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 전골? 튀김? … ‘당면’ 과제, 어떻게 요리해도 정답 ! [이우석의 푸드로지]

2024. 5. 16.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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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석의 푸드로지 - 당면
감자·고구마 전분으로 만들어
반투명하고 쫄깃, 겉면은 매끈
양념 국물 빨아들이며 점도조절
짜고 매운 맛 중화시키는 역할도
간장·고추장·마라 모두 잘 어울려
김말이 튀김, 식감 즐기기에 그만
부산 비빔당면은 국수처럼 먹어
서울 종로의 중국 음식점 ‘신승관’의 잡채밥.

‘우리나라에 신라면은 있고 백제면이 없는 이유’라는 재미난 우스개가 있다. 들어본즉슨, 과거 ‘백제면’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는데 이를 시기한 ‘신라면’이 ‘당면’과 함께 합세해 ‘라당 연합군’을 이뤄 백제면을 멸망시켰다는 얘기다.

다들 갖다 붙인 이름이지만 실재한 것은 중국에서 왔다고 당면(唐麵) 이야기다. 당근, 호떡, 호부추 등 당(唐) 자가 들어가거나 호(胡) 자가 들어가면 죄다 중국을 통해서 전래된 것들이다. 참고로 만일 서양에서 온 것이라면 앞에 양(洋)이 붙는다.

당면은 분탕(粉湯)이라고도 부른다. 고구마나 감자에서 뽑아낸 전분 국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보다 서정적(?)인 이름을 붙였다. 봄비처럼 가늘고 투명하대서 하루사메(春雨)로 부른다. 원래부터 국수를 좋아하고 당면은 소면에 비해 존득하고 매끈해서 입맛에 딱 맞았을 테니 듣기 좋은 이름을 갖다 붙였다. 중국어로는 펀스(粉絲), 영어로는 투명하다고 글라스 누들(Glass noodles)이라고 한다. 여기저기 부르는 이름이 많은 것을 보면 세계적으로 즐겨 먹는 국수 종류임이 틀림없다.

광주 서석동 ‘삼미관’의 잡채밥.

당면은 밀이나 쌀이 아닌 감자와 고구마 등에 든 전분으로 만든 국수다. 반투명하고 쫄깃하면서도 겉면은 매끈매끈하다. 말려서 보관하기도 좋고 물을 부어 삶으면 미역처럼 거의 원래 상태대로 회복된다. ‘당면이 즉 잡채’라는 인식이 은연중에 퍼져 있는데 알다시피 잡채에는 원래 당면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전에 푸드로지에서 다룬 바대로 잡채는 고기와 채소를 가늘게 채를 썰어 섞어 먹는 고급 요리였다. 조선 중기에도 먹던 잡채에 당면이 들어간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다. 문헌상으로는 1921년에 발간된 ‘조선요리제법’에 처음 당면 잡채를 소개했다. 감자나 고구마가 널리 전파된 이후 청나라 때 수입했던 것이라 당면이라고 불렀는데 1912년 평양에 당면공장이 생기며 자급되기 시작했다.

평양의 당면공장은 일본인 자본으로 생겨난 것이고 7년 뒤인 1919년 황해도 사리원에 조선인 양재하에 의해 대형 당면공장 ‘광흥공창’이 세워지며 본격적으로 당면이 유행했다. 부족한 쌀을 대신할 수 있는 광흥당면(光興唐麵)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너도나도 당면을 음식에 넣어 양을 불렸다. 잡채와 불고기는 물론, 갈비찜이나 닭찜, 심지어 만두와 순대 속에도 들어갔다. 말린 당면을 부숴서 넣고 찌면 당장 넉넉하게 불어나니 이만한 식재료도 드물었다.

부산 부평동 ‘깡통골목 원조 비빔당면’의 비빔당면.

당면이 얼마나 많이 팔렸냐 하면 1933년 10월 1일자 동아일보에 ‘사리원 당면공장에 불이 나 전소됐고 소방서 추산 피해액 1000원 상당이 발생했다’는 기사가 등장했다. 당시 1000원이면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1937년 김정구와 장세정이 부른 ‘백만 원이 생긴다면’이라는 노래에 “만약에 백만 원이 생긴다면∼비행기도 한 대 사놓지”란 가사가 등장한다. 1935년에는 광흥당면 60만 근(360t)을 일본에 수출했다는 기사도 찾아볼 수 있는데, 말린 당면이 얼마나 가벼운지를 생각해 보면 그 양을 짐작할 수 있다.

