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와 이란이 부쩍 가까워진 이유 [김향미의 '찬찬히 본 세계']
[경향신문]
베네수엘라와 이란이 부쩍 가까워지고 있다. 산유국인 두 나라는 각각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고, 최근 코로나19와 글로벌 ‘유가전쟁’ 여파로 저유가 국면에서 경제적 어려움이 한층 심해졌다. ‘동병상련’ 와중에 베네수엘라는 이란에 금을 주고 정유시설 정비 물자를 받아 연료난 해소에 나섰다. 이란은 경제적 이득을 올리는 동시에 베네수엘라를 다리 삼아 중남미지역에서 ‘반미 동맹국’으로서 영향력 확대에 나서는 모양새다.
베네수엘라는 지난달 이란 마한항공을 통해 9t(약 5억달러·약 6100억원)의 금을 이란에 전달하고, 정유시설 정비를 위한 물자를 받았다. 베네수엘라는 미국 제재 때문에 시장에서 원유를 휘발유로 맞바꾸기 어렵고, 정유시설도 낙후해 극심한 연료난을 겪고 있다. 이란이 숨통을 틔워준 것이다. 거래에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측근인 콜롬비아인 사업가 알렉스 나인 사브 모란이 개입돼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지난 8일(현지시간)보도했다. 사브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지난달 27일 임명한 새 석유장관 타렉 엘아이사미와 함께 마두로 대통령의 충성파로, 2018년부터 베네수엘라와 터키의 관계 강화에 힘쓴 인물이다. 최근 두 사람이 이란과의 거래에 공을 들였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미국은 마두로 대통령이 지난해 1월 불법선거를 통해 연임했다면서 ‘불법정권’으로 낙인찍고 제재를 가하고 있다. 미국 등은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는 야권 지도자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지지하고 있다. 미국은 사브에 대해선 베네수엘라와 터키의 ‘금·식량’ 거래를 도운 혐의로, 엘아이사미에 대해선 마약테러 혐의로 각각 기소한 상태다.
이란도 ‘베네수엘라 껴안기’에 적극적이다. 안정자산으로 꼽히는 금은 7년 만에 최고가를 기록한 후 상승세를 타고 있다. 미국의 제재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란도 베네수엘라 금이 절실하다. 하버드대 중동 전문가인 마지드 라피자데는 지난 7일 사우디아라비아 매체 아랍뉴스에 “이란이 베네수엘라와 협력하는 것은 저유가 국면 수익 창출과 더불어 반미 동맹 구축, 남미 지역 내 영향력 확대의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했다.
2001년 베네수엘라와 이란은 처음 동맹을 맺었다. 특히 2007년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이란 테헤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미 제국주의를 물리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미국 제재가 강화되면서 두 나라의 결속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올 1월 카라카스를 방문해 “베네수엘라인들의 저항은 미국 정부를 압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치켜세웠다. 지난 3일 카라카스 인근 해안 침입 용병 사건과 관련해서도 이란은 “미국이 지원한 용병”이라는 베네수엘라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고 예루살렘포스트가 8일 전했다. 또 미국 등 서방은 이란이 지원하는 헤즈볼라가 베네수엘라를 통해 남미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독일 도이체벨레는 지난 7일 “미국의 압박을 받는 두 나라가 우정을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베를린과학·정치재단(SWP)의 클라우디아 질라 연구원은 “베네수엘라는 이란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고, 헤즈볼라는 남미지역 내 세력 확장에 베네수엘라를 이용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며 “두 나라가 가까워질수록 미국의 압박도 세질 것”이라고 봤다.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29일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금 거래에 “우려하고 있다”며 국제사회에 ‘테러 항공사’인 이란 마한 항공사에 대한 제재 동참을 촉구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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