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돋보기]⑧ 혈의누에서 청록집까지..한국근대문학관
[※편집자 주 = 인천은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국내에서 신문물을 처음 맞이하는 관문 도시 역할을 했습니다. 인천에서 시작된 '한국 최초'의 유산만 보더라도 철도·등대·서양식 호텔·공립 도서관·고속도로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연합뉴스 인천취재본부는 이처럼 인천의 역사와 정체성이 서린 박물관·전시관을 생생하고 다양하게 소개하려 합니다. 모두 30편으로 구성될 이번 시리즈 기사는 매주 토요일 1편씩 송고될 예정입니다.]
(인천=연합뉴스) 강종구 기자 = 맹렬하게 타올랐던 폭염의 기세도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계절, 가을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고전적인 격언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왠지 이맘때면 아름드리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책장을 넘기며 혼자만의 고즈넉한 여유를 즐기고 싶은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동네 도서관도 독서의 즐거움을 즐기기에 손색이 없지만, 인천 개항장에 있는 '한국근대문학관'에 가면 교과서에서 한 번씩은 접했던 근대문학 작품들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어 유쾌한 지적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항만창고→문학관으로 재탄생
인천 중구 해안동2가에 있는 한국근대문학관은 전국에서 유일한 공공 종합문학관이다. 개별 작가나 지역 연고 문인을 기리는 전국 100여개 문학관과는 달리, 이곳은 근대문학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문학관 형태로 운영된다.
한국 근대문학을 망라하는 문학관이 서울이 아닌 인천 개항장에 들어선 것은 인천이 개항도시로서 근대문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공간이었다는 점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인천시와 인천문화재단이 기획한 근대문학관은 일제 강점기 창고 4개 동을 되살려 전체 면적 1천600㎡ 규모로 재탄생해 2013년 문을 열었다. 본관에서 50m 떨어진 기획전시관은 1899년 미쓰이물산 인천지점으로 건립돼 123년의 역사를 지녔다.
인천은 근대 문학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도시이기도 했다. 최초의 신소설 '혈의누'(1906) 주인공 옥련이가 배를 타고 일본을 향해 출발하는 곳은 인천이다.
또 최찬식의 '해안'(1914), 염상섭의 '이심'(1928) 등 근대문학 속에서 인천은 경성에서 기차를 타고 가 월미도 유원지나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에서 온천과 꽃놀이 등을 하는 곳, 돈 많은 사람들의 별장이 있는 곳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식민지 비애 속 시대에 저항한 작가들
근대문학관은 1890년대 근대 계몽기부터 1948년 분단에 이르기까지의 근대 문학 자료 2만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김소월·한용운·윤동주·현진건·염상섭·채만식 등 한국 근대문학을 이끈 주요 문인들의 작품 관련 자료가 풍부하게 전시돼 있다.
근대문학관 전시자료는 교과서를 통해 일반 독자에게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현직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고 문학 전문가들도 시기 구분과 전시 작품 선정에 참여했다.
시기별로 구분된 문학관 전시실을 차례로 돌다 보면 왕조의 몰락과 근대국가의 열망 속에서 신문학의 씨앗이 뿌려지고, 식민지 무단통치 강화 속에서도 우리 문학의 강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또 빼앗긴 나라에서 살아가는 비애와 좌절을 토로하다가도,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으로 식민지 현실에 맞서고 일제 군국주의에 저항하며 시대를 고뇌했던 작가들의 열정도 느껴진다.
100년 전 서적 복각본 등 체험공간 다양
근대문학관에는 유길준의 '서유견문록'(1895), 안국선의 '금수회의록'(1908), 이광수의 '무정'(1925) 등 유명 작품의 원본과 염상섭의 '만세전' 초판본(1924), 서정주의 '화사집' 한정판(1941) 등 희귀자료들도 적지 않다.
이들 서적은 평소 수장고에 보관돼 일반인이 관람하기는 어렵다. 대신 잡지 '소년'·'창조'·'시와 소설', 시집 '경부철도 노래'·'진달래꽃'·'님의 침묵'은 당시 책과 똑같은 모습으로 재현한 복간본을 전시하고 있다.
이밖에 '만세전'의 주인공 이인화의 여행경로를 볼 수 있는 만화경, 주요 문인의 정보를 휴대전화로 전송받을 수 있는 키오스크, 작가들의 캐리커처 스탬프 등 체험 공간도 다양하게 마련됐다.
기획전시관에서는 시기에 맞는 다양한 테마의 전시회가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오는 8일부터 내년 4월 30일까지는 '100편의 소설 100편의 마음, 혈의누에서 광장까지'라는 주제로 근대 소설 100편을 전시하는 기획전이 열린다.
근대문학관 주변에는 일제 국립은행이었다가 박물관으로 바뀐 개항박물관·근대건축전시관, 국내 최초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 재현 전시관, 인천아트플랫폼과 차이나타운 등 근대 생활상을 만날 수 있는 명소들이 있다.
이지석 근대문학관 학예연구사는 "문학관에서는 한 시대를 뜨겁게 살아갔던 문인들의 삶과 문학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며 "관람객들이 근대 문학의 소중한 성과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근대문학관 운영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 관람료는 무료다.
iny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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