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재건축 변경 신중해야… 1기 신도시 '갈팡질팡'

정영희 기자 2024. 2. 1.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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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 - 리모델링 아파트 대혼란(3)] 재건축 규제 완화에 1기 신도시 소유주 우려 커져

[편집자주]재건축보다 진입이 쉽고 사업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서 각광받던 리모델링이 정부의 연이은 규제 완화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지난해 재건축의 걸림돌로 불리던 안전진단 문턱이 대폭 낮아진 데 이어 올 초 준공 뒤 30년이 지난 노후 아파트는 아예 안전진단을 받지 않아도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면서다. 그동안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전국 다수의 조합들은 재건축과의 갈림길에 멈춰선 채 혼란을 겪고 있다. 리모델링에서 재건축으로 선회하려면 기존 조합을 해산해야 하는데, 새 조합에서 임원 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현 리모델링 조합 집행부가 반기를 들며 조합원들과 갈등을 겪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준공 연한 기준을 채우지 못해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을 선택한 단지가 비교적 많았던 일산·분당 등 1기 신도시들도 지난해 말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1기 신도시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기면서 소유주 간 의견 충돌에 부딪치는 모습이다.

지난해 말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1기 신도시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으며 1기 신도시의 재건축 안전진단 문턱이 낮아지자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던 기존 단지들 사이 분쟁이 격화되고 있다. 사진은 경기 고양 일산신도시 일대 아파트 단지 전경./사진=뉴시스
◆기사 게재 순서
(1) 오락가락 재건축 대책… '낙동강 오리알' 된 리모델링
(2) [르포] "조합장 나와" 리모델링 조합 내분 격화
(3) 리모델링→재건축 변경 신중해야… 1기 신도시 '갈팡질팡'
재건축이 곤란했던 노후 아파트의 구원투수 '리모델링 사업'이 위기에 놓였다. 지난해 말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1기 신도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며 재건축의 강점이 커졌기 때문이다.


재건축 규제 완화에 들썩이는 1기 신도시


1기 신도시 특별법은 20년 이상 넘은 100만㎡ 이상 택지의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를 면제하고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200% 안팎인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높이는 방안이 핵심이다.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 기존 용도구역 용적률의 최대 150%를 적용받을 수 있다. 예컨대 종전 용적률이 최대 300%로 제한돼 있던 3종 일반주거구역이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 450%까지 용적률이 상향된다. 재건축 시 사업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1기 신도시는 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등 5곳으로 총 29만2000가구다. 일부 단지는 재건축 연한이 지났고 대부분 2026년에 도래한다. 현재 용적률은 ▲분당 184% ▲일산 169% ▲평촌 204% ▲산본 205% ▲중동 226%다. 분당과 일산을 제외하면 일반 재건축 단지보다 용적률이 높고 다수가 지구단위계획으로 묶여 있어 재건축 추진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향후 1기 신도시 특별법을 통해 용적률이 300~500% 수준으로 올라가면 중장기적으로 10만가구 이상 아파트가 추가 공급될 전망이다.
분당은 1기 신도시 중 리모델링 사업 진행 속도가 월등히 빠른 지역 중 하나로 꼽혔으나 현재는 다수 단지들이 재건축으로 선회를 결정하고자 사업을 중단했거나 지연된 상태다. 사진은 분당 아파트 밀집지역 모습./사진=뉴시스
정부는 지난 1·10 부동산대책을 통해 올해 안에 5개 1기 신도시별로 선도지구를 최소한 한 곳씩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선도지구란 각 1기 신도시의 향후 재건축 방향을 보여주는 일종의 시범단지다. 1기 신도시의 특성상 대단지가 몰려 있어 전체적인 정비사업 완료까지 장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앞으로 가치 상승이 예상된다.

