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J철구 방송에 출연한 딸.. 그 미래는 누가 책임지나

변희원 기자 2020. 12. 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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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소셜미디어 속 아이들 인권

“BJ철구는 방송으로 초등학생들한테 나쁜 건 다 가르쳐놓고, 자기 자식은 좋은 초등학교 보내려는 게 말이 되냐.”

“우리 아이가 행여나 BJ철구의 딸을 따라 그 집에 놀러 갔다가 방송에 나오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일러스트= 안병현

이달 초,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 TV와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BJ철구와 외질혜의 딸이 인천의 한 사립 초등학교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퍼지자, 학부모들이 인천에 있는 몇몇 사립 초등학교에 항의했다. 지역 인터넷 맘카페에서도 입학 반대 글이 올라왔다. BJ철구는 가학적이고 엽기적인 장면을 연출하거나 욕설, 비하 발언으로 유명한 인터넷 방송인. 그는 2012년 성범죄자 김길태를 모방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가 방송 정지를 당했고, 2014년 BJ가 되겠다며 집으로 찾아온 초등학생 둘에게 4.5리터의 간장을 부어서 또 방송 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의 방송엔 특히 초등학생, 중학생 시청자가 많다. 아내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장인도 BJ로 활동한다. BJ철구는 방송에서 여러 차례 딸의 실명을 언급하며 방송 출연까지 시켰다.

몇몇 초등학교가 “해당 학생은 우리 학교에 입학하지 않는다”는 해명을 발표했고, BJ철구 딸이 입학 예정인 초등학교 교장은 “특정 학생을 임의로 선택하거나 포기시킬 수 없다”며 “앞으로 생길 모든 문제에 대해 교장인 내가 다 책임지겠다”는 입장문을 내놨다. 그럼에도 인천 지역 맘카페의 반응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내년 인천의 한 사립 초등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는 송혜미(38)씨는 “아들이 들어가는 학교에 간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아니란 게 밝혀져서 안심했을 정도다. 아이에겐 잘못이 없다는 걸 알지만, 내 아이와 어울리는 건 막을 것 같다”고 했다.

먹방 하고 화장하고…아이들이 놀면서 일한다고?

딸의 초등학교 입학 논란과 관련해 엄마인 BJ외질혜는 “딸이 혼자 알아서 공부하고 놀고 와야지 어떡하겠냐. 방치하는 게 아니라 우리 딴에는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BJ철구가 자신의 방송에 딸을 출연시키지 않거나 언급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지금과 달랐을 수도 있다. 아이와 보호자인 부모가 모두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은 미래에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까지 계산하기 어렵다. 이처럼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어린이 출연이 잦아지면서 이들의 사생활이나 인권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BJ철구의 딸처럼 부모 방송에 보조 출연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유튜버가 된 일명 ‘키즈 유튜버’나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는 어린이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국내 개인 유튜버 중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보람튜브도 7세 어린이가 나오는 키즈 채널이다. 보람튜브 브이로그(2730만명)와 보람튜브 토이리뷰(1390만명)의 구독자를 합치면 4000만명. 어썸하은(498만), 마이린TV(105만명), 뚜아뚜지(82만) 등의 키즈 채널은 성인 유튜버도 달성하기 어려운 구독자 수와 조회 수를 갖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육아스타그램’이나 ‘맘스타그램’을 검색하면 각각 3000만건 이상의 검색 결과가 나온다. 이런 계정의 프로필은 대부분 자녀 사진이고, 포스팅한 사진도 자녀의 일상 사진이 많다. 처음에는 취미처럼 시작했다가 인기가 많아지자 인플루언서가 되어 육아용품을 팔고, 아예 처음부터 상업적 용도로 육아 계정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이 부모가 판매하는 음식을 먹거나 장난감을 갖고 노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제품에 대한 신뢰감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인도 하기 힘든 영상과 사진 촬영이 아이들에겐 고역일 수 있다는 것이다. 키즈 채널을 여럿 운영하는 MCN 측은 “아이들이 놀이하듯이 자연스럽게 촬영하기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는다. 부모가 직접 촬영하는 경우가 많아서 분위기도 가족적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인스타그램용 어린이 모델 사진을 촬영하는 박모(44)씨는 “보통 애들 생일이나 가족 사진 한두 장 찍는데도 부모와 사진사가 진땀을 뺀다. 카메라 앞에 서서 부동 자세를 취하는 그 상황 자체가 애들한텐 힘들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위해 억지로 웃고 포즈를 취하는 건 더 힘들 수밖에 없다 . 애가 칭얼대면 ‘맞을래’ 하며 손을 올리는 부모도 꽤 있다”고 했다.

