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 왕성, 사람을 제물로.. 성벽서 인골 출토

장지영 기자 2017. 5. 1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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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천년 왕성인 경주 월성(사적 제16호) 성벽에서 약 1500년 전 제물로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 2구가 나왔다.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묻힌 사람의 뼈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주거지 혹은 성벽의 건축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사용한 습속은 고대 중국(기원전 1600∼1000년·상(商)나라)에서 성행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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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구 곧게 누워.. 5세기 축조/ 설화가 고고학적으로 확인 / 토우·이두 적힌 목간도 나와
경주 월성 서쪽 성벽에서 발견된 인골 2구. 성벽 축조를 위해 제물로 바쳐진 것으로 보인다. 설화로 전해져 오던 이야기가 국내에서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아래 사진은 월성 해자(垓字·성벽 외곽에 파 놓은 못이나 물길)에서 발견된 다양한 모양의 토우들. 가운데 터번을 쓴 토우는 이란계 소그드인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제공

신라의 천년 왕성인 경주 월성(사적 제16호) 성벽에서 약 1500년 전 제물로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 2구가 나왔다.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묻힌 사람의 뼈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3월부터 진행된 정밀 발굴조사에서 5세기 전후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서쪽 성벽의 기초층에서 하늘을 향해 똑바로 누워 있는 인골 1구와 얼굴과 팔이 이 인골을 향해 있는 또 다른 인골 1구를 발견했다고 16일 밝혔다.

이종훈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소장은 “똑바로 누운 인골은 키 166㎝의 남성이고, 다른 인골은 이보다 조금 작은 159㎝로 아직 성별은 파악되지 않았다 ”며 “자연 퇴적층에 1.5m 높이로 흙을 쌓은 뒤 사람 두 명을 묻고 다시 9m 높이로 성벽을 축조했다”고 설명했다.

주거지 혹은 성벽의 건축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사용한 습속은 고대 중국(기원전 1600∼1000년·상(商)나라)에서 성행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제방이나 건물의 축조와 관련돼 설화로만 전해져 오다가 이번에 고고학적으로 처음 확인됐다. 이 소장은 “결박이나 저항의 흔적이 없고 곧게 누운 점으로 미뤄 사망한 뒤에 묻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의례 행위를 치르고 나서 매장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현재 인골을 조사 중인 김재현 동아대 교수는 “2000년 경주국립박물관 내 신라 우물 안에서 발견된 어린이 유골이나 이번에 성벽에서 발견된 유골의 특징을 볼 때 신라시대에 인신공양의 풍습이 의례행위로 존속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아이를 쇳물에 넣어 만들었다는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 설화가 우연히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증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와 함께 경주 월성의 서북쪽 해자에서는 높이 5∼10㎝에 달하는 독특한 모양의 토우(土偶·흙으로 빚은 사람 형상의 인형)들과 이두(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던 방법) 사용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목간도 나왔다. 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되는 토우 중 에는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페르시아풍의 긴 옷을 입은 것도 있어 눈길을 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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