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쪽 기록에도 '물증 부족'.. '기소 주장' 한동수·임은정 책임론

이창훈 2021. 3. 2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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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모해위증 사건' 불기소 배경·향후 전망
"기소 법리 검토 기본도 못 갖춰"
재소자 진정서 의견번복도 영향

박범계, 합동감찰 공세 지속 땐
법무부·검찰 갈등 이어질 수도
2015년 8월 대법원에서 실형 2년이 확정된 한 전 총리가 지지자들의 배웅 속에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면서 눈물을 닦고 있다. 뉴스1
“불충분한 증거 입증”, “납득하기 어려운 법리”

지난 19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 의혹 사건을 재심한 간부급 검사들과 기록을 검토한 적 있는 법조계 인사들이 공통으로 낸 의견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따라 한 전 총리 재판의 모해위증 의혹을 살펴본 대검이 관련 재소자를 최종 무혐의 처분한 데는 이같은 요인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과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이 감찰 사유와 기소 의견을 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무리한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체면을 구긴 박 장관은 합동감찰로 ‘검찰개혁’의 동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10년 전 사건 수사를 둘러싼 감찰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적지 않다. 검찰 내부와 법조계에서는 무리한 기소를 추진한 임 연구관과 한 부장검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검 부장·고검장 확대 회의에서 무혐의 처분 결정에 참석자 다수가 동의한 까닭은 ‘물증 부족’이었다. 6000여쪽에 달하는 관련 기록 중 임 연구관과 한 부장검사가 내세운 증거 중 재소자들의 진술이나 검찰청 출정기록을 제외하면 모해위증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증거 부족은 대검이 앞서 지난 5일 감찰부 연구관 6인 회의를 거쳐 무혐의 결론 내린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기록을 검토한 한 검찰 관계자는 “기소를 위한 법리 검토의 기본 형식도 갖추지 못했다”며 “판사가 유죄판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법리와 증거를 제시해야 하지만 그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당초 모해위증 의혹을 제기한 재소자가 최근 자신의 진정서 의견을 번복한 것도 무혐의 처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과 대검 부장 7명, 전국 고검장 6명은 기록 검토에 이어 감찰을 주도한 한 부장검사와 임 연구관, 허정수 감찰3과장, 과거 한명숙 사건 수사팀에서 재소자를 수사했던 A 부장검사의 의견 등을 청취한 뒤 토론을 거쳐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민주당 신동근 최고위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이 자기 식구 감싸기에 얼마나 유능한 집단인지, 그 단단한 실력을 또 보여줬다”고 대검의 결정을 비판했다.
법조계에서는 박 장관이 강조한 ‘공정한 절차’가 논의에 반영된 만큼 박 장관이 대검의 결론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대신 박 장관이 수사관행 개선을 위한 합동감찰도 지시한 만큼 대대적인 합동감찰로 검찰개혁의 동력을 찾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수사지휘권 발동이 무리한 결정이었음이 드러난 상황에서 합동감찰로 박 장관이 공세를 이어갈 경우 다시 법무부와 검찰이 긴장 국면으로 접어들 수도 있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지난 10년 동안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인권 친화적 수사기관을 확립하기 위해 한 노력은 무엇이냐”며 “감찰을 위한 감찰은 또 다른 의혹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지난해 ‘원포인트’ 인사로 대검 감찰부에 발령을 받아 해당 사건의 의혹을 제기하고 기소 의견을 굽히지 않은 임 연구관에 대한 감찰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임 연구관은 무혐의 처분에 대해 “능력이 부족하여 용기 내준 재소자들에게 너무 미안해 마음이 무겁다. (다만) 만장일치가 아니었던 것에 감사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임은정 대검찰청 감찰정책연구관(부장검사). 뉴시스
임 연구관은 공소 여부를 두고 감찰3과장과의 이견을 페이스북에 쓴 것을 두고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법세련)가 임 연구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형사2부(부장검사 김형수)에 배당했다. 공무상 비밀누설에 이어 임 연구관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 중에서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와 품위유지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있다.

재경 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검 감찰부 소속 검사에 대한 감찰 권한은 법무부 감찰관에게 있다”며 “잘못된 판단과 그 과정에서 한 위법한 언행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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