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 만든 '루트'에 반란.. 캠퍼스선 지름길이 보도가 되다 [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이창수 2020. 9. 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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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사용자가 만들어내는 '희망선' (하)
건물들로 둘러싸인 사각형 공간 '쿼드'
영미권 대학들 대부분 유사 공간 보유
잔디 위 희망선 가득해 지저분해 보여
일부 대학들 흔적 확인 후 길 만들기도
사람들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최단거리의 동선을 찾는다. 직각으로 꺾어야 하는 동선, 커다란 장애물이 있어서 돌아가야 하는 동선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을 찾아낸다. 설계한 이의 의도와 다르게 사람들이 찾아내고 만들어낸 동선을 ‘희망선(希望線, desire path)’이라 부른다. 아파트 단지와 공원 등 공공장소에 사람들이 하도 밟고 다녀서 잔디가 죽고 흙바닥이 드러난 길이 보인다면 그게 바로 사람들이 찾아낸 희망선이다.
 
공공장소를 설계하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은 아무리 열심히 고민해도 사람들이 실제로 그 장소를 사용하면서 어떻게 행동할지 짐작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아파트 단지를 설계하는 회사가 아파트와 지하철역 등을 연결하는 지점을 잘 파악해서 최단거리로 갈 수 있는 동선을 설계할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도면 위에서 하는 생각일 뿐이다. 실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변수들은 그야말로 ‘변수(變數)’이기 때문에 인간의 예측 범위를 벗어난다.

그럼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잔디를 밟고 다녀서 흙바닥이 흉측하게 드러나는 희망선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미국의 많은 대학이 바로 이 고민을 해왔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영미권의 대학 중에는 쿼드(quad)라는 공간을 가진 곳이 많다. 대학의 쿼드는 건물들로 둘러싸인 넓은 사각형의 공간인데, 가운데 공간은 잔디밭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건물에서 나온 학생들이 다른 건물로 이동할 때 시간 단축을 위해 잔디를 가로지르는 일이 많다 보니 이 잔디밭은 온통 사람들이 밟고 다닌 동선, 즉 희망선이 가득해 지저분해 보이기 십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들이 생각해낸 방법은 이런 희망선을 양성화(?)해서 보도로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사진>에 등장하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잔디밭 위 보도들의 패턴은 아무리 머리가 좋은 설계자라도 절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잔디밭을 둘러싼 강의실, 연구실에서 얼마나 많은 학생이 어디로 이동할지는 오로지 시간만이 가르쳐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ss)도 1990년대 일리노이 공대(IIT) 캠퍼스를 가로지르며 서로 교차하는 다양한 길을 만들기에 앞서 학생들이 만들어낸 희망선을 연구했다. 어떤 학교들은 한술 더 떠서 건물 완공 후 잔디밭을 만들기 전 해당 공간을 흙이나 모래로 덮어두고 몇 달 동안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을 확인한 후에야 길과 잔디밭을 만들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 희망선은 사용자들의 ‘반란’이다. 설계한 사람들이 강요한 루트를 따라 이동하기를 거부하고 자신들이 직접 길을 만들어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대학 캠퍼스들의 예처럼 사용자들이 만든 희망선을 찾아내고, 이를 존중해 길을 만드는 행위는 권력의 역전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현상이다. ‘길을 만드는 것은 설계자가 아닌 사용자’라는 것이다.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캠퍼스의 잔디밭 모습. 많은 사람이 걸어다닌 길에 잔디가 죽어 흉한 모습이 되자 학교는 잔디밭 출입을 금하는 대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희망선을 따라 보도를 만들어주었다.
희망선은 물리적인 공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인터넷을 비롯한 디지털 영역에서 오히려 더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네이버나 구글 같은 검색엔진에서 원하는 단어를 타이핑하기 시작하면 나타나는 검색어 자동완성 기능이다. 가령 ‘양념’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자동으로 ‘양념치킨,’ ‘양념갈비’ 등의 단어들이 주르륵 떠오르기 때문에 우리는 선택만 하면 된다. 마치 우리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귀신같이 원하는 검색어를 완성해주는 이 기능의 핵심은 결국 ‘양념..’을 검색창에 타이핑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쓴 검색어, 즉 가장 많이 다닌 ‘디지털 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이보다는 좀 더 정교한 룰을 가지고 있다. 가령 낮이나 저녁에는 ‘양념갈비’를 검색하는 사람이 많고, 밤 9시 이후에는 ‘양념치킨’을 검색하는 사람이 많다면 사용자가 검색하는 시간대에 따라 ‘양념갈비’가 최상위에 올라갈 수도, ‘양념치킨’이 최상위에 올라갈 수도 있다. 특정 사용자가 평소 ‘양념치킨’을 자주 검색한다면 그 사람에 한해서는 시간과 관계없이 ‘양념치킨’을 최상위에 보여줄 수도 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물리적인 공간과 달리 온라인을 비롯한 디지털 공간에서는 반드시 하나의 불변하는 루트가 존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크기업들은 사용자들이 제품을 사용할 때 어떤 실수를 하는지 면밀하게 관찰한다. 구글 검색창에 영문으로 ‘boy’를 쓴다는 것을 그만 한영키를 전환하지 않아서 ‘ㅠㅐㅛ’라고 치더라도 알아서 ‘boy’로 이해하고 보여주는 건, 그만큼 많은 한국인이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뜻이다.

