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의 베를린 노트] 재난 현장에서 웃었던 독일 총리 후보자의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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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독일 서부 지역 홍수 참사로 180명 이상이 숨졌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 총리,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연방 대통령 등 거대 정치인들이 모두 재난 현장을 찾았다.
아르민 라셰트 당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총리다.
재난 현장의 또 다른 '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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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이유진 프리랜서 기자]
지난해 7월 독일 서부 지역 홍수 참사로 180명 이상이 숨졌다. 아르 계곡을 따라 형성된 마을이 통째로 휩쓸렸다. 안전 인프라가 탄탄하다고 여겨지던 독일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참사였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 총리,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연방 대통령 등 거대 정치인들이 모두 재난 현장을 찾았다. 이곳에서 스스로 정치적 삶을 재난에 빠트린 이가 있다. 아르민 라셰트 당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총리다.
아르민 라셰트는 메르켈 후임으로 기민당 총리 후보였다. 재난 대처가 9월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그는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함께 홍수 참사 지역을 방문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참담한 표정으로 피해자를 위로했다. 그때 뒤에 서 있던 라셰트가 몇몇 관계자들과 대화하며 웃는 모습이 포착됐다. 미소가 아니었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며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이 장면은 라이브로 송출됐다. 재난 현장의 또 다른 '참사'였다.
이미지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웃는 사진은 순식간에 독일을 휩쓸었다. '라셰트 라흑트(Laschet lacht, 라셰트는 웃는다는 뜻)'라는 태그를 따라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그는 귀갓길에 바로 사과 메시지를 냈다. “대화 상황에서 발생한 모습에 대해 매우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적절했으며, 유감스럽습니다.”
하지만 웃는 사진을 없앨 수는 없었다. 이 사진과 함께 한 가지가 분명해졌다. '그는 총리가 될 수 없겠구나'. 사진 한 장이 그의 선거 운동을 끝장낸 셈이다. 이후 라셰트의 모든 등장에 '라셰트는 웃는다'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당시 그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도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기민당은 입단속을 했고, 이후 선거 운동에서 라셰트의 이미지를 최소화했지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그는 총리가 되지 못했다.
지난해 말 독일 매거진 <슈테언(Stern)>은 2021년 올해의 사진 중 하나로 '라셰트는 웃는다'를 선정했다. 슈테언은 “연방 선거에서 그가 패배한 유일한 이유는 아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연말이 되어서야 밝혀졌다. 대통령과 자신의 키 이야기를 하다 웃음이 터진 것이었다. 예상보다 더 의미 없고 불필요한 대화였다. 끔찍한 참상 앞에서 할 이야기는 더 아니었다.
사건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라셰트의 사과도 끝이 없다. 그는 지난 7월 홍수 참사 1주기 관련 방송에서 “그 몇 초 길이의 장면은 내가 지금까지 후회하고 유감스러워하는 것이지만 지울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또한 이 사진이 선거 패배의 이유 중 하나라고 인정했다. 18살부터 차곡차곡 정치 커리어를 쌓고 총리 후보까지 되었던 라셰트. 몇 초의 웃음으로 그의 정치 커리어는 '라셰트는 웃는다'로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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