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에게 귀는 무엇이었을까? '잘린 귀' 자화상에 답이 있다[송주영의 맛있게 그림보기]

입력 2022. 8. 16. 04:30 수정 2022. 8. 1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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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아무리 유명한 예술작품도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텅 빈 감상에 그칩니다. 한 장의 그림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맛있게 그림보기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림 이야기입니다. 미술교육자 송주영이 안내합니다.
<3> 귀가 없는 그림 이야기
고흐가 귀를 자른 후 한 달 뒤 그린 자화상 두 점 중 하나로 진품으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개인소장

지난 2014년, 영국의 킹스칼리지런던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만 4세 아이가 사람을 그리면서 귀까지 그려 넣을 줄 안다면 지능이 높다는 이야기였다. 총 1만5,000명의 쌍생아를 대상으로 4세에 실시한 '사람 그리기'에서 눈코입과 팔 다리를 포함하여 귀까지 그렸던 아이들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이후 14세에 다시 측정한 지능 검사에서도 그 아이들은 유의미하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려본 경험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4, 5세의 아이들에게 사람을 그려 보게 하면, 거의 대부분 귀를 그리지 않는다. 이것은 해당 발달 시기에서 당연한 일이다.

킹스칼리지런던 연구팀이 2014년 공개한 '인물화 실험'에서 최고점(만점)을 받은 4세 아동의 그림.

어린이들이 귀를 생략하는 이유

일반적으로 인간에게는 한 쌍의 귀가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아이들은 사람을 구성하는 형상 요소에서 귀를 중요한 기관으로 느끼지 못한다. 입체를 지각하는 논리력이 부족하고, 정면 직관이 주된 시각 체험인 아이들에게 머리카락에 가려 잘 안 보이는 귀는 필수적이지 못하다. 특히 연필을 쥐는 소근육 발달이 아직 미숙한 시기이기에 작은 묘사는 본능적으로 생략하기도 한다. 이런 일반적인 근거에도 불구하고, 만약 4세 아이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람을 그리면서 귀까지 묘사했다면 평균보다 뛰어난 것은 맞다. 그러나 이것을 근거로 들어 “오! 이 아이는 커서 위대한 예술가가 되겠군요!”라든가, “우리 아이는 천재다!”라고 환호할 필요는 없다.

전두엽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다고 알려진 만 9세 이전까지 아이의 뇌는 폭발적으로 증폭하며 성장한다. 인간 생애 주기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주어진 모든 외부 자극을 흡수하며 성장하는 시기다. 반복되는 잔소리라도, 폭언과 욕설이 담긴 고성도 받아들인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세상 소리를 취사 선택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타인의 이야기를 청취하거나, 배려를 위해 누군가의 곁에서 자기 입을 닫고 조용히 들어주는 일이 힘들다. 리더십 자기개발 프로그램에서 자주 언급되는 '적극적인 청취자'가 되기 어려운 시기다. 그것은 어른이 된 후의 일이다.


고흐를 스타로 만든 '잘린 귀'

그런데 어른이 된 후에도 적극적인 청취자가 될 수 없었던,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적절히 취사선택하며 삶의 고단함과 타협할 줄 몰랐던 화가가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다. 그를 일약 '근현대미술의 스타'로 만들어 준 것은 바로 귀였다.

고흐는 살아 생전 화가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동생 테오의 경제적 지원으로 연명했으며 조울증, 강박증, 납중독, 마니에르 등 여러 정신질환과 신경증을 앓았다. 그랬던 그의 작품이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건 경제대공황과 제1차 세계대전 중 유럽 지역으로 번져 나간 입소문 때문이었다. 1890년 37세의 나이로 사망했던 고흐의 작품들은 컬러 인쇄도 없던 그 당시에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고흐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본 적 없는 고흐의 그림보다 고흐의 잘린 귀가 더 유명했다. 1935년 뉴욕 현대미술관에 고흐의 그림들이 마침내 전시되자 그동안 풍문으로만 들었던 '비운의 화가 고흐'를 만나고자 무려 1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당시 미국의 괴짜 예술가 휴 트로이는 소고기로 만든 귀 모형을 액자에 담아 '이것은 고흐가 창부 연인에게 보낸 귀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전시장 한쪽에 두었는데, 사람들이 고흐 그림보다 이 문제의 액자 주변에 더 많이 모여들었다는 농담 같은 상황도 전해져 온다. 그만큼 당시 사람들에게는 고흐의 귀는 관심거리였다.

영국 에든버러의 스코틀랜드 내셔널갤러리 미술복원팀이 지난달 고흐의 1885년작 '농부 여인의 초상(왼쪽)'을 엑스레이 촬영하면서 캔버스 뒷면에서 새로운 고흐의 자화상이 발견되었다. 현재 작품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자화상 36점 중 34점에 귀 그려

그런데 또 한 번 고흐의 귀가 화제가 된 일이 최근 있었다. 지난달, 영국 에든버러의 스코틀랜드 내셔널갤러리에서 고흐의 전시회를 위해 '농부 여인의 초상'(1885년)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엑스레이 사진을 통해 캔버스 뒷면에 그려져 있던 숨겨진 자화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번 발견으로 미술사에는 새로운 한 줄이 생겼다. 고흐가 평생 남긴 자화상은 총 35점이었는데 이제 36점이 됐다. 새로 드러난 흐릿한 고흐의 자화상에서 유일하게 육안으로 식별되는 것은 '귀'다. 이제 총 36점이 된 그의 자화상들을 살펴보면 언제나 귀가 정성스럽게 그려져 있다. 물론 붕대를 감고 그린 두 작품을 제외하고 말이다. 고흐에게 귀는 자화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였음에는 분명하다.

