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유신 반성.. 무죄 내려달라"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길 위의 신학자' 박형규 목사(89·사진)가 38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직접 무죄를 구형하고 과거의 잘못된 법 집행을 사과했다. 법원도 즉시 무죄를 선고해 과거사 반성에 한목소리를 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김상환 부장판사)는 지난 6일 오전 박 목사에 대한 재심 재판을 열었다. 지난 6월 말 재심 개시 결정에 따라 처음 이뤄진 재판이었다. 구순을 바라보는 박 목사도 이날 지팡이를 짚은 채 법정에 직접 섰다.
이날 재판에서는 검찰의 모두진술부터 의외의 장면이 나왔다. 검찰은 박 목사에 대한 1974년 비상보통군법회의 판결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밝히면서 잘못된 공권력 행사였다고 고백했다.
법정에 출석한 검사는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에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라며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 목사에게) 무죄를 내려달라"고 했다.
그동안 재심 사건에서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해달라'고 암묵적으로 무죄 의견을 밝힌 적은 있지만 직접 무죄를 구형한 것은 처음이다.
김 부장판사는 변호인과 박 목사의 진술을 들은 뒤 곧바로 무죄를 선고했다. 심리를 마친 당일 선고를 하는 '즉일 선고'는 극히 이례적이다. 재판부는 고령으로 거동이 편치 않은 박 목사를 고려해 즉일 선고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박 목사와 변호인뿐 아니라 검사도 재판부 판단과 동일했음을 밝힌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4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종전 판결의 당부(當否)를 엄밀하게 논할 수는 없지만 죄와 벌을 최종 선언하는 법관으로서 거대한 파고의 주류적 의견에 묻힐지 모르는 보석 같은 헌법적 가치에 늘 주목해야 함을 새삼 교훈으로 얻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장구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기울였을 노력 등이 이 판결을 가능하게 했음을 고백하며, 부디 이 판결이 피고인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우리 사법에 대한 안도로 이어지길 소망한다"고 판결문을 맺었다.
박 목사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당시 민청학련 지도부에 자금을 지원하고 반체제 운동을 돕고 내란을 선동한 혐의로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다. 긴급조치 1호와 4호 위반, 내란선동죄가 적용됐다.
재판부는 앞서 사법부의 위헌 판단을 받은 긴급조치 1호와 4호에 대해 다시 '위헌'임을 확인했다. 내란선동죄에 대해서도 "당시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극도로 위축된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함이지 내란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피고인의 주장과 달리 평가할 만한 사정들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라고 판단했다.
<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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