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대표된 극우 개신교, 기득권 집착..젊은이들 떠나게 만들어"
"분단 후 산산이 부서진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태극기세력 결탁해
전광훈 등과 교회 정치화 촉진"
"다른 목소리엔 '빨갱이'로 모는 등
신매카시즘 낳은 반지성주의 최악"
'무시-적극 대처' 대응방안 엇갈려
‘극우 개신교는 기독교를 어떻게 과잉 대표하게 되었나?’
‘전광훈’과 ‘태극기 부대’ 등이 개신교의 이미지와 겹쳐지면서, 개신교계 원로 중진들이 모여 이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복음주의를 뿌리로 한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과, 에큐메니컬(교회연합) 진영에서 나온 크리스챤아카데미가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대화의집에서 연 모임에서다.
통상 신앙적으로 복음주의는 보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로 대표되는 에큐메니컬은 진보로 불리지만, 극우가 주장하는 바와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를 내는 복음주의자들까지 ‘빨갱이’로 몰리는 한국 개신교의 현실에 따른 깊은 고뇌가 밴 대화 자리였다. 이삼열 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은 “일제강점기에는 대한독립을 위해 뭉쳤지만, 분단 이후 한국 기독교는 산산이 부서져 화해와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나날이 싸움과 재판이 늘어 수많은 ‘가나안 교인’(교회 안 나가는 크리스천)들을 양산하기에 이르렀다”고 토로했다.
발제자들은 먼저 극우의 등장이 신앙보다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데서 비롯한 것으로 봤다. 박성철 교회와사회연구소장은 ‘보수 교회의 극우화에 대한 복음주의적 진단과 대응’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근본주의자들이 전광훈을 내세워 태극기 집회 같은 극단주의 세력과 결탁해 가짜뉴스를 생산·유포하고, 극우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를 찬양하면서 교회의 정치화를 촉진했다”고 설명했다. 제주 4·3사건과 서북청년회의 비극에서 알 수 있듯이 광복 이후 한국 사회에서 근본주의자들과 극단주의 정치세력의 결합은 종종 발생했다. 1980년대까지는 외적으로 엄격한 정교분리를 주장해온 근본주의자들이, 87년 민주화 항쟁으로 군사독재 세력이 퇴조하고 2016년의 촛불집회로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면서 더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찾지 못하게 되자 교회의 정치화에 나섰다는 것이다. 하상응 교수(서강대 정치외교학과)도 미국에서 도덕적 결함이 많은 도널드 트럼프를 백인 복음주의 유권자들이 지지한 이유를 ‘기득권을 위협받는 데 대한 반발’로 해석했다.
박성철 소장은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2020 개신교인의 인식조사’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매우 보수’라고 답한 이들이 4.3%에 불과하고, ‘약간 보수’가 24.5%, ‘약간 진보’가 29.5%로 나타난 점을 들어 “극우가 한국 개신교를 과잉 대표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고 봤다.
논찬에 나선 김혜령 교수(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는 “상당수 극우 개신교인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고 민주인권주의자를 공산주의자와 동일시하면서도 자신이 극우임을 인정하지 않는 인지부조화를 보인다”며 여론조사의 답변과 현실의 괴리를 지적했다. 김 교수는 개신교의 가장 큰 문제로 ‘부패보다 건강한 신앙적 담론마저 싹을 잘라버리는 반지성주의’를 들었다. 대북 문제와 동성애 등에 있어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내면 극우들이 달려들어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와 이찬수 분당우리교회 목사, 기윤실, 청어람 등에까지 융단 폭격을 퍼붓는 한국 개신교 내의 ‘신매카시즘’ 선풍을 두고 한 말이다.
박성철 소장은 “극우 개신교인 서북청년단은 해방 후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집단 외상을 입은 뒤 제대로 치유받지 못한 채 극우 정치세력의 편집증적 반공주의에 동의해 비극을 일으켰고, 박정희 정권도 정치적 저항이 있을 때마다 간첩 사건을 조작하고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들을 ‘빨갱이’로 낙인찍어 배척하는 편집증적 반공주의를 이용했다”며 “근본주의자들이 군사력을 가진 극우 정치세력과 결탁할 경우 파시스트 운동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토론에선 극우를 무시해야 한다는 주장과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렸다. 기윤실 자문위원장인 손봉호 교수는 “한국의 정당들이 태극기 부대와 얽히면 표를 잃는다고 생각해 무시하는데, 곧 사라질 이들의 소음에 너무 신경써 과대평가해줄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반면 이삼열 이사장은 “숫자가 적고 무책임한 반지성주의를 방기하던 독일에서 나치가 나오자 다수 교회가 따라가버렸기 때문에, 독일 복음주의가 이를 반성하면서 평시부터 계몽에 나선 것”이라며 적극 대응을 주장했다.
독일에서 10년간 유학했던 박성철 소장도 “독일에선 지난해 극우인 신나치가 12%, 좌파가 6% 등 극우와 극좌가 20%를 차지해도 기독교민주연합과 사민당이란 중도좌우 정당이 건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들며, 국내에서 중도 주류의 침묵이 더 문제임을 지적했다. 하홍규 숙명여대 교수, 양권석 성공회대 교수, 조성돈 기윤실 공동대표 등은 “변화를 거부하며 침묵으로 극우에 동조하는 다수 크리스천들로 인해 결국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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