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 때 부활한 공공 사전 청약 제도, 시행 2년 10개월 만에 폐지

신수지 기자 2024. 5. 1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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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주택 공급 대책의 하나로 도입한 공공 분양 아파트 사전 청약 제도가 시행 2년 10개월 만에 폐지된다. 사전 청약 이후 사업이 지연돼 본청약과 입주 시기가 수년씩 밀리고, 정부가 미리 알려준 분양가도 본청약 때 훨씬 오르는 등 사전 청약 당첨자들의 피해가 커졌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14일 “공공 사전 청약 제도를 폐지하고, 앞으로 공급하는 공공 분양 주택은 사전 청약 없이 바로 본청약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미 사전 청약을 받고 아직 본청약을 하지 않은 86단지 4만5000가구는 앞으로 이전대로 본청약을 진행하지만, 대다수가 계획보다 일정이 밀릴 전망이다.

그래픽=김성규

사전 청약은 통상 아파트 착공 때쯤 진행하는 청약 접수를 1~2년 정도 앞당겨 하는 것으로, 당첨자는 본청약 때 먼저 계약할 기회를 받는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보금자리주택에 ‘사전 예약’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적용됐다가 본청약과 입주 시기가 예정보다 수년씩 밀리는 탓에 흥행에 실패해 폐기됐다. 실제로 2010년 사전 예약을 시행했던 경기도 하남 감일지구 일부 단지는 본청약까지 8년, 입주까지는 무려 11년이 걸렸다.

이런 문제점에도 문재인 정부는 주택 조기 공급으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며 2020년 사전 청약 제도 도입을 발표했고, 2021년 7월부터 시행했다. 당시 정부는 “사전 청약 후 본청약까지 걸리는 기간을 2년으로 최소화하겠다”고 공언했으나, 본청약이 기약 없이 밀리는 단지가 속출하는 문제점이 그대로 반복되며 결국 폐지 절차를 밟게 됐다.

◇99단지 중 본청약 일정 지킨 곳 하나뿐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작년 말까지 전국 공공 분양 아파트 단지 99곳에서 5만2000가구를 대상으로 사전 청약을 접수했다. 올해는 사전 청약 접수 단지가 없었다. 사전 청약을 진행한 곳 중 13단지(6915가구)에서 본청약까지 마쳤는데, 사전 청약 당시 예고한 일정을 지킨 곳은 ‘양주회천 A24블록’(825가구) 단 한 곳에 불과하다.

토지 보상 미비 등 아파트가 들어설 부지 조성을 완전히 마무리하지 않은 상태로 성급하게 사전 청약부터 받은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문화재 발굴, 맹꽁이 같은 보호종 발견, 주민 반대 등 다양한 이유로 본청약이 늦어졌다. 지난 3월 경기도 ‘군포대야미 A2블록’ 신혼희망타운 사전 청약 당첨자들은 본청약을 불과 2주 앞두고 ‘3년 연기’ 통보를 받았다. 아파트가 들어설 부지에 특고압 전력선이 지나는 송전탑이 있는데, 송전 선로를 땅에 묻거나 다른 부지로 옮기는 공사에 3년 이상이 걸린다는 이유였다. 본청약 일정에 맞춰 계약금 등 주택 구매 자금을 마련하고, 이사 계획 등을 세운 사전 청약 당첨자들만 손해를 보게 됐다.

사업이 지연되면서 공사비가 늘고,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진 것도 사전 청약 당첨자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2021년 10월 사전 청약을 진행한 ‘성남신촌 A2블록’은 작년 4월 예정이던 본청약이 11개월 밀려 올해 3월에야 실시됐다. 사전 청약 당시 정부가 추정한 분양가는 6억8268만원(전용면적 59㎡ 기준)이었는데, 본청약 때 실제 분양가는 7억8870만원으로 1억원 넘게 뛰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사전 청약에 당첨되고도 중도에 포기하는 수요자가 늘면서 사전 청약 당첨자의 본청약 계약률은 54%에 그치고 있다.

◇분양가 1억 넘게 뛰는 등 당첨자들만 피해

국토부는 사전 청약 후 아직 본청약을 실시하지 않은 86단지 4만5000가구 역시 대부분 처음 일정대로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자 더는 사전 청약 제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장 올해 9~10월 본청약이 예정된 ‘남양주왕숙2 A1블록’ 등 7단지는 본청약이 6개월~2년가량 늦어질 예정이다.

정부는 사전 청약 신규 시행을 중단한 뒤 공공주택특별법 시행규칙을 고쳐 사전 청약 제도를 아예 폐지한다는 계획이다. 이정희 국토부 공공주택추진단장은 “청약 수요가 다시 많아져도 사전 청약 제도를 도입하지 않을 것”이라며 “주택 수요를 흡수하는 긍정적 효과보다 본청약 지연으로 사전 청약 당첨자가 보는 피해가 커 제도 자체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는 본청약이 6개월 이상 밀린 기존 사전 청약 당첨자에 대해서는 주거 계획이 차질을 빚지 않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발표했다. 본청약 때 계약금 비율을 분양가의 10%에서 5%로 낮춰 나머지는 잔금으로 내도록 하고, 중도금 납부 횟수는 2회에서 1회로 조정한다. 또 본청약 지연 단지가 금융권에서 중도금 집단 대출을 받을 수 있게 지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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