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17) 스타벅스가 낳은 커피혁명

조성민 2021. 4. 1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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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좋은 아라비카 원두 첫 전파 .. 美 커피문화 바꾸다
1960년대는 로부스타 커피가 대세
피트, 생소한 아라비카 美에 소개
커피 로스팅·브루잉까지도 알려줘
스타벅스 창설 볼드윈 등 공급받아
스타벅스, 1990년대에 美 대륙 넘어
전세계에 美 2세대 커피 문화 퍼뜨려
2000년대 '스페셜티' 커피 애호 늘어
실리콘밸리 같은 곳이 커피 혁명 주도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위치한 피트의 첫 매장. 알프레드 피트는 미국에 아라비카 원두를 소개하며 커피의 제2세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지역은 제2, 제3세대 커피 문화를 낳은 곳이기도 하다.
지난 글에서는 오스트리아의 빈에 어떻게 커피가 도입되었고, 그렇게 들어온 커피가 어떻게 20세기 국제정세와 문화를 형성한 카페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커피는 오스트리아에만 퍼진 게 아니다. 중동 지방에서 전해진 커피는 유럽을 거쳐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음료가 되었다.

혹자는 차와 커피처럼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가 유럽에 퍼진 것과 과학혁명, 산업혁명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술(알코올)이 인류의 대부분이 농업, 목축업 등으로 야외에서 육체노동을 하던 시절에 몸을 데워주고 휴식을 주는 역할을 했다면 카페인 음료는 밤늦게까지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피곤함을 모르고 어려운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었기 때문에 근대사회, 혹은 모던 사회를 탄생시키는 데 중요한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인과관계를 측정하거나 증명하기는 힘들겠지만,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특히 사무직 노동자들이 급증하면서 커피가 사회에 빠르게 확산된 것만은 의심할 필요 없는 사실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서도 커피 없이는 일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포함한 세계 인구의 80%가 카페인 음료를 매일 마신다고 하니 이제 인류는 카페인과 분리되기 힘든, 거의 중독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커피가 처음부터 요즘 전문매장에서 파는 것처럼 한 잔에 몇천원씩 했다면 지금처럼 대중화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대부분 10대에(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기 위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고, 점점 카페인에 익숙해지면서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아침잠에서 완전히 깨기 힘들다거나, 두통이 생기는 증상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특히 주말에 두통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대개 커피를 건너뛰지 않았는지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커피 전문가들은 현재 세계의 커피 소비가 세 번의 세대(wave)에 걸쳐서 진행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커피의 종류를 이해해야 한다. 에티오피아 커피, 브라질 커피 같은 지역별 종류가 아니라 큰 품종에 따른 분류다. 세계에서 생산되는 커피는 크게 로부스타(Robusta)와 아라비카(Arabica), 두 종류로 나뉜다. 지금은 커피의 약 80%가 아라비카, 20%가 로부스타일 만큼 아라비카 커피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로부스타 커피를 마셨다.

가장 큰 이유는 로부스타 커피콩이 아라비카보다 재배에 덜 까다롭고 지역적 제한이 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대량생산에 용이하고 값도 저렴하다. 게다가 사람들이 로부스타 품종의 커피를 마셨던 것은 현대에 들어 커피를 대규모로 소비하기 시작하면서 길들여진 커피가 바로 ‘인스턴트 커피’였기 때문이다. 요즘은 대개 커피와 크림, 설탕이 함께 들어가 있는 ‘커피믹스’의 형태로 소비하지만 예전에는 냉동건조 커피가 담긴 병에서 ‘커피 두 스푼, 크림 두 스푼’ 하는 식으로 일일이 퍼서 취향에 맞게 마시는 일이 더 흔했다.