자극적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을 위험하거나 비교육적 상황에 몰아넣는 것이다. 보람튜브는 도로 한복판에 어린이 자동차와 실제 자동차를 연결해서 아이가 운전을 하는 상황이나 아이에게 임신, 출산하는 연기를 시켜 아동 학대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에서도 아동복을 판매하는 한 어머니가 딸에게 화장을 시키고 걸그룹이 추는 ‘섹시 댄스’ 포즈를 취하게 했다가 다른 부모들의 항의를 받고 사진을 내렸다.

‘보람 튜브’에서 아동 학대로 고발당한 장면. /유튜브 화면

아이의 사생활은 부모의 권리다?

상업적 이용이 아니더라도 자녀 사진이나 동영상을 지인과 공유하기 위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경우가 있다. 육아 과정을 남과 공유한다는 의미의 ‘셰어런팅’(공유를 뜻하는 ‘share’와 육아를 뜻하는 ‘parenting’을 합친 신조어)이다. 2018년 런던정경대에서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넷을 사용하는 부모의 75%는 자녀 사진을 한 달에 한 번 이상 인터넷에 올린다.

부모가 자녀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올린 사진이지만, 자녀의 초상권, 사생활 침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아이들이 자라서 그 사진을 보고 창피함을 느낄 수 있고, 원하지 않는 사람까지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제가 되는 사진은 아예 밈(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특정한 문화 요소와 콘텐츠)이 되어 무한히 퍼질 수도 있다. 2016년 10월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시에 사는 대런 랜들(당시 13세)은 부모에게 합의금 35만 캐나다달러(약 3억원)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부모가 자신을 창피하게 만드는 유아 시절 사진을 올렸다는 게 이유였다. 캐나다 국영방송 CBC에 그는 “사진을 과도하게 공유하는 부모들로부터 아기들과 앞으로 태어날 아기들이 법적으로 스스로 보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부모를 고소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배우 귀네스 팰트로도 딸 애플 마틴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딸에게 공개적인 항의를 받았다. 마틴은 “얘기했잖아요. 내 동의 없이 이런 걸 올리면 안 돼요”라는 댓글을 남겼다.

부모가 온라인에 올린 자녀 사진이나 정보가 범죄에도 이용될 수 있다. 아이 이름이나 나이는 물론, 등하교 시간, 자주 노는 놀이터 등이 소셜미디어에서 밝혀지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아이들 사진을 수집해 범죄 대상으로 삼은 인터넷 카페가 경찰에 적발됐다. 해외의 온라인 소아 성애 포르노 사이트에는 부모가 찍은 아이들의 수영복 차림 사진이나 영상 캡처가 올라와 있다. NBC와 뉴욕타임스는 “셰어런팅 때문에 아이들이 악성 댓글로 성희롱, 모욕을 당할 수 있고, 인터넷 집단 괴롭힘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독일 경찰은 자녀 사진을 온라인에 공개한 부모에 대해 개인 정보 설정을 강화할 것을 권고했고, 프랑스 경찰은 자녀의 알몸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몇몇 부모에게 연락해 사진을 삭제시키기도 했다.

만약 한국에서 부모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어릴 적 사진에 대해 자녀가 초상권을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 권단 변호사는 “19세 미만 자녀의 친권에는 부모가 자녀의 의사 결정을 대신할 권리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초상권을 주장하긴 어려울 것이다. 만약 사진·동영상을 찍고 올리는 과정에서 자녀에게 해를 끼치거나 가혹 행위를 했다면 그것은 아동보호법으로 검토할 영역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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