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 7개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최장 군주 등극
[오마이뉴스 윤현 기자]
▲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영국 최장기간 군주 재위 기록을 보도하는 BBC 뉴스 갈무리. |
ⓒ BBC |
여왕은 영국 시각으로 9일 오후 5시 30분(한국시각 10일 오전 1시 30분) 기준으로 통치 기간이 2만3226일 16시간 23분을 넘기며 고조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을 넘어 영국의 최장기간 군주로 이름을 올렸다. 그동안 영국 총리는 12차례나 바뀌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성명을 통해 "여왕은 지난 63년간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에서 버팀목이 되어줬다"라며 "여왕이 보여준 봉사와 의무의 이타적 정신을 전세계가 칭송하고 있다"라고 축하했다. 영국뿐 아니라 영연방(British Commonwealth) 53개국도 이날을 기념한다.
영국 공영방송 BBC에 따르면 여왕은 특별한 기념식 없이 평소처럼 일정을 보낼 예정이다. 버킹엄 궁은 여왕이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증기 열차 개통식에 참석한 뒤 윌리엄 왕세손 부부와 함께 저녁 만찬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왕은 증기 열차 개통식에서 "많은 사람이 오늘이 중요한 날이라고 하지만, 나는 권위를 열망해본 적은 없다"라며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면 중요한 일들을 겪기 마련이며, 나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감동적인 축하 메시지를 전해준 국내외 모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한다"라고 강조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사랑받는 이유
지난 1926년 4월 21일 런던의 외할아버지 집에서 태어난 여왕은 영국 역사상 왕궁에서 출생하지 않은 유일한 군주이기도 하다. 당시만 해도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가 영국의 왕이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미국인 이혼녀 심슨 부인과의 결혼을 위해 왕위를 포기하는 바람에 동생이 즉위하면서 조지 6세가 되었다. 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는 영국 왕이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킹스 스피치'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
조지 6세가 건강 악화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여왕은 1952년 2월 6일 25세의 나이로 대관식을 치르며 왕위에 올랐다. 민주주의 물결 속에서 전 세계 수많은 왕실이 사라지고, 그 의미가 퇴색되면서도 영국 왕실이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힘이 크다.
여왕이 공주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런던은 독일군의 폭격을 받았다. 왕실과 여론은 공주를 캐나다로 피신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주는 오히려 아버지를 졸라 여군에 입대해 구호품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아 대위로 전역했다. 신분과 시대가 요구하는 의무를 다해야 왕실의 위엄을 지킬 수 있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것이다.
지난 6일 영국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왕이 누구인가'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7%의 지지를 얻으며 엘리자베스 1세 여왕(13%), 빅토리아 여왕(12%)을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갈수록 깊어지는 양극화와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는 영국 젊은 층은 왕실 폐지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군주제는 시대착오적인 제도이며, 왕실 유지에 드는 막대한 세금을 차라리 경제 활성화를 위해 쓰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왕이 높은 지지를 얻는 것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며 정치권과 대립하지 않고, 민의를 따르며 국가적인 고비마다 사회 통합을 이끌고 국민을 대변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왕실이 영국의 막대한 관광 수입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영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를 대표하며 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치밀한 경제적 논리도 왕실 지지 기반에 깔려있다.
최장기간 군주 배우자와 왕세자... 여왕의 남자들
여왕이 최장기간 군주라는 기록을 세우면서 올해 94세가 된 남편 필립 공도 최장기간 군주의 배우자라는 기록을 갖게 됐다. 필립 공은 여왕의 남편이자, 1953년 여왕의 대관식에서 가장 먼저 무릎 꿇고 충성을 맹세한 신하이기도 하다.
그리스·덴마크 왕족인 필립 공의 가족은 1924년 그리스 왕정이 폐지되자 그리스에서 추방당했다. 하지만 영국 해군 장교가 되려던 필립 공은 여왕이 공주 시절 해군사관학교를 방문했을 때 안내를 맡은 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에 이르렀고, 영국인으로 귀화했다.
엘리자베스 2세가 영국의 여왕이라면, 필립 공은 '내조의 여왕'으로 불렸다. 68년간 여왕의 곁을 지키면서 자신을 낮추고, 왕실 살림을 챙겼다. 부부임에도 왕실 법도에 따라 필립 공은 공식 석상에서 항상 여왕보다 몇 발짝 뒤따라 가야 한다.
올해 66세가 된 여왕의 장남 찰스 왕세자도 가장 오래 대관식을 기다린 왕자가 된다. 어느덧 왕세손 윌리엄이 결혼해 조지 왕자와 샬럿 공주까지 낳으며 손주를 안았다. 영국 왕실은 군주가 사망할 때까지 왕위를 유지하는 전통이 있어 여왕이 살아있는 한 찰스 왕세자가 왕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영국 국민들은 찰스 왕세자에게 동정보다 불만이 더 많다.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다이애나비와의 이혼과 그녀의 석연치 않은 죽음, 그리고 커밀라 파커볼스와의 불륜 등으로 왕실의 위엄을 떨어뜨렸다.
오히려 찰스 왕세자가 너무 고령이고, 그동안 잦은 스캔들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여왕이 사망하면 윌리엄 왕세손이 바로 즉위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찰스 왕세자는 '잊혀진 왕자(Forgotten Prince)'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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