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정부 R&D도 실패를 허하라

2017. 4. 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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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률 100%라는 정부 연구과제
실제 기술사업화에 기여도 미미
안전한 연구만 선정, 성과도 평범
벤처처럼 세계 최고기술 지향해야
김용근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한국 정부의 연구개발(R&D)예산 규모는 연간 약 20조원에 달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 중에서도 GDP대비로 최상위권에 속하지만 그 성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우호적이지 못하다.

외형적인 정부 연구과제의 성공률은 100%에 육박하지만 실제 기술사업화에의 기여도는 미미하다. 지난 30여 년간 막대한 정부예산이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산업의 신성장 돌파구가 되는 신기술로 내놓을 만한 것이 거의 없다는 평가다.

따라서 정부 연구개발예산을 지속적으로 증가시켜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R&D관리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가 중요한 이슈이다.

첫째, 안전형 연구에서 도전형 연구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현재 정부지원과제는 공적 출연금이나 보조금이기 때문에 감사원이나 국회에서는 무조건 성공시켜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세금낭비라고 담당자를 다그치고 있다. 이러한 감독 행정에 따라 태생적으로 성공 판정받을 수 있는 수준의 안전한 연구과제만 선정돼 최종 연구 성과도 평범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나 정부 지원은 본질적인 공공의 성격에 따라 성공 확률이 낮거나 위험성이 커서 개인이나 민간이 투자를 기피하는 소위 시장의 실패를 보정하는데 이루어져야 함을 감안한다면 안전한 성공의 틀에 안주시키는 그 자체가 정책 실패인 것이다. 대박은 없고 소박만 양산하는 모양새다.

따라서 앞으로 정부 지원과제는 실패나 위험성을 안고서도 세계 최초, 세계 최고를 향해서 도전하는 연구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 과제에 대한 성공·실패라는 단순 이분법적인 방식이 아니라 연구 성과의 탐구 수준과 파급 효과를 질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럴 경우 연구 성과가 당초 목표에 미달하는 경우에도 실패가 아닌 더 높은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둘째, 불신에 의한 연구과정 통제에서 신뢰에 의한 성과평가 시스템으로 전환돼야 한다. 정부예산은 엄격하게 관리, 사용되어야 하고 유용이나 횡령 등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부의 연구개발 사업관리 요령은 회의, 출장, 인건비, 식사, 기자재와 장비구입, 물품관리 같은 행위 별로 금액 기준과 절차를 세세하게 규정해놓고 이를 감시하고 있다. 심지어 연구원 개인별 과제참여 수와 연구 시간(참여율)까지 한도를 정해 관리하고 있다.

이런 연구과정 전반에 걸친 행정통제로 인해 관리 인력과 비용, 시간의 낭비도 상당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연구활동 보다는 행정관리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관리규정만 요령껏 잘 지키면 연구 결과는 무사하게 성공과제로 통과하는 시스템이다. 창의적 사고활동이 주된 화이트칼라 인력을 기계적인 실험이나 하는 블루칼라 인력처럼 노동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고급 인재인 연구원들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정해진 총액 연구비 내에서 연구 과정의 자율성을 부여하되 대신 연구성과를 중점 체크함으로써 적정한 연구비와 연구 활동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고도화된 관리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과정 통제 규정을 대폭 완화해 연구 본질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

이상과 같이 도전형, 성과평가형으로 정부 R&D예산이 관리될 때에 연구원들이 보다 자긍심을 가지고 선도적이고 창조적인 연구개발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연구관리규정이 감사원 감사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융통성 있게 재설계 되어야 한다. 또한 현재 3년 이상, 수 억원이 지원되는 과제도 수 십분 만에 신입사원 면접식으로 진행되는 선정·중간·최종 평가 방식도 앞으로는 목표와 성과를 심층적으로 점검할 수 있도록 수 시간에 걸친 전문가 집단의 토론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과제 성격과 무관하게 획일적으로 운용되는 관리 체계도 단기·소형·중소기업형 과제와 중장기·대형·국책과제 간에 완전히 특화시켜 나가야 한다. 시대 화두나 정부 색깔에 따라 그럴듯한 과제로 재포장만 해서는 절대 기대되는 결과가 나올 수 없다. 40여년 가까이 된 구형 연구관리 패러다임을 선진형으로 전면 개편하는 것이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선결 국정과제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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