아무튼 이때 국산 당면공장의 활약으로 당면의 보급화·대중화가 이뤄졌다. 당면을 활용한 조리법이 인기를 끌었다. 당면을 넣고 안 넣고에 따라 그 양과 포만감이 달라지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창자와 선지만 있으면 곡물이나 부속 고기가 전혀 없어도 당면을 욱여넣고 순대를 만들 수 있었다. 말려도 뚝뚝 부러지는 국수로는 어려웠다. 식감도 적당히 쫄깃해 다른 대체품이 없을 정도였다. 당면은 요즘으로 따지자면 스마트폰처럼 ‘희대의 신기술’이었다.

충남 공주 산성시장 ‘간식집’의 잡채만두.

원래 녹두로도 비슷하게 만들 수 있지만 감자와 고구마 값이 훨씬 싸고 씹는 맛이 좋아 잡채에는 대부분 당면을 쓴다. 녹두 당면은 이제 태국 얌운센 등 동남아시아 음식에서 주로 만날 수 있다. 요즘은 당면 전성시대라고 부를 만큼 다양한 당면 종류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얇은 것은 콴펀(寬粉)이라고 부르며 좀 더 두껍고 넓적한 수정(水晶) 당면도 있다. 훠궈(火鍋) 요리에 주로 써서 ‘훠궈둔펀’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일반 당면보다 씹는 맛이 더 좋다. 중국에서나 먹던 것이 훠궈와 마라탕(麻辣湯)의 인기에 편승해 덩달아 수입되며 국내 소비자의 입맛을 길들이고 있다. 떡볶이 떡처럼 굵은 것은 따로 분모자(粉耗子)라고 한다. 이 수정 당면과 분모자가 요즘 인기다. 시중 떡볶이 가게에서도 씹는 맛을 높이기 위해 이들 재료를 쓰기도 한다. 특히 메뉴로 마라 떡볶이를 한다면 틀림없다.

당면을 넣어 끓이는 충남 금산 ‘이본가’의 왕갈비탕.

당면은 조리에 쓰기 전에 충분히 물에 불려야 한다. 미리 육수를 넉넉하게 잡아놓은 전골에는 그냥 넣어도 된다. 즉석 떡볶이에 마른 당면을 넣어두고 끓이는 경우를 연상하면 된다. 설렁탕이나 갈비탕 등 국탕류에도 몇 가닥 집어넣으면 밥의 식감을 거들어 준다.

함께 넣고 볶으면 양념 국물을 빨아들이며 점도를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당면 자체에 특별한 맛이 없다 보니 짜고 매운 양념을 중화해 주기도 한다. 쫄깃한 식감만 즐기기 위해 불린 당면을 김에 둘둘 말아 튀겨낸 김말이도 생겨났다. 드물지만 아예 국수처럼 즐기는 경우도 있다. 부산의 별미로 통하는 비빔당면이 그것이다. 짬뽕에는 당연히 밀국수를 쓰지만 밥을 따로 내주는 짬뽕밥이나 짬뽕 안주에는 당면이 들어간다. 중국에서 온 당면이 고향(?)을 찾아가는 셈이다. 여러 가지 기능 덕에 당면은 조리사 입장에선 다양한 요리에 곁들일 수 있는 ‘만능 국수’로도 통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저렴하고 맛이 괜찮은 당면을 마다할 리 없다. 다만 정제된 전분 덩어리라 탄수화물 과다 섭취에 대한 우려도 있다. 기름에 튀기지는 않았지만, 자체의 칼로리는 만만찮다. 다양한 음식에 들어가 적당히 씹는 맛을 내는 용도로 쓰이지, 당면을 주식으로 먹기엔 열량이 버겁다.