부진했던 1기 신도시 재건축이 급물살을 타면서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은 대거 혼란에 빠졌다. 평촌 은하수마을 청구, 샘마을대우, 한양 등이 리모델링 철회를 결정했다. 2022년과 2023년 각각 포스코이앤씨, 현대건설로 시공사 선정을 마친 일산 문촌마을 16단지와 강선마을 14단지 등도 일부 소유주가 리모델링 대신 재건축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후곡마을 11·12단지도 재건축을 원하는 이들과의 다툼으로 리모델링 조합 설립에 대한 소유주 동의가 원활히 진행되지 못하는 상태다.

1기 신도시 중 가장 진행이 빨랐던 분당 또한 상황은 비슷하다. 2021년 2월 1기 신도시 아파트 단지 중에서 처음으로 리모델링 사업계획을 승인받은 한솔마을 5단지는 소송을 겪느라 사업이 지연됐다. 조합 측이 리모델링 사업에 반대하는 일부 소유주를 대상으로 매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가 조합장 선정 절차에 하자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최종 패소한 탓이다. 이에 조합장이 사퇴, 새 집행부를 조직해 다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매화마을 1단지는 리모델링 사업 추진이 잠정 중단됐다. 지난 4월 총회에서 분담금 확정 안건이 부결되면서다. 당시 높은 기준금리에 따른 금융 부담과 원자잿값 상승으로 공사비 인상이 겹치며 조합원 분담금이 확대된 것이 원인이 됐다.
그래픽=머니S 김은옥 디자인기자


리모델링 '급제동'… 소유주 갈등 격화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1기 신도시에 위치한 353개 아파트 단지 중 29개 단지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이 중 상당수가 재건축 선회를 원하는 소유주와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는 중이다.

계획대로 리모델링 사업이 진행되는 단지는 분당에 일부 있다. 1기 신도시 노후 아파트 단지 가운데 정비사업의 첫 주자가 된 무지개마을 4단지는 지난해 11월 착공했다. 2022년 12월 이주를 시작한 지 11개월 만이다. 인근 느티마을 3·4단지도 지난해 상반기 주민 이주를 완료하고 빠른 시일 내에 첫 삽을 뜰 전망이다.

리모델링 사업이 중단된 단지의 한 소유주는 "주민 분쟁으로 시간이 지체돼 리모델링도 재건축도 못하고 분담금만 늘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단지의 소유주도 "서울의 사업성 좋은 단지들도 예상 분담금이 큰 액수인데 신도시는 더욱 클 것"이라며 "사업 방향을 빨리 정해 착공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빠른 정비사업 추진을 위해 안전진단 규제를 대폭 완화하며 리모델링은 더욱 찬밥신세로 전락했다.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앞으로 준공 30년 이상 단지는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시작할 수 있다. 조합설립 시기를 앞당겨 사업기간을 최대 3년 단축하는 패스트트랙도 추진된다. 재건축 연한에 진입한 1기 신도시 아파트 단지들도 리모델링을 선택할 이유가 없게 됐다.
평촌신도시 전경./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리모델링 초기 단계의 단지들을 우려하고 있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과거에 규제 때문에 재건축 추진이 어려워 대안으로 리모델링을 선택했던 단지들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리모델링의 경우 지금 같은 전면 재건축 형태보다 설비 개선이나 모듈러 기술을 활용해 시설물을 일부 개선하는 형태로 변모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리모델링 조합이 재건축으로 돌아서는 데에 현실적인 걸림돌이 많다는 의견도 나온다. 리모델링을 추진하다가 재건축을 하게 되면 기존 조합을 해산하고 조합설립인가를 다시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만만치 않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기존 리모델링 조합의 조합장과 임원이던 이들이 다시 결성된 조합의 집행부로 선임되지 못할 수도 있어 분쟁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연구소 소장은 "리모델링 조합 설립 이후 시공사를 선정한 단지들은 재건축으로 바꾸려면 그동안 사용한 사업비 대여금도 다시 돌려줘야 한다"면서 "리모델링 시공사가 재건축에 재참여한다는 보장도 없어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지적했다. 재건축 안전진단 완화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사항으로 국회 통과가 불발될 수 있기에 섣부른 결정은 어려운 문제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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