실수만 지켜보는 것이 아니다. 테크기업들은 사용자들이 온라인에서 하는 행동을 연구하는 데 큰 힘을 쏟는다. 우리는 소셜미디어에서 특정인을 태깅할 때 ‘@’이라는 특수문자를 사용하고, 자신의 글이 쉽게 노출될 수 있도록 인기있는 단어 앞에 ‘해시태그(#)’를 붙이는데, 이는 원래 트위터에서 시작된 행동이다. 하지만 트위터라는 기업이 스스로 생각해낸 것은 아니었다.

트위터는 처음 탄생했을 때만 해도 기능이 거의 없는 아주 단순한 서비스에 불과했다. 그런 까닭에 사용자들은 자신의 트윗에서 다른 사람의 이름(계정)을 부를 때 일반 단어를 구분할 방법이 필요했고,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을 사용하자 너도나도 따라하기 시작한 것이다. 트위터는 많은 사용자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을 사용해서 다른 사용자의 이름을 적으면 그 사람이 볼 수 있게 하는 기능을 만들어냈다.

이는 쿼드 잔디밭에 흉하게 난 길을 보도로 만든 대학의 결정과 다르지 않다. 날이 갈수록 디지털 기기들이 이용하기 편리해지는 것은 바로 기업들의 이런 노력 덕분이다. 스마트폰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능으로 빠르게 갈 수 있는 위젯이 뜨는 것도, 웹사이트에서 결제기능으로 가는 단계가 단순해지는 것도 모두 기업들이 사용자들의 희망선을 연구한 결과다.

그러나 모든 것이 긍정적이지는 않다. 기업이 사용자들의 희망선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관찰이 필수적인데, 사용자 관찰과 사용자 감시는 사실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자신이 사용하는 기기가 편리해지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기업이 자신의 디지털 기기 사용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걸 원하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기업이 사용자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다 보면 그들의 약점을 파악하게 되고, 그렇게 파악한 약점을 이용해 그들의 행동을 기업에 유리한 쪽으로 유도할 수 있게 된다. 한 번 클릭으로 구매할 수 있는 기능은 기업이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낸 것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덫이 되기도 한다.

희망선은 권력이 설계자에서 사용자에게 넘어가는 혁명이었다. 하지만 ‘당신이 욕망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경구처럼,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희망하는지 잘 아는 사람에게 이용당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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