어쨌든 찜이나 볶음, 국물 요리에 당면이 들어가면 먹는 이의 입장에선 심심하지 않다. 간장, 고추장, 마라 등 어떤 양념과도 잘 어울리고 밥에 얹어 먹으면 당장 반찬이 된다. 슬슬 더위가 시작되고 입맛이 무료해질 때 당면이 들어간 음식을 찾아 먹노라면 질겅질겅 저작(咀嚼)으로 일상의 스트레스마저 당장 해소되는 듯하다. 이러니 당면 과제랄 수밖에.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실비식당 = 먹자골목으로 인기를 누리는 충무로 인현시장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오는 술집. 상호처럼 호주머니 가볍게 다양한 안주와 술을 즐길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잡채가 아닌 ‘계란당면볶음’을 판다. 양념이 세지 않아 부드러운데 맛은 제대로 난다. 주문 즉시 바로 볶아주니 출출할 때 이 메뉴부터 시작하면 좋다. 백반부터 닭도리탕, 임연수구이, 닭날개구이, 북어껍데기튀김 등 별의별 안주가 다 있다. 서울 중구 마른내로6길 14. 1만2000원.

◇깡통골목 원조 비빔당면 = 메뉴 이름이면서 가게 상호다. 부산 별미 비빔당면을 부평동 시장에서 60년 이상 팔고 있다. 당면을 살짝 삶아 그릇에 담고 어묵과 단무지, 부추무침, 양념장을 얹어 준다. 그리 특별해 보이진 않지만 정신이 번쩍 드는 매콤한 양념과 쫄깃한 당면 맛에 먹는다. 멸치 육수를 잔뜩 머금은 유부주머니와 어묵을 곁들이면 더욱 궁합이 좋다. 부산 중구 중구로47번길 29. 7000원.

◇이본가 = 석갈비를 하는 집인데 점심에 파는 왕갈비탕도 인기다. 진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에 큼지막한 갈빗대가 2대나 들었다. 갈비를 집어 들고 뜯다가 국물에 밥을 말면 숨어 있던 당면이 반색하며 거든다. 갈비 뜯기에 길든 치아가 무른 밥을 만나면 금세 지루해지는데 쫄깃한 당면이 식감을 보완한다. 마지막 한술까지 든든하다. 충남 금산군 금산읍 진산로 24. 1만4000원.

◇간식집 = 공산성 앞 산성시장 ‘간식집’에선 옛날식 만두를 판다. 이름하여 잡채만두. 잡채는 아니지만 고기 부스러기와 당면이 들어가니 얼추 잡채와 비슷하다. 직접 빚은 두툼한 만두를 번철에 기름을 둘러 바싹 지져 내고 매콤한 고추장 소스에 찍어 먹는다. 기름기를 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들부들하다. 돼지고기 소는 잘게 썬 당면과 어우러지며 진한 풍미를 놓치지 않는다. 충남 공주시 산성시장1길 46. 잡채만두 6개 4000원.

◇삼미관 = 맛집 많기로 소문난 광주 동구에서도 골목 안에 숨은 노포로 입소문이 났다. 주문 즉시 주방에서 즉석으로 볶아주는 잡채밥이 맛있다. 고추잡채, 부추잡채가 아니라 그냥 당면 잡채다. 당장 센불에 볶아내는 까닭에 당면이 붇지 않아 식감이 좋다. 함께 올린 채소도, 튀겨낸 달걀부침도 바삭하고 불향을 품었다. 1000원을 추가하면 밥을 볶음밥으로 내주니 이 또한 즐겁다. 광주 동구 백서로189번길 14-32. 8000원.

◇엄마손김밥 = 이 집을 다녀간 이들은 대부분 두고두고 김말이를 이야기한다. 김말이를 직접 만든다. 불리고 양념한 당면을 얇고 기다랗게 말아서 튀겨낸다. 입맛은 공평한지 가장 빨리 떨어지는 메뉴다. 떡볶이 양념에 무쳐도, 그냥 간장에 찍어 먹어도 모두 괜찮다. 이 외에도 순대와 김밥, 튀김 등 다양한 간식 메뉴를 갖췄다. 전남 강진군 강진읍 고성길 3 건우1차아파트. 김말이, 야채튀김 3개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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