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증거인멸 우려없는 이재용 구속영장 청구.."이해 안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다시 구속 심사대에 선다. 검찰은 지난 4일 이 부회장 등 3명에 대해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행위, 주식회사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위증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부정 합병을 진행시키고 그 과정에서 분식회계 등 회계부정을 저질러 사안이 중대하다는 판단이다. 이 부회장 측이 검찰 수사의 적정성 여부를 국민적 시선에서 판단해 달라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한 지 이틀 만이었다.
현재 법원은 피의자가 주거와 직업이 불안정해 도망할 우려가 있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을 때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있다. 또 혐의 소명 정도나 사안의 중대성을 따져 구속영장을 발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경우 이 중 어느 하나 명확히 해당하는 게 없다는 것이 법조계 시각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 부회장의 경우 일단 도망의 우려는 없어 보인다. 대기업 총수가 가족과 기업을 두고 해외로 도망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주거지 또한 시민단체 사람들도 알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가 약 1년8개월 간 이뤄졌는데 증거를 인멸하려고 했으면 벌써 했을 것이고 증거 인멸의 우려도 없다고 보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에 따르면 검찰은 삼성그룹 관련 수사를 진행하는 동안 50여 차례에 걸쳐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110명에 대해 430여 회 소환 조사를 진행했다. 검찰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소환 조사를 최소화하던 시기에도 삼성 관계자들은 불러 조사했다. 법조계에서는 이정도면 증거 인멸의 우려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범죄 혐의의 중대성에 관해선 의견이 갈린다. 현재 검찰은 이 부회장 측이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시세조종 등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고 있으나 삼성 측은 정당한 행위였다고 방어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이 부분은 충분히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최근 법원이 혐의에 다툼이 있을 때,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라 이 부회장 역시 구속을 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 입장에서 확실한 물증이나 핵심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검찰수사심의위는 대검에서 열린다. 심의위에서는 부의심의원회에서 결정된 안건을 놓고 토론을 진행하는데 위원장은 양창수 전 대법관이다. 대검 예규에 따르면 심의위에서는 수사계속여부, 공소제기 또는 불기소 여부, 구속영장 청구 및 재청구 여부, 공소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된 사건의 수사 적정성·적법성 등을 심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심의위 소집의 경우 사건 관계인이 요청했기 때문에 수사 계속 여부와 공소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 여부, 공소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된 사건의 수사 적정성·적법성 등에 대해서만 심의할 수 있다.
심의위에는 주임 검사와 변호인 측이 참여한다. 이들은 각자 주장하는 바를 의견서로 작성해 심의위에 제출한다. 또 주임 검사와 변호인 측은 직접 위원들에게 30분 이내에 사건에 대한 설명이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위원들과 질의응답을 할 수도 있다.위원들은 의견서와 의견진술을 바탕으로 토론을 진행해 결정을 내리게 된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의 경우 검찰수사심의위에서 검찰이 불리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검찰이 1년8개월 간 진행해 온 수사를 압축해서 일반인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아무리 쉽고 간단히 정리한다 해도 관련 기록이 원가 방대하고 내용이 많기 때문에 위원들에게 쉽게 와닿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서울의 한 부장검사는 "이번 사건은 검사라도 수사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면서 "검찰이 일반인들에게 이를 설명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대로 일반인들을 오래 상대해 온 변호인 측에서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검찰 입장에선 준비를 아주 많이 해야할 것"이라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를 심의위에서 강조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구속영장이 발부된다면 법원에서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고 인정했다며 기소가 맞다고 주장하고 기각되더라도 검찰이 충분히 준비됐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수사가 사실상 종결된 시점에서 이 부회장 등은 검찰이 구성하고 있는 범죄혐의를 도저히 수긍할 수 없어 국민의 시각에서 수사의 계속 여부 및 기소 여부를 심의해 달라고 대검 수사심의위 심의신청을 접수했던 것"이라면서 "서울중앙지검 시민위원회의 안건 부의 여부 심의절차가 개시된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전문가의 검토와 국민의 시각에서 객관적 판단을 받아보고자 소망하는 정당한 권리를 무력화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했다.
이어 "길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사심의위 절차를 통해 사건 관계인의 억울한 이야기를 한번 들어주고 위원들의 충분한 검토와 그 결정에 따라 처분했더라면 국민들도 검찰의 결정을 더 신뢰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검찰은 "분식의 규모, 죄질, 그로 인한 경제적 이익 등을 감안하여 피의자 측이 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하기 이전에 이미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결정하고 검찰총장에게 승인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지난 2일에 구속영장 청구방침 결재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에도 규정돼 있듯이 구속영장 청구 등 신병은 사건 관계인 신청에 따른 수사 심의의 대상이 아니며 소집 신청으로 수사 절차가 중단되지도 않음이 명백하다"면서 "어제(3일) 검찰총장의 최종 승인 이후 기록 조제, 영장 청구서 및 의견서 완성 등 절차를 거쳐 오늘 오전 법원에 관련 서류를 접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검찰의 이같은 해명에도 논란은 당분간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4일 자신의 SNS에 "검찰수사심의위는 검찰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개혁에 동참한다는 취지로 됩됐다"면서 "위원회 심의결과에 대해 검찰이 기속되지는 않지만 존중하도록 규정돼 있으므로 완화된 기소배심제라고 볼 수도 있다"고 썼다.
이어 "이 부회장의 소집요청에 대해 묘수니 지연책이니 말이 많지만 어쨌든 사건 관계인이 제도화된 위원회를 이용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면서 "그런데도 검찰은 소집요청에 대한 반응을 영장청구로 드러냈다. 한마디로 스스로 만든 위원회를 무력화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전 회장은 "우려되는 것은 (검찰이)일반인들은 위원회 소집요청을 감히 염두에 둘 수 없도록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면서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검찰이 어떤 연유로 이런 판단을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몹시 안타깝고 유감스럽다"고 썼다.
김 전 회장은 문무일 전 검찰총장 재임 시절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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