물론 사람들이 처음부터 냉동건조 인스턴트 커피를 마신 건 아니다. 이효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를 보면 ‘백화점 아래층에서 커피콩을 빻아 가지고는 그대로 가방 속에 넣어서 전차 속에서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는 대목이 있다. 이 글이 발표된 해가 1938년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백화점에서 커피를 갈아서 집에 가져와 내려 마실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을 거다. 커피가 ‘커피숍’이 아닌 집에서도 마실 수 있는 음료가 된 것은 인스턴트 커피의 등장으로 가능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부스타의 가장 큰 단점은 맛이 없다는 것이다. 카페인은 많지만 맛이 쓰기 때문에 인스턴트 커피를 설탕 없이 마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다들 설탕과 우유, 크림을 넣어 마시기 때문에 오히려 맛은 중요하지 않던 시절이다. 그저 달달하고 쌉싸름한 맛으로 마시고, 정신이 번쩍 드는 각성효과 때문에 마시던 음료다. 이건 한국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미국에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맥스웰하우스, 네스카페를 비롯해, 폴저스(Folgers) 같은 브랜드들이 진공포장에 담긴 인스턴트 커피를 팔았다. 한국은 6·25전쟁 이후 이런 인스턴트 커피 문화를 미국에서 수입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에서 커피에 건조 용법을 도입해서 인스턴트 커피를 제조하는 기술은 일본계 미국인 사토리 게이토가 차에 이용하던 방법을 전용해서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1971년 처음 문을 연 스타벅스의 시애틀 매장. 스타벅스의 설립자는 알프레드 피트에게서 커피를 배웠다.
그러던 미국의 커피 문화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였다. 당시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알프레드 피트(Alfred Peet)라는 네덜란드인이 살고 있었다. 피트는 미국인들이 마시는 커피가 도대체 쓰기만 하고 커피 본연의 향은 하나도 느낄 수 없는 형편없는 로부스타 인스턴트 커피라는 것을 알고 “진짜 커피 맛을 미국인에게 소개하겠다”고 작정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네덜란드에서 커피 로스터였기 때문에 피트는 커피의 참맛을 잘 알 뿐 아니라, 좋은 콩을 구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수입하기로 한 원두가 바로 아라비카 콩이었다.

피트는 원두만 수입해서 판 것이 아니라 커피를 어떻게 로스팅하고 브루잉하는지를 아낌없이 주위에 전파했다. 곳곳에서 찾아와 새로운 커피 만드는 법을 배운 사람들 중에는 그에게서 배운 것을 가지고 1971년 시애틀에서 스타벅스 커피숍을 만든 제리 볼드윈도 있었다. 스타벅스는 한동안 피트의 가게(Peet’s)에서 좋은 아라비카 원두를 공급받았다. 처음에는 버클리와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같은 지역을 중심으로 퍼지던 새로운 커피가 서서히 미국인들 사이에 퍼져가기 시작했다. 이를 미국 커피의 제2세대(Second Wave)라고 하고, 스타벅스와 함께 지금은 스타벅스의 경쟁자가 된 피츠(Peet’s) 커피 같은 기업들이 주인공이다. 특히 스타벅스는 1990년대를 지나면서 미국 대륙을 넘어 전 세계에 미국의 2세대 커피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커피 혁명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2002년을 지나면서 스타벅스처럼 정형화된 대형 체인의 커피가 아닌 ‘스페셜티’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커피 매장의 브랜드보다 어디에서 재배된 커피콩을 어떤 바리스타가 내렸느냐를 따지는 경향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커피를 재배하는 농부들에게 얼마나 제대로 이익이 돌아가는지를 확인하는 공정무역(fair trade)을 중시하는 현상도 이 3세대의 특징. 재미있는 건 이런 새로운 흐름이 탄생한 것도 역시 샌프란시스코와 버클리를 중심으로 한 북부 캘리포니아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필즈(Philz), 버브(Verve), 블루보틀(Blue Bottle)은 각각 샌프란시스코, 산타 크루즈, 오클랜드에 본사가 있는 커피 매장으로 국내에서도 커피광들에게는 잘 알려진 ‘성지’ 같은 곳들이다. 커피의 혁명이 계속 일어나는 곳이 밤낮없이 일하는 프로그래머들이 모인 실리콘밸리와 맞닿은 동네라는 건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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