1888년 12월 23일, 고흐는 두 달 동안 함께 지냈던 폴 고갱과 크게 다툰 후 칼로 자신의 왼쪽 귀 일부를 잘랐다. 병원에서 의식이 돌아온 고흐는 당시 일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했으며, 만취 상태였다고 진술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이전에도 과도한 음주와 발작, 심지어 납 성분이 많은 안료를 먹는 이상 증세가 잦았다. 연구자들은 당시 그가 동생 테오가 결혼한다는 편지를 받은 직후 극심한 불안 증세를 느꼈고 고갱과의 다툼이 기폭제가 되어 자해를 했다고 분석하는 편이다. 고흐가 그린 고갱의 초상화에 대해 고갱이 "나의 귀가 너무 이상해!"라고 화를 낸 것에 더 화가 나서 자신의 귀를 잘랐다는 추측도 있다. 마니에르 병으로 인한 이명 증상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자신이 자른 귀를 매춘부에게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정확한 원인과 과정은 고흐만이 알 것이다.

그의 자해 사건에 대한 당사자의 증언과 기록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고자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관심과 함께 움직였던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현대적 개념의 미술시장 태동이었다. 고흐의 작품을 본 적 없음에도 그의 기행과 가십은 알고 있었던 20세기 초 뉴요커들의 소동은 예술가에 대한 높아진 대중적 관심을 방증한다. 이러한 높은 관심과 대중적 트렌드는 시장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 1980, 1990년대 미술경매시장에서 일본인 구매자들이 그의 작품을 최고 경매가로 만든 일 역시 20세기 미술시장의 변화를 보여준다.

1889년 9월의 자화상으로 고흐가 사망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자화상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오르세 미술관 소장

귀 잘린 자화상은 왜 유명한 것일까?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된다. 고흐의 귀 잘린 자화상이 유명한 것은 현대 미술시장에서 화제성을 획득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투자 가치가 있는 보물을 만들기 위한 시장의 기획인가, 혹은 진정한 예술혼이 담긴 참된 예술 작품이기 때문인가? 이에 대한 각자의 답을 찾기 전에 또 하나의 질문도 함께 생각해 보자. 앞서 어린 아이들이 보통 귀를 그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유독 귀를 강조해서 그리는 아이는 똑똑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외부의 청각 자극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심리 상태의 증거일까? 언뜻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가지 질문은 의외로 공통적인 하나의 인식과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그림을 볼 때 가지는 태도에 대한 것이다. 즉, 우리가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맞닿아 있다.

어린 아이가 그린 인물화에서 귀의 유무나 형태에 대한 분석은 미술심리치료에서 종종 다뤄진다. 미술치료는 그림 활동 또는 그림 분석을 통해 내담자(상담치료를 받는 사람)의 정서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심리치료다. 현재 국내에도 다양한 기관에서 미술치료사를 배출하지만 국가 공인 자격증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언젠가 어떤 매체 기사에서 "우리 아이가 사람을 그리면서 귀를 그리지 않아요"라는 질문에 대해 "외부 청각 자극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변한 미술치료사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이는 여러 오해를 야기할 수 있다. 내담자에 대한 장기간의 충분한 관찰이 없이 그림에서 드러난 형태만으로 진단을 내리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창작자 의도, 가십보다 그림 자체에 몰입해야

만약 고흐의 귀 잘린 자화상을 두고 위와 같은 가벼운 분석을 시도한다면, 고흐는 듣기 싫은 세상 소리를 제거하기 위해 자해를 한 광인이라는 분석만 남을 수 있다. 그러나 고흐의 자화상 총 36점을 모두 함께 살펴보고, 귀를 잘라냈던 시점 전후의 자화상을 함께 관찰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고흐는 돈을 주고 모델을 고용할 수 없었던 형편이었기에 자기 자신으로 인물화를 연습했다. 그에게 귀는 자화상을 완성하는 하나의 요소지만, 한쪽 귀가 없어진 후에도 그는 자화상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혹자들은 그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왼쪽 귀만 그렸다가 귀를 자른 후에는 오른쪽 귀가 드러나게 그렸다고 말하지만, 지난달에 세상에 새로 공개된 캔버스 뒷면의 초기 자화상은 오른쪽 귀였다. 고흐는 귀에 집착했다기보다는 그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그림을 볼 때 창작자의 의도에 지나치게 몰입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단편적인 분석으로 그림은 가십으로만 남을 수 있다. 고흐를 둘러싼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광인' 예술가에 대해 매료된 점이나 미술시장이 형성되면서 운 좋게 '떡상'했다는 뒷이야기에만 집중한다면, 자칫 고흐의 자화상은 미술치료사 앞에 놓인 외상후장애(PTSD)를 겪는 내담자의 그림 한 장으로 그칠 수 있다. 예술로서의 그림은 분석할 수 있지만, 그 분석 자체가 목적이 되면 정작 예술 향유의 최종 종착지인 '감동'은 놓칠 수 있다. 예술로서의 그림은 늘 그 이상의 것이 숨어 있다. 고흐가 보여주는 밤 하늘에 소용돌이치는 별빛을 우리가 각자의 감흥으로 느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가 그린 사람 얼굴에 귀가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아이가 뇌세포를 자극하며 투사한 형상과 색상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면 된다. 어쩌면 그림은 우리 내면의 소리를 듣게 해주는 귀인지도 모른다.

송주영 미술교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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