마저 '언론 플레이'의 일환으로 활용하는 대통령실의 대응을 지적한다. 제목이 수정된 <대통령실, 태풍 대응으로 지지율 반등 계기 만든다> 기사가 주목을